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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성(Sexuality)을 읽다./핫!! 핫한~잇슈!

나는 왜 섹스팅이라는 말에 놀라지 않았나

작성일 : 10-04-30 16:44             
나는 왜 섹스팅이라는 말에 놀라지 않았나
글쓴이 : 아하지기 (59.15.196.148)  조회 : 604  


내가 인턴으로 일했던 청소년기관에 계신 선생님으로부터 얼마 전 ‘섹스팅’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다. 어떻게 생각하냐는 물음에 먼저 섹스팅이 무슨 뜻인지 궁금해졌다. 섹스팅이라. 일단 단어부터 강렬하다. 순진한 건지, 불순한 건지 문자 그대로 섹스(성적인 행위)를 위한 목적으로 만나는 어떤 ‘만남’ 같은 건 줄 알았다. 그런데 문자 그대로 이해하고 선생님과 대화를 하면서 오해가 빚어졌다. 뒤늦게 선생님이 보내주신 문서나 설명 덕분에 내가 생각했던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찰나의 시간에 크게 고민하지도 않고서 왜 그렇게 판단해버렸던 걸까?

요즘 수많은 ‘오해’들이 판을 치고 있는 만큼 섹스팅의 의미부터 간단히 정의를 하고 넘어가야겠다. 섹스팅은 섹스(sex)와 텍스팅(texting)의 합성 신조어로 ‘자신이나 친구들의 성적으로 노골적인 이미지나 메시지를 휴대폰을 통하여 제작하거나 친구들에게 유통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나아가 그들 안의 네트워크 밖으로 까지 유통, 판매하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 섹스팅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청소년이 섹스팅을 해본 경험이 20%에 달한다고 한다. 크게 놀랄 일인지 모르겠다. 이건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다. 섹스팅에 대한 설명이 아주 낯설거나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단어를 처음 들었을 뿐 중학교 다닐 때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종종 “몇 학년 몇 반 애들이 여자애들 치마 사진을 찍는다더라.” 같은 카더라식 뉴스를 들었고 실제로 촬영하는 걸 직접 봤다는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녀석의 이야기였다. 



포르노 동영상을 보는 연령대도 점점 낮아져서 예전에 중학생 중반에 머물던 게 이제는 초등학교 2학년, 3학년까지 내려왔다. 사실 우리에게 섹스팅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문화인지도 모르겠다. 아쉬운 건 거기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도 없고 이것이 어른들 사이에서 연구자들 사이에서나 문제가 다뤄질 뿐이라는 점이다. 그에 비해 당사자인 청소년은 세상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호기심을 어릴 때부터 도려내어진 채 오로지 언어 수리 외국어 탐구에만 몰두한다. 우리에게 성에 대해 제대로 알 여유 같은 건 없어져 버렸다.


맞춤형 성교육? ‘닫아놓고 신경 꺼라’

이제 막 관심이 생겨서 알고 싶은 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의 영역에서 다뤄주기는커녕 쉴 틈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닫아놓고 신경 꺼라’ 선에서 최소한으로 말해주는 실정이다. 맞춤형 성교육인가? 사회는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애들은 자라는데 교육은 그대로다. 그러나 무슨 상관이랴. 누가 그렇게 만든 건지 몰라도 성을 비롯한 세상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최대한 단절하지 않고 살기엔 세상이 너무 피곤해져 버렸다. 한 달이 멀다하고 치는 시험에 지쳤고, 무한 입시 경쟁에 지쳐 버렸고 그래서 꿈에 지치고 삶에 지쳐버렸다. 그런 청소년들에게 어느 날 우연히 성적인 어떤 상황과 마주치게 됐을 때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건 뭘까? 실수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태도를 기대할 수 있을까?

작은 에피소드로부터 시작된 생각이지만, 내가 이만큼이나 섹스팅에 대해 놀라지 않았던 것은 그만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무뎌졌다는 뜻이다. 개인의 감수성도 이 정도인데 타인에 대한 생각이 얼마나 크게 자리 잡고 있을까. 자연스레, 섹스팅 같은 폭력이 일어나는 원인이 서로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닌 타인의 감정을 먼저 살필 틈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말이다.

폭력은 사람을 이해하는 감수성의 부족에서 온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처벌보다는 감수성을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데 섹스팅을 범죄로 보고 처벌해야 할 무엇으로만 보는 기사를 접했다. 우리에게 정말 그럴만한 시간이 있을까? 나를 아끼고 상대를 아낄만한 경험을 할 수 있을까?


공감능력의 부재 - 역지사지 능력 평가 시험

같은 실수가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려면 모두가 이 문제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성에 대해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아이들은 줄곧 높은 관심으로 표현하고 싶은 곳을 찾는데 당당하고 큰 소리로, 더군다나 즐거운 감정으로 성에 대한 이야기를 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 


성을 바라보는 다양한 사람들의 관점의 나눔.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성이 어떤 것인지를 솔직하게 말해보는 것. 그것이 청소년의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학교 안의 교육 안에 녹아 있을 것. 궁극적으로 이 안에서 역지사지의 태도,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줄 아는 마음을 배워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비극적인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저지른 놈이 나쁜 놈이다, 손가락질만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의 발전은 개인의 성숙과 인격에서 온다고 했다. 좀 더 성숙한 자세와 제도가 필요하다.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서 안타깝지만 우선은 현실에 대한 인식이 우선인 것 같다. 아직까지 청소년의 범주에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역지사지 능력을 평가하는 실기시험이 있다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우스갯소리 정도가 전부다.


아하!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청소년운영위원 곽제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