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불편한 영화, '그림자 살인'

작성일 : 09-06-30 15:12             
[영화] 불편한 영화, 그림자 살인
글쓴이 : 아하지기 (59.15.196.148)  조회 : 280  
 


내겐 너무 불편한 영화, 그림자 살인

또 살인이라니, 제목만 들어서는 선뜻 끌리지 않는 영화입니다. 그러나 2009년 상반기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한국 영화계에 그나마 한 몫을 한 영화라고 하네요. 시기상 4월쯤 개봉되었고, 이제 한참 DVD가 나올 참이니 궁금하신 분들께서는 다시 한 번 찾아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영화 줄거리를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탐정 스릴러물이라는 장르이며, 시대는 일제 강점기의 구한 말. 당시 최대 권력자의 아들이 실종되었습니다. 경관들은 온 동네방네를 뛰어다니며 수사에 몰두하지만, 실종된 아들은 이미 차가운 시신으로 변해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시신은 해부학 실습용으로 사용되었죠. 영화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성실한 의학도 광수(류덕환)가 3류 탐정 홍진호(황정민)에게 찾아가 자신이 시체를 하나 주웠는데, 그게 바로 내무대신의 아들 민수현이라는 얘기를 합니다. 누명을 쓰지 않도록 진짜 범인을 잡는 일을 도와주면 현상금 전부를 준다며 접근 하죠. 이즈음 두 번째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연쇄사건에 흥미를 느낀 홍진호가 사건에 뛰어듭니다. 


◎ 불편한 점 하나, 시대극으로 보는 연예계

영화에는 곡예단이 하나 나옵니다. 시체가 유기된 장소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죠. 영화상으로는 화려한 곡예도 보여주고, 마술도 보여주니 즐겁게만 보입니다. 하지만 그 화려함 뒤엔 모두가 알다시피 언제나 그림자가 있죠. 지금의 연예계 모습을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초반부터 심상치 않은 모습으로 등장하던 사내는 그 곡예단의 단장이었고 알고 보니 허술한 수사과정을 줄곧 보여주던 순사부장 영달(오달수)의 하수인이었습니다. 승진이 필요했던 영달이 총관부 고위급 간부들에게 곡예단 단장을 소개시켜 주며 어린 여자 곡예단원들을 팔았던 거죠. 이른 바 성상납입니다. 사실 조금 놀랬습니다. 미국 드라마 CSI에나 나올법한 얘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언젠가 사회적으로 덕망 높은 정치가가 죽었는데 알고 보니 저택 안에 비밀 공간을 만들어놓고 즐길 만큼 소아성애자였더라~ 하는 이야기.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공공연히 이런 소재가 사용되는 건가, 하고 사실은 좀 많이 찜찜했습니다. 너무 앞서간다는 것에 대한 '찜찜함'이 아니라 대중 상업영화에 이런 소재가 쓰여지는 것에서 야기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한 '불안함'때문이랄까요? 함께 본 친구에게 너무 불편했다고 토로 했더니 “로리타? 그게 뭐 어때서~” 라며 태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역시~라는 생각과 함께 불편함이 더 커졌지요. 오락성 영화에서의 현실 반영은 영화의 스토리의 일부에 지나지 않을 뿐, 많은 사람들은 단순 자극적인 요소로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큰 문제라고 보지 않는 거죠. 분명 어린 아이들을 성매매 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사건에 집중하다보니 그들의 모습이 당연하게만 보이는 겁니다. 이런 작은 이미지들을 더 자주, 직간접적으로 접한 사람들일수록 더 젊고 어린 여자들을 성적 대상자로 바라보는 현상이 늘어날텐데요. 아주 슬픈 현실입니다. 

어쨌든 다시 영화얘기로 돌아가면, 곡예단장이 활발히 움직이며 고위 간부들에게 굽신거릴 때 곡예를 열심히 하던 옥이가 스스로 몸을 던져 죽게 됩니다. 달거리를 시작한 동생 별이를 지키기 위해서지요. 순간, 영화 개봉 한 달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자연이 떠올랐습니다. 그녀 자신을 위해서, 혹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목숨을 던졌을 그녀 얼굴이 오버랩 되었습니다. 그녀 역시 더 젊고 어린 연예지망생들을 위해 희생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자살을 정당화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보란 듯이, 당당하게, 몸을 던진 그녀에 비해 고위급 간부들은 비겁하게 꽁무니를 빼며 자취를 감춥니다. 


◎ 불편한 점 둘, 시대극으로 보는 정치계

영화는 옥이의 투신으로 인해 극에 달합니다. 사건을 은폐하기에 급급했던 순사부장은 시체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도록 훼손하거나, 돈으로 매수한 가짜 범인을 잡아오는 등의 한심한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이는 코믹하기 짝이 없는 현대의 정치계와 또 크게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지요. 옥이의 리스트라도 한 장 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요. 화려한 연예계와 치졸한 정치계가 맞물려 사건사고를 저지르고, 또 사건사고를 은폐합니다. 이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2009년의 대한민국 역시 의혹이 넘쳐나는 수많은 사건들이 터졌지만 그때마다 발 빠르게 움직인 건 검관 나으리들이 아니라 진실을 원했던 시민들이었고, 영화 안에서는 부정부패를 참지 못해 군관출신의 신분을 버리고 스스로 탐정이 된 홍진호였습니다. 주먹구구식으로 사건을 무마시키려 하는 영화 속 그들의 행적이 현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가슴이 먹먹할 따름입니다. 


◎ 불편한 영화, 그렇지만 해볼 만한 시도

당연하고 뻔한 것을 보여주는 영화, 그런데 관심은 갖게 하면서도 오히려 불편하다고 느끼게 해줬다면 그 점에서 점수를 줄 수 있지 않을까요. 불편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것을 불편한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능력인 것 같습니다. 그러려니 하고, 귀 닫고, 눈 감고 사는 것보다 우선은 한 발 나아간 것이니까요. 

 ‘추격자’의 마지막 씬을 떠올려봅니다. 사람들은 모두 마지막 피해자인 여자가 죽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지만 결국 죽고 말죠. 사람들은 지키고 싶었던 만큼 몇 배의 안타까움과 절망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많은 사람들이 한심한 비리를 저지르고 은폐하는 경관들에게 화를 내기를, 그리고 젊은 여성들의 성매매 현장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느끼는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에 안타까워하기를 바라봅니다.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요. 기껏 상업영화에 뭐 이리 바라는 게 많은가 하시겠지만 영화를 보게 되면 누가 보더라도 선악구도가 분명히 드러나고 현실의 모습과 지독히 똑같기 때문에 자연히 아시게 될 겁니다. 유치한 생각을 보태어 조금 더 개인적인 바람을 말한다면 진실이나 정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가까이 다가가려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길 기도해봅니다. 


너무 영화 밖의 얘기만 한 것 같은데요. 사실 영화는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습니다. 초반부에 이름마저 셜록 홈즈와 비슷한 탐정 홍진호가 경성거리를 누비는 장면은 흡사 현대극의 야마카시를 보는 듯 하고, 홍진호를 도와주는 발명가 순덕(엄지원)의 발명품들은 007을 연상케 하죠. 이 외에도 다양한 볼거리가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영화를 보고 비교하시면 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교육사업팀 서영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