2019 세계 YMCA Change Agents 프로그램을 다녀와서

체인지 에이전트. 한국말로 하면, 변화의 주역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이 프로그램에 대해서 듣고는 바쁜 업무 중에 부담에 되지는 않을까 해서 선뜻 참여하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하지만! 영국에서의 열흘 남짓한 시간이 지난 뒤, 나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경험들을 놓쳤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YMCA 체인지 에이전트 프로그램은 World YMCA와 각 국 YMCA가 함께 젊은(?) 세대의 역량을 강화하고, 리더십을 키우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전 세계에서 200여 명의 YMCA 일원들이 모여 온, 오프라인 교육 및 지역 프로젝트, 멘토십, YMCA 175주년 기념 행사 참여 등을 통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와 과제를 부여 받는다. 

 

가장 주요한 활동은 8월 초 영국에 가는 것이었다. 런던 근교의 사우스햄튼에서 일주일 동안 지역 훈련과 글로벌 훈련을 받고, 런던으로 이동해 4일 동안 YMCA 175주년 기념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다. 처음 이 프로그램에 지원한 것이 5월 초였는데, 3달의 시간이 정신없이 지나고 어쩌다보니 출국 날이 되어 사실 많은 준비를 하지 못하고 훌쩍 런던으로 떠났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앞으로 나에게 펼쳐질 행복하고 감사한 시간들을 예상하지 못했다.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해 약간은 어색하게 먼저 도착한 참가자들과 인사한 뒤 버스를 타고 두시간 정도 달려 사우스햄튼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YMCA Fairthorne Manor(아직도 어떻게 읽는지... 잘 모르겠다) 캠핑장에 우리의 숙소와 교육장 모든 것이 위치해 있었다. 불도 피우고, 체력 훈련도 할 수 있는, 커다란 나무와 아름다운 정원, 호수도 있는 그런 영국 시골 느낌의 캠핑장이었다. 첫날은 정말 너무 피곤해서 바로 곯아떨어졌다. 

다음날부터 아시아, 태평양 지역 YMCA의 지역 훈련이 먼저 시작되었다. APAY(Asia and Pacific Allliance of YMCA) 라고 줄여 부르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은 한국, 일본, 홍콩 등 동북아 인도, 스키랑카, 말레이시아 등의 동남, 서남 아시아 그리고 호주와 뉴질랜드 등 태평양 지역까지를 말한다. APAY 이외에도 유럽, 라틴아메리카, 미주, 캐나다등 각 지역끼리 우선적으로 모여 글로벌 모임에 앞서 각 지역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처음 만나 서먹서먹한 우리 지역 참가자들과 햇살이 비추는 잔디밭위에서 즐거운 게임을 하며 서로의 이름과 나라, 얼굴을 익히고 본격적인 워크숍에 들어갔다. 

 

아시아태평양지역 YMCA의 역사와 철학, 각 나라의 이슈,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슈와 해결방안을 함께 모여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한국 YMCA 연맹에서 위탁 운영하는 아하!센터에서 일하다보니 아무래도 YMCA 전반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는데 이에 대해 점검해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또한 우리 지역에도 젠더 이슈에 관심있는 친구들과 한국의 성교육, 성별 갈등, 성폭력 등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니 나라는 달라도, 비슷하게 존재하는 불평등과 가부장제에 함께 공감할 수 있었다. 

지역훈련에서 발표중

3일간의 지역훈련이 끝나고, 글로벌 훈련이 시작되었다. 우리 지역만해도 참 낯설었는데, 갑자기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미국, 캐나다 여기저기서 속속 200여명의 참가자들이 모두 도착해 다함께 마주하니 정말 낯설었다. 첫날 예배를 아프리카 참가자가 인도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비욘세 콘서트마냥 쏘울 넘치는 찬송에 1차 충격을 받고, 흑인음악에서 레게로 넘어가더니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온 참가자들이 삼바춤을 추기 시작해 한판 춤판으로 이어져 2차 충격을 받았다. 매 순간이 즐거운 컬쳐쇼크였다. 우리는 정말 달랐지만, 전 세계에서 모인 말그대로 Change Agents라 그런지 서로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즐겁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이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평생 만나지 못했을 전세계 각지, 머나먼 곳에서 모인 사람들과 서로의 다른 문화를 나누고, 고민을 나누고, 어려운 현실을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과 에너지를 나누었다. 때로는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바디랭기지와 구글 번역의 도움으로 환하게 웃으며 서로의 마음을 전했던 그 순간들이 너무나 즐겁고 소중했다. 

 

특히 한국에서 1명 온 나에게 "진, 너도 라띠노야!"라며 어딜가나 챙겨주던 라틴아메리카 친구들, 밥도 꼭 한국 드라마에서 튀어 나온 거 같이 춉춉춉춉 먹는다며 한국 사람들은 다 너같이 친절하냐고 무한 관심을 보여주던 마다가스카르에서 온 친구, 캥거루, 코알라 잇템을 달고 다니며 호주에 꼭 놀러 오라고 몇 번이나 초대해준 호주 친구들이 모두모두 기억에 남는다.  

 

사우스햄튼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런던으로 이동했다. 런던에서 열리는 YMCA 175주년 기념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 였다. YMCA 175주년 행사는 체인지 에이전트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YMCA의 175주년을 함께 기념하기 위해 3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다양한 세미나와 워크숍, 개막 폐막 행사가 진행되었다. 퀸의 위윌락유(we will rock you)로 마치 콘서트장에 온 듯한 신나는 분위기 속에서 전세계 YMCA 깃발이 하나, 둘 씩 등장하고 성소수자와 난민을 상징하는 깃발까지 모두 자리한 가운데 YMCA 175주년 기념행사의 막이 올랐다. UN의 친선대사와 세계 YMCA president의 축사, 멋진 공연이 이어졌다. 3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내가 한국참가자로는 유일했다는 것이 정말 너무 안타까울 만큼 한국에서 오랜 시간 고생하고, 한국 YMCA에서 애써온 많은 분들이 함께 했다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한 개막식뿐 아니라 3일 동안 환경, 정신건강(Mental health), 젠더, 스포츠, 문화예술, 시민사회영역 등 다양한 분야의 워크숍, 세미나가 열려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브라질, 인도, 페루의 전통 춤을 응용한 Y DANCE, 아프리카의 경험을 바탕으로 남성성 전환하기, 사회 변화의 촉매로서의 예술 등 젠더와 문화 예술을 중심으로 한 세미나에 참여했고, 이곳에서 또 한번 세계 각국에서 비슷한 듯 다른 이슈로 분투하고, 행동하는 여러 Y의 구성원들을 만나 함께 고민하고 생각을 나눌 수 있었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격하게 반가워하며 드라마 얘기를 하다가 페이스북 친구를 맺기도 하고, 인도 전통춤을 배우고 난 뒤, 우리 센터에서 하고 있는 몸동작 성교육을 소개하며 함께 협력하고 교류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YMCA가 175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전세계 곳곳에서 하고 있는 의미있고, 가치있는 활동들을 직접 만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해볼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가 여기 온 것은 정말 행운이라고 느껴지는 동시에 한국에서 나만 여기 온 것이 미안할 만큼.. 멋진 행사였다. YMCA의 일원이라 감사하고, 앞으로 더 열심히 활동하고 나아갈 수 있는 애정과 자부심을 듬뿍 얻을 수 있는 자리였다.     

 

 

YMCA 175 행사에서의 여러 세미나, 워크숍들

한국 나이로 31살, 더이상 내 인생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사실 "체인지 에이전트"라는 이 프로그램의 이름이 좀 민망하기도 했다. 매일같이 진행되는 교육을 운영하면서 지치기도 하고, 일상도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페미니스트"이며, "한국에서 성교육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을 때, 여기저기서 박수를 보내주던 사람들. 지나가다 마주치면 너는 정말 멋진 일을 하고 있다고, 자신은 브라질의, 케나다의, 호주의, 미국의, 과테말라의 페미니스트라며 자신의 나라에도 '미투'가 있고, '불평등'이 있고, 성별에 기반한 차별과 폭력이 만연하다고 함께 머리를 맞대주는 친구들을 여기서 만났다. '진, 너는 나에게 영감을 주었어', '너가 열정적으로 말하는 모습이 참 인상깊었어', '우리는 정말 여성에게 안전하지 못한 환경에 놓여있어(브라질)', '내가 일하는 YMCA옆에 성매매집결지가 있어서 어린 소녀들이 인신매매의 피해자가 되고 있어서 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콜롬비아)', '나는 한국에서 성교육을 할때 성소수자에 대해, 쾌락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는지 궁금해(호주)', '내가 여성스러운 옷을 입지 않고 축구를 한다고 항상 편견에 시달려, 한국도 그러니(과테말라)?'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진심으로 궁금해하고, 가치를 두고, 지지해주는 전 세계에서 온 친구들 속에서 많은 힘을 얻었다. 그리고 여전히 내가 바꾸어가야할 것들이 많고, 그것은 누구도 아닌 내가 해나가야할 일임을 느꼈다. 정말 우리가,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고 아주 작은 것이라도 함께 해보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을 가진 200명과 영국에서 함께 한 시간은 그냥 그 자체로 어느 것보다 큰 지지와 독려가 되었다. 

 

'내가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의심하지마! 여기서 우리가 만난 것만으로 이미 우리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으니까'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름다운 사람은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지, 오랜만에 희망과 가능성을 만난 시간이었다. 종교가 없다고 말하곤 했는데, 이렇게 멋진 기회와 아름다운 사람들, 소중한 만남을 가능하게 하신 신께 감사할 수 밖에 없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한국 YMCA의 일원으로 오늘도 애쓰고 있을 많은 분들이 있었기에 내가 KOREA YMCA라는 이름으로 여기에 올 수 있었다. 앞으로 여기서 배우고, 느낀 것들을 통해 내 주변에 작은 변화들을 만들어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작은 보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World YMCA, 한국 YMCA, 아하!센터 모두 파이팅! 

 

 

글. 교육팀 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