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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성(Sexuality)을 읽다./조금은 딱딱한... 칼럼!

어린이 성교육, 고민이 생기다

작성일 : 09-05-30 17:56             
어린이성교육, 고민이 생기다
글쓴이 : 아하지기 (59.15.196.148)  조회 : 685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에 답하기  



지금까지의 어린이성교육의 주요한 흐름은 ‘아이는 어떻게 생기는가’와 ‘성폭력 예방, NO라고 말하세요’, 이 두 가지로 대변되어왔다. ‘아이는 어떻게 생기는가’에 대한 성교육내용은 어린이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는 대표 질문인데다 발달단계에 적합한 교육내용으로 여겨져 오랜 전통 속에서 대표적인 어린이성교육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성폭력예방교육인데, 2000년대 들어 ‘어린이성폭력’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교육 요구에 힘입어 활성화 된 교육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성폭력 예방 교육은 짧은 시간에 가장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단순하게 공식화된 주입식 교육이 대부분이다. 특히, 획일화된 공포를 주입하고 기계적인 반응을 교육하는 것에 대한 비판은 이미 여러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좀 더 관계적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에 초점을 둔 성폭력예방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논의로 모아지고 있다. 이에 본 글에서는 성폭력예방교육에 대한 비판보다는 어린이성교육의 오랜 역사와 함께 하고 있는 임신/출산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임신과 출산의 경우, 최근 들어서는 단순히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생물학적인 정보와 장면만을 제시하는 교육에서 탈피, 구체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몸이 만나 아기가 생기는 과정을 통해 ‘임신’, ‘내 존재의 탄생’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을 교육하고 있다. 이를 위해 다양한 교구를 사용하는데, 여성과 남성이 성관계를 하는 장면이 포함된 애니메이션이나 여성과 남성의 성기 모형, 여성과 남성이 성관계를 하는 모형 등이다. 이를 통해 기존의 구체적인 것 같으면서도 추상적이고 모호한 ‘난자와 정자가 만난다’는 대답에 빠져 있는 ‘어떻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왜’에 대해서는 제대로 답해주고 있지 못하다. 이 ‘왜’에 대해 대답하기 위해서는 아기가 태어나는 과정이 아니라 성관계의 맥락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야 하는데 한국의 어린이성교육은 이제야 겨우 아기가 태어나는 과정을 ‘엄마와 아빠’의 난자와 정자가 만나는 여전히 생물학적인 과정으로서의 성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일부에서는 이런 교육은 급진적이라고 여겨지고, 어린이들이 자신들이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제대로 아는 것에 우려를 표하는 어른들은 교육을 피하기 바쁘다. 하긴 오랫동안 모든 어린이들의 공통적인 질문, ‘난 어디서 왔어?’라는 질문에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 라든지, ‘배꼽에서 나왔다’라는 완전히 틀리지는 않지만 어른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유머로 대답을 대신해왔던 것을 생각해본다면 급진적이라고 여길 만하지만, 이것으로도 여전히 아이들의 질문에 대답하기는 부족하니, 지금까지의 성교육만으로는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사실, 아이들의 ‘나는 어디서 왔어?’라는 오래된 질문은, 그것이 성관계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던 드러내지 않던 생물학적인 과정에 대한 것 뿐 만이 아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의 그 감정적이고 관계적인 것에 대한 질문이자 내 존재 자체에 대한 질문,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대한 거의 최초의 질문이다. 그런데,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게 한, 나를 만들게 한 복잡하고 궁금한 철학적이고 복잡다단한 질문에 ‘너는 아빠와 엄마가 사랑해서 아빠의 정자와 엄마의 난자가 만나 만들어졌다’와 같은 대답은, 답하기 너무 어려운 질문을 회피하는 어른들의 대답 방식이다. 

요즈음의 아이들은 이전의 아이들의 질문, ‘아이는 어떻게 생기는가’에 대한 것과 다르지 않지만 그것보다 훨씬 구체화된 방식으로 질문한다. 아이는 어떻게 생기는가와 같은 전통적인 질문 말고도 공통적으로 하는 질문은 ‘성폭력은 왜 일어나나’, ‘여자, 남자가 뽀뽀(키스)는 왜 하나’와 같은 질문이다. 이런 질문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이들이 사는 환경과 따로 설명할 수 없다. 이미 아이들이 사는 환경은 단란한 ‘4인 가족’, ‘사랑해서 아기를 낳는 것’을 넘어서 다양한 차이들로 채워져 있다. 단순히 ‘성폭력은 범죄고 나쁜 어른들이 하는 것’, ‘엄마와 아빠는 좋아하니까 결혼을 하고, 사랑하는 과정에서 뽀뽀하고 아이를 낳는다’와 같은 답들은 (또래)성폭력이나 비혼모, 피임, 다양한 가족형태 등을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해주지 않는다. 한 부모 가족, 할머니/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가족, 다문화 가족, 기관 공통제 등 이제 나의 존재에 대한 궁금함은 ‘엄마 아빠가 서로 사랑해서 나를 낳았다’라는 명제로는 부족하다. 

특히 어린이성교육에서 성관계를 설명하는 방식은, 이성애 중심인 것은 차치하더라도, 너무도 정상가족 중심이어서 이렇듯 다양한 현실을 설명하는데 역부족이다. 성교육을 받는 아이가 엄마나 아빠의 얼굴을 본 적도 없거나 아빠의 존재 없이 엄마와만 사는 아이일지라도 아이가 생기는 방식, 내가 태어나는 방식은 모두 다 결혼제도로 묶여 있는 사랑하는 엄마와 아빠의 성관계를 통해서라고 설명된다. 이런 경우 나의 존재 자체는 여전히 납득하기 어렵고 괜히 정상가족에 대한 환상, 원망이 재생산되기 십상이다. 성관계의 그 복잡다단한 다양한 맥락이 이해되었을 때, 아이들은 현재 자신이 누구와 함께 살든 어떤 형태의 가족구성원으로 살아가든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부정적인 이해를 벗어버릴 수 있다. 

물론, 아이들에게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라는 우려가 존재하는 것으로 안다. ‘어디까지’에 대한 어른들의 우려는 정확히 어른들이 현재 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의 반영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다. 어른들은 늘 아이들의 특정한 행동을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으로 해석하고 판단하기 일쑤다. 이런 과정에서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혼나거나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쁜 생각/일’을 했다고 외워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특정한 행동/생각을 어른들과 나누는 일은 없다. 이제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어떻게’해야 하는 가를 질문해야 할 때다. 

낯선 성교육이 필요하다. 

현재 아하센터의 어린이성교육이 쌍방향/체험형 지향하고 생물학적 지식 교육 이상의 다양한 영역을 다루는 교육을 하고자 하지만, 여건 상 지향하고 있는 바를 다 채우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일회성 위주 교육으로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것들을 교육해야 하는 점이 주요한 문제점이라고 평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8년 봄, 아하센터에서는 어린이성교육장 설치를 기점으로 어린이성교육의 다양화 및 내실화를 시도하고 있다. 어린이성교육장을 통한 일여 년의 시도를 통해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방법, 어린이들의 성교육에 대한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내용에 대한 힌트를 찾아가고 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코너 중의 하나인 ‘사춘기 서랍’은 서랍 속 실제 물품과 사춘기 고민에 대한 다양한 질문과 대답이 적힌 사춘기 엽서가 잘 어우러져서 호기심과 궁금증을 잘 해결해준다. 단순히 사춘기에 겪게 되는 생물학적인 몸의 변화 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사춘기를 함께 생각하는, 기존에 사춘기를 이야기하던 것과 다른, 낯선 시각에서 사춘기를 이야기하는 것이 어린이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또 하나의 낯선 성교육에 대한 시도는, 한 대안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는 한 학기동안의 지속적인 성교육이다. 5월 현재 삼 개월 째 진행되고 있는데, 지금까지 차이와 차별에 대한 수업을 진행하고 이제 사춘기, 성에 대한 이야기들을 시작하는 중이다. 기존의 관점에서 보자면 임신/출산을 삼 개월째 다루지도 않고 있기 때문에 그게 무슨 성교육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성에 대한 이해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 타인과의 차이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시작하고, 이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이해 없이는 힘들다. 이런 지점은 섹슈얼리티를 공부하고 성교육을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면 합의하는 내용일 것이다. 사회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성별체계나 주변의 차이와 차별에 대한 이해, 자신의 가족과는 다른 형태지만 자신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먼저 들여다보고 나의 똑같이, 혹은 다르게 생각하는 친구들을 통해 여러 시각들을 접하는 것이야말로 성과 한 쌍으로 이야기되는 다양성을 이해하는 기초가 된다. 

이 아이들과 수업하면서 알게 된 점은, 아이들은 이미 옆집의 다문화 가족, 학교의 장애인 친구, 독신으로 사는 이모와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깨닫는다는 것이다. 다름과 차별에 대해 10대 보다 훨씬 쉽고 빠르게 이해하고 공감한다. 그리고 엄마든 친구든 강아지든 함께 체온을 나누는 일이 마음을 나누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 몸의 느낌과 성차별, 소수자의 성, 폭력적인 성 등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섣불리 편견을 가지기보다 한번쯤 들여다보려고 한다. 다른 생각을 가졌더라도 귀 기울여보려고 한다. 궁금해 한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과 함께 나눌 때 어떤 언어, 어떤 레퍼런스를 이용해야 하는지 고민이 되는 건 사실이다. 단순히 생물학적인 정보가 아니라 차이, 차별, 성의 다양성, 평등 등에 대한 다양한 성을 다루고 있는 어린이용 책이나 영상물 등은 거의 없기 때문에 자료도 부족하고, 수업 방식도 다양하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매 수업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지 고민하고 만드는 것이 내내 하는 일이다. 거의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은 일을 처음 한다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하다. 

하지만 조금씩 시도 해보는 동안 어떤 언어 어떤 방식이 아이들에게 적합하고, 아이들은 이런 내용들을 다룰 때 어떤 이야기들을 하는지 발견하는 것은 난자와 정자가 만나는 비디오만 틀어주는 수업과는 비교할 수 없게 행복한 일이다. 적어도 아이들의 질문을 모른 척 하기보다 답하고자 노력하고는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넘쳐나는 성적 이미지와 동영상, 여자 연예인의 성상납과 자살, 어린이들 사이의 성폭력과 유행이 된 초등학교 연애. 열거하면 수도 없을 이 살벌한 ‘성적인’ 현실을 아이들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복잡하지만 아무도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는 질문을 아이들은 나름대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매일같이 매체와 친구들로부터 이런 뉴스와 이미지들을 접하는 아이들에게 고장 난 카세트처럼 ‘정자와 난자’를 반복하는 어린이성교육은 아이들로 하여금 ‘이미 다 아는 지루한 성교육’이라고 마음을 접게 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이런 현실에서 아이들은 자신을 누구로, 어디에 위치시키고 살아갈지에 대한 균형을 잡는 일은 녹록치 않다. 하지만 평생을 살면서 성교육을 한두 번쯤은 받게 되는 요즘 아이들이, 그 한 두 번의 기회를 통해 ‘성적인’ 현실에서 균형 잡고 살아가기에 대한 힌트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면 수정란의 세포분열을 모르더라도 더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요즘 어린이성교육에 대해 드는 생각이다. 


아하!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교육사업팀 김백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