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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의 임신, 생명과 낙태권 사이에서

작성일 : 10-02-28 16:33             
십대의 임신, 생명과 낙태권 사이에서
글쓴이 : 아하지기 (112.149.189.207)  조회 : 722  


사춘기 담론은 월경을 시작하는 소녀들을 ‘여자가 되었다’로 등치시킨다. 여기서 여자가 되었다는 의미는 바로 임신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능력이 여성의 몸에 대한 프라이드로 연결되는가? 아니다. 이보다는 오히려 임신가능한 몸을 가졌다는 이유로 여성들은 몸가짐을 조심해야한다는 문화적 검열에 놓이게 된다. 여기서 여성은 임신을 하는 몸의 주인으로서 드러나지 않는다. 즉 임신을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한 경우 임신을 중단할 수 있는 권리가 말해지지 않는다.

최근의 낙태논쟁이 보여주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태아생명 존중을 강조하면서 낙태근절을 촉구하고 있다. 생명담론에서 태아는 여성의 몸과 분리된 독립된 개체로서 인정되고 있으며, 여기서 태아의 권리는 여성의 생명이 위협되는 순간을 제외하면 거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생명과학의 발달은 결코 여성의 몸과 분리되어서 설명될 수 없었던 태아를 독자적인 생명을 가진 독립된 주체로 만들어내고 있으며, 따라서 여성들의 낙태행위는 태아를 ‘죽이는’ 살인행위로 인식된다. 

그렇다면 이런 논리 안에서 여성들의 낙태권의 의미는 무엇인가? 한국사회에서 낙태는 불법이다. 형법상 낙태의 죄에 따르면 낙태행위는 법에 저촉되는 불법행위에 다름 아니다. 모자보건법상 낙태일부 허용조항이 있지만, 이는 주로 의학적, 유전학적 이유로 제한된 것으로, 진작 다수의 여성들이 낙태를 하게 되는 이유가 사회경제적 이유라는 점에서 여성들의 합법적인 낙태를 상상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따라서 대부분의 낙태가 불법인 상황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 워싱턴 블레어하우스 외부에서 낙태 반대하는 운동가들 - (c) 뉴시스>

여기서 우리는 십대들의 임신을 고려할 수 있다. 만약 한국사회에서 십대가 원하지 않는 임신을 했다고 가정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태아의 생명을 고려하면서 출산을 지지하고 입양 또는 엄마가 되도록 권유할 것인가? 아니면 십대의 처지를 고려해서 낙태를 허용할 것인가?

생명담론 안에서 십대임신은 여전히 어떠한 차이도 갖지 못하고, 출산만이 대안이 되며 미혼모지원이 해결로 인식된다. 그런데 현실이 그런가? 십대엄마와 미혼모에 대한 지원이 강화된다고 해도 지금 출산한 미혼모가 수혜를 받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미혼모가 몰래 아이를 낳고 아이를 유기하게 되는 현실을 비단 과거의 경우라고 치부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미혼모의 현실은 더 진전되지도 나아지지도 않았다. 당장 십대들은 임신을 하면 학교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자퇴를 강요받는다. 비단 학습권 침해만이 아니라 여전히 부정적인 사회적 시선, 그리고 가족, 친구들과의 분리도 십대미혼모들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다. 또한 출산을 한다고 해서 키울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십대들에게 태아생명의 소중함만을 이야기 하면서 아이를 낳게 하는 것이 과연 윤리적인 것인가?

문제는 십대들의 처한 경제적, 정서적 조건의 변화가 이들의 섹슈얼리티, 나아가 임신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저소득층 십대들의 빈약한 물적, 정서적 토대는 이들로 하여금 친밀성에 대한 욕구를 증가시키는 한편 이러한 욕구는 구체적인 연애, 동거생활로 이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십대들의 노동시장 진출과 알바노동을 통한 경제적 독립가능성은 이들의 독자적인 생활영역을 확장시키는 것과 아울러 성태도와 행동에서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따라서 십대의 섹슈얼리티 교육은 더 이상 성관계연기, 억제의 틀 안에서 설명하기보다는 성관계가 만들어내는 임신, 양육, 모성 등 다양한 책임에 대한 이야기들을 동반해야 한다. 부모되기 교육도 십대부터 시작되는 것이 필요하다. 아직 일부이긴 하지만 십대들이 엄마가 되고 있고, 또 일부의 십대미혼모들은 경제적 조건이 허락된다면 자신이 엄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대부분 교제관계에서 임신을 하는 십대커플의 경우 남자파트너들이 출산에 동의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동의가 양육책임과 양육을 위한 물적 기반을 가졌다는 것과는 구별되지만, 자신이 아버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십대, 이십대 초반의 남성을 찾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은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십대 임신을 주제로 제작된 제이슨 라이트먼의 2008년작 영화 JUNO의 한 장면>

구체적으로 십대들의 임신예방교육과 특히 십대초반기에 있는 아이들이 성적 무지에 의해서 임신을 하지 않도록 하는 실질적인 피임교육이나 성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며, 그 대상은 십대여성, 남성모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십대후반의 아이들의 경우 이들의 임신중단이든, 출산이든 임신에 대한 자기선택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낙태 또는 출산을 선택하는 이들의 특수한 사회경제적, 문화적 상황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들이 임신을 지속하고 출산, 양육을 원하는 경우 지원방안을 고민해야한다. 학교를 중단하지 않고 양육이 가능한 사회적 환경에 대한 고민이 병행되어야 하며, 그 시작은 임신, 출산으로 인한 학교단절 관행부터 개선되어야 한다.

대만의 경우 성평등교육법(2004)을 통해서 임신한 학생의 교육권을 보장하고 있으며, 임신한 학생을 위한 상담 조례규정-학교는 학생이 임신, 출산, 낙태를 한 것으로 차별할 수 없다. 임신한 학생의 출석, 결석, 출산휴가 허가에 있어서 융통성을 두어야 한다-을 두고 있다. 이들의 교육권 보장은 십대엄마들이 기초교육에서 배제되면 사회생활이 어렵기 때문에 처벌보다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

십대임신에 대한 논의는 이들의 학습권 보장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임신에 대한 결정은 십대들의 자기결정 의지가 존중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존중이 십대들로 하여금 임신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지도록 몰아가거나, 생명과 낙태권 사이에서 결정을 강요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태아의 생명을 강조하면서 무조건적인 출산을 강요하기 보다는 이들이 놓인 사회적 상황과 개인적 처지를 고려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낙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경우 역시 안전한 낙태가 가능하도록 제도화되어야 한다.

낙태가 불법이고 살인이라는 인식이 강한 현 상황에서 십대들은 낙태를 해도 자유로울 수 없고, 하지 않아도 다른 출구가 없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십대임신을 포함하여 낙태를 합법화하는 방안으로서 모자보건법상의 사회경제적 사유를 포함시키는 방법이 보다 적극적으로 고민되어야 한다. 낙태근절이나 처벌강화로 가기보다는 연령, 계층, 교육 등 여성들의 다양한 처지들이 반영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낙태를 합법화한다고 낙태가 많아지지 않으며, 오히려 낙태처벌이나 규제가 높은 나라에서 낙태율이 더 높고 여성의 건강권 침해 등 낙태관련문제가 더 많이 파생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는 것이 새로운 시작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인구보건복지협회
조사연구실장 서정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