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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성(Sexuality)을 읽다./문화에서 성을 찾아내다

[도서] 언니들, 집을 나가다

작성일 : 09-07-31 16:44             
[도서] 언니들, 집을 나가다
글쓴이 : 아하지기 (59.15.196.148)  조회 : 210  


◎ 아직도 결혼을 믿으세요? 

책이 내게 질문한다. 
아직도 결혼을 믿으세요? 

언제부턴가 결혼에 대한 환상은 접었다. 결혼을 하면 꿈과 환상의 나라가 펼쳐지고, 나를 구속하는 집으로부터 벗어나 나만의 공간과 나만의 새로운 가족을 꾸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환상 따위는 정말 말 그대로 그저 환상이라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어떻게 알았냐고? 우리 가족의 모습을 잘 관찰해보면 알 수 있다. 나뿐만 아니라, 당신도 당신의 가족을 잘 들여다보라!) 착한 며느리 따위 되지 않겠다고 선포했던 책 속의 한 언니가 말했듯이 결혼은 그런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비혼인 것은 아니다. 아직도 마음 한 켠에 꿈틀꿈틀 거리는 결혼에 대한 환상의 잔재가 남아있고, 좋은 사람이 있고 시기가 알맞다면 결혼을 할 생각이다. (한 10년 뒤쯤?) 사실 요즘 꿈꾸고 있는 바는 그 좋은 사람과 동거를 하며 사는 것이지만. 독립도 하늘에 별 따기인 내게 동거는 인생전체를 가족과의 싸움판으로 만드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 아직도 가족을 믿으세요? 

결혼이 환상일 수밖에 없는 이유. 한국사회의 지독한 가족주의 때문이 아닐까. 우리 사회에 오롯이 한 개인으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놈에 허구투성이 가족주의는 내 숨통을 조르는 가장 핵심에 있는 녀석이다. 대부분은 결혼에 대한 환상만큼이나 가족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내가 당신들에게 질문하고 싶다. 아직도 가족을 믿으세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구속하고, 가족이기 때문에 그것에 순응해야하는 구조는 정말 미칠 노릇이다. 특히 이 가족을 구성했고 유지하는 대에 큰 몫을 하고 있는 부모들은 (나의 부모의 부모가, 그 부모의 부모가 그랬던 것과 같이) 가족의 유지와 평화를 위해 자신들이 가진 기준에 맞춰 자식들을 구속한다. 어쩌면 이게 가족주의에 대한 비약일지도 모르겠지만, ‘가족’이라는 한 단어면 만사OK인 이 사회가 나는 조금 지겹다. 

책에서는 이러한 가족으로부터 벗어나, 가족 밖에서 새로운 삶을 사는 언니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꾸리며 가족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찾은 언니들도 있다. ‘가족’이라는 게 겨우 이런 것인가라고 앉아서 실망만 하던 나와는 달리, 그녀들은 바깥세상으로 뛰쳐나가 또 다른 의미를 찾았다. 그런 언니들의 이야기는 통쾌하고 상쾌하다. 


◎ 다 큰딸, 이제 혼자 굴러가겠습니다. 

사실 현재 나의 삶에서 결혼은 큰 화두가 아니다. 내게 이 책을 추천하던 토끼님이 책을 건네며 말했던 것처럼 요즘 내 삶의 화두는 독립이다. 최근 한 달 사이에는 좀 시들해졌지만 (운동을 싫어하는 내가 헬스를 시작하면서부터 집에 ‘일찍’ 들어가기 시작했더니 부모님과 싸울 일이 없어졌다. 나는 또 금새 너무 착한 딸이 되어 있었다.) 지금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기꺼이 ‘독립’이라 말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책 속에 많은 언니들의 이야기 중에 가장 공감했던 것은 ‘다 큰딸, 이제 혼자 굴러가겠습니다.’였다. 

독립이 이리도 길고긴 싸움과 지리멸렬한 과정, 인내가 필요한 것이었던가. 나는 결혼에 대한 환상보다, 동거에 대한 바람보다, 독립에 대한 환상과 바람이 극에 치달아 있었다. 환상만 무성히 가지고 있고 행동에는 개미 똥만큼도 옮기지 않았기 때문에 이 모양으로 살고 있지만, 독립만 하면 나만의 세계가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내게 돈이 생기고 굳은 결심만 하면 휙~ 하고 뛰쳐나가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라는 야무지고 허황된 꿈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내가 부모님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못하고, 너무 착한 딸인‘척’ 살고 있는 것은 단지 독립할 돈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리화 하며 살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난 너무나 착한 딸이고 믿음직한 맏이이다. 그러한 내가 되기 위해 난 종종 거짓말쟁이가 된다. 통금과 외박금지, 연애상대에 대한 훈수 등으로 나를 압박하는 부모님을 피하여 종종 음주와 밤 문화, 애인과의 시간을 즐기려면 입에 침도 안 바르고 뻥을 치는 솜씨정도는 있어줘야 했다. 집에서 학부시절 나는 미치도록 MT(진짜 MT 조금, 가짜 MT 많이)를 다니는 학생이었으며, 친구들은 모두 여행 마니아였다. 진실을 통해 허락을 받아내기에는 너무나 긴 싸움이 필요했기 때문에 거짓이 들통 나는 순간 내 인생은 끝이라는 생각으로 거짓말을 하고는 매 순간순간을 지나쳤다. 

내가 여자이고, 그들의 착한 첫째 딸이기에 주어지는 많은 의무와 규제들은 나를 독립에 대한 환상의 세계로 이끌었다. 그런데 너무나 슬픈 사실은 독립을 위해서는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오롯이 한 개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가족들과 싸우고 상처를 내야한다니. 싸우는 과정은 너무나 다사다난하고 길고 힘들다.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그 과정을 참고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항상 그 마찰을 인내할 자신이 없어 나는 현실을 회피했다. 이런 내게 책 속의 언니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원하는 독립을 얻어내기 위해 어떠한 과정을 거쳐야 했는지 이야기해준다. 

내가 그토록 원하는 독립을 위해 난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언니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무한 반성을 했다. 우리 집 같은 곳에서 독립을 쟁취하려면, 최소 3~5년 정도는 싸워줘야 승산이 있을까 말까한데 ‘돈만 생기면 나가겠어!’라는 환상만 가지고 있었다니. 아주 솔직히 돈만 있으면 뛰쳐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 속의 언니네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부모님도 나를 떠나보낼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언니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 혼자만의 독립이라고 생각했던 협소한 시각을 부모님의 독립으로 까지 확장할 수 있었다. 철저한 사전작업을 해야 부모님도 나를 떠나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 현재 우리 부모님은 나를 당연히 결혼 전까지 품에 끼고 살 생각을 하고 계시니 말이다.(결혼을 안 하면, 난 평생 부모님이랑 살아야 하나? 오 마이 갓!) 

그래서 나도 이제 다이어리에 소박하게 독립의 염원을 세기고 준비 작업을 시작해야 할까보다. 부모님도 마음의 준비를 시키고, 그렇게 나도 단련을 시작해야 혼자 굴러갈 수 있는 날이 오지 않겠는가! 


◎ 끝내며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하나 더 알려드리자면, 나는 이 글을 집에서 쓰고 있는데 시원한 곳에 있는 거실 컴퓨터를 뒤로 한 채 통풍도 잘 안 되는 내 방에 앉아 열기를 푹푹 내뿜는 노트북을 끌어안고서 잘 쓰지도 못하는 글을 쓴다고 키보드를 뚱땅거리고 있다. 

이 뉴스레터를 부모님이 읽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기를 빌며 부모님이 읽을 새라 몰래 덥기만 한 방구석에 콕 박혀서 쓰고 있는 것이다. 나의 뻥에 대한 커밍아웃(?)이 담겨있지 않은가! 착한 큰딸의 이중생활이 폭로되는 순간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 부모님에게 나는 연애한번 안 해본 순백의 착한 딸인 것을. 아- 정말 갈 길이 멀다. 허나 좌절하지 않으리! 

책을 읽는 내내 무슨 일제 강점기에 몰래 독립운동을 하는 것 마냥 밀서를 읽는 기분이었달까. 나도 서른 전에 집나간 언니가 되길 꿈꾸며. 


문화교류팀 양유경



고은영 11-04-06 10:54  211.61.23.114        
싸움도 싸워본 사람이 한다는 말은 맞나보다. 
난 싸움이 싫다. 목에 핏줄이 서고 문을 쾅 닫는 싸움은 더더욱 싫다. 
그러니 삶에서 독립운동을 해야만하는 순간이 오면 뒤로 물러서거나 숨거나 제풀에 피흘리며 과장되게 꼬꾸러지거나가 더 쉬울 수밖에. 아님 언어의 논리로 무장한채 이만 닦거나.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들이 아픈게 싫은 게 아니라 내가 덜 다치고 싶은거라고. 
연실 내게 피구공을 던져대는 큰 애한텐 그건 한바탕 땀흘리게 하는 운동이죠. 공하나 제대로 못받는 내겐 아픔이지만. 
종아리에 근육좀 붙고 팔뚝이 좀 굵어지면 덜아프겠죠 아마도. 
내가 덜 다치면 그들도 덜 걱정할거예요 아마. 

그래서 열심히 연고 바르는 중임다 지금도. 견딜만하면 그대로 둘 수있을 때까지.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