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만지기" 유감

작성일 : 06-02-01 16:38             
"고추만지기" 유감
글쓴이 : 아하지기 (59.10.185.33)  조회 : 800  

이명화 센터장 (아하! 청소년성문화센터) 

지난주 언론에 일제히 보도된 대법원 판결에 대한 기사에 눈길이 간다. 한 두 언론을 제외하고는 모든 기사 제목이 한결같이 판결문에 표현된 ‘성기를 꼬집듯이 만져 추행한 혐의’를 ‘고추만지기’로 표현을 했다. 

“교사 ‘고추만지기’도 성추행”, “선생님이 초등학생 ‘고추’만지면 성추행”, “교육목적이라도 ‘고추’만지면 성추행”등 심지어 어떤 신문에는 ‘고추 한번 만지는데 500만원?’이라고 친절히‘?’까지 달아가며 기사 제목 썼다. 

수년전 성희롱 사건이 최초로 사회문제화 되었을때 ‘한번 만지는데 3,000만원’ 이라며 비아냥 거렸던 악몽같은 유행어가 스쳐지나가는 이유는 뭘까? 

지난 26일 대법원 3부(주심 박재윤 대법관)은 수업시간에 초등학생인 남학생의 성기를 꼬집듯이 만져 추행한 혐의 (미성년자의제 강제추행)로 기소된 교사 이 모(58)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어린이는 외부로부터 부적절한 성적 자극 등을 받지않고 심리적 장애 없이 성적 정체성과 가치관을 형성할 권리가 있다”며 “피고인의 행위에 교육적 목적이 있었다 해도 어린이의 심리적 성장과 성적 정체성 형성에 악영향을 미쳤다면 추행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재판부는 “어른이 남자 아이의 성기를 만지는 행위는 과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근대적 남녀평등 이념이 확산되면서 동성간 성추행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는 등 피해자 입장에서 추행 여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며 “이렇게 변화한 성적가치관과 도덕관념에 비춰볼 때 피고인의 행위는 추행으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과거에는 어른이 남자아이의 성기를 만지는 행위를 지나치게 대하게 평가했다""그러나 시대변화에 따라 어린이 역시 자발적인 권리의 주체로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본 사건에서 초등학교 3학년인 박 모(9)군은 이 모(58) 교사에게 2004년 3월 수업시간에 일기장을 검사를 당하다가 박군의 성기를 꼬집어 만지는 등 같은해 5월까지 4차례에 걸쳐 성추행을 당했다고 한다. 박군은 성추행 사실을 부모에게 알리지 못하다가 결국 나중에는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고 한다. 

위의 판결문에 의하면 ‘성기를 꼬집듯이 만져 추행한 혐의’를 법률 용어로 ‘미성년자 의제 강제추행’이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이를 ‘고추만지기’정도로 표현을 했다. 물론 언론의 대중적인 정서를 감안한 탁월한 센세이션 감각을 문제제기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성기꼬집기’ 대신에 ‘고추만지기’라는 표현을 씀으로서 사건의 사실을 왜곡되게 전달할 가능성과 본 재판의 결과가 주는 아동.청소년의 성적 주체성에 대한 대사회적 메시지를 간과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딴지를 걸고 싶다. 

신체적으로 사춘기가 되기 훨씬 이전부터 아이들은 성에 대한 자의식과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자기를 깨달아가기 이전부터 여자아이들은 성기를 되도록 감춰야 할 것, 그거하나 달고 나오지 않은 그래서 창피하게 생각하고 뭔가 가지지 못한 존재로 교육되어져 왔다. 

반면에 남자아이들은 흐뭇한 마음으로 성기가 커나가는 것을 자랑하도록 강요되어졌다. 심지어 명절때가 되면 돈을 줄테니 좀 보여달라고 떼를 쓰는 어른들이 있다고 한다. 어느 정도 커가면서 대다수의 아이들은 그 순간을 대수롭지 않게 지혜롭게 모면하면서 자란다. 이런 문화적 영향때문일까? 

어떤 신문의 칼럼에서는 이번 판결을 보면서 “하지만 '할아버지의 손자 사랑'까지도 법의 잣대에 의해 추행으로 몰리는 세상이 될까 두렵다. "고추 없어졌다"는 어른들의 너스레가 때론 그리울 때도 있다.” 라고 끝을 맺어 이 사건에 대한 판결을 과도하게 우려하는 듯하여 씁쓸하다. 

이번 사건은 장난스레 어디 한번 만져보자 라고 하는 수준을 넘어선 수차례에 걸쳐 아이의 성기를 만지고 자극이 되어 서게 되면 그때 꼬집는 의도성을 가진, 아이에게는 성적수치심을 가지기에 충분한 강제추행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성교육이나 상담을 하다보면 심심찮게 남자아이들이 학교에서 교사에 의한 성추행을 고발해 온다. 학교현장에서 고심 끝에 아이들과 함께 용기를 내어 믿을만한 선생님께 얘기를 해도 대략 난감해 하거나 대체로 선생님들은 ‘뭐 그런걸 가지고 다 그러냐, 어른이 장난으로 그러시는 거니까 참아라’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세히 내용을 들어보면 장난스레 ‘고추만지는’ 정도를 넘어선 경우가 허다하다. 교사와 학생은 권력관계에 있으며 학생은 여전히 약자이다. 성추행이 남녀 관계가 아니라 권력관계에서 드러나는 것임을 명확하게 알려주는 것이다. 

학교에서 교사가 체벌의 일종으로 남학생의 성기를 꼬집은 행위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이런 문화는 남성들끼리 만의 그룹으로 조직되는 동아리나 군대에서는 신고식이나 체벌등으로 성기에 의한, 성기에 대한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흔하디 흔하다. 그 안에서 어렸을때부터 성기 중심적으로 자랑스럽게 자부심을 갖도록 교육받은 남성들이 겪게 되는 성적 수치심은 오히려 이중 삼중의 굴레를 쓰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남성들의 성폭력 피해 경험은 익명에 의한 설문 응답률에 비하여 자기 언어로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강제추행을 ‘고추만지기’ 정도로 가해자 입장에서 희화화하는 한 우리사회의 성기중심적인 성문화로 인해 남성에게도 덧씌워진 굴레를 벗어 버리기는 요원할 듯하다. 

최소한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만은 생명을 존중하고 사람사이의 평화를 만들어가는 성문화를 꿈꾸며, 의미 있는 이번 판결문을 다시 한 번 뒤집어 본다. 


“어린이는 외부로부터 부적절한 성적 자극 등을 받지 않고 심리적 장애 없이 성적 정체성과 가치관을 형성할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