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하! 성(Sexuality)을 읽다./핫!! 핫한~잇슈!

음란한 드라마? 용감한 말걸기

작성일 : 10-05-31 14:38             
음란한 드라마? 용감한 말걸기
글쓴이 : 아하지기 (59.15.196.148)  조회 : 514  


지난 5월 9일이던가요, sbs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극본 김수현/연출 정을영)에서 ‘동성애 키스신’이 방송되었다고 합니다. 극중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자’, 즉 성적 소수자의 인권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공감하는 사회적 합의가 어느 정도는-물론 10대 성소수자의 상황을 생각하면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형성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지지를 보내기도 했고 심지어 ‘감동’과 ‘공감’의 눈물을 흘렸다는 인터넷 감상평도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다른 한 쪽에서는 ‘동성애’, 그것도 키스라는 사랑의 표현을 직접적으로 내보낸다는 것에 거부 반응을 보이기도 했어요. 어떤 기사를 통해 보니,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어떻게 온 가족이 보는 주말 드라마에 동성애자들의 키스 장면을 내보낼 수 있느냐’라는 항의 전화를 건 사람도 있었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도대체 어떤 장면이었길래 이렇게 논란이 되었을까 싶어 문제의 장면을 찾아봤지요. 혹시 못 보신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극중 ‘동성애 커플’로 나오는 태섭(송창의 분)과 경수(이상우 분)는 자신들의 사랑을, 관계를 주변의 지인들과 가족들에게 평생 말하지 못하는 괴로움을 나눕니다. 태섭은 전부인과 딸을 만나러 서울에 갔다 오는 경수를, 공항에서 따뜻하게 마중 못하고 집에서 기다려야 하는 처지를 서글퍼합니다. 이어서 태섭은 경수에게 부모님께 분가를 허락받은 사실을 전하며 "여기 들어와 사는 건 좀 그렇다. 어차피 큰 사기꾼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건 좀 그렇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둘은 자연스럽게 키스를 하게 되고, 화면상으로는 벽 모서리를 잡고 있는 태섭의 손이 보여집니다.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이것이 정말 화제의 ’동성애 키스신‘ 인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적잖이 실망했습니다. 최소한, 최근에 tv를 통해 보는 ‘이성애’ 커플의 키스신과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아시다시피 한국의 드라마는 거의 대부분 ‘이성애’ 를 주로 다루고 있으며 그 안에서 대부분 ‘이성애’ 커플의 키스신은 상당히 직접적으로 연출됩니다. 두 주인공은 화면 중앙에 커다랗게 클로즈업이 되고 포개진 입술을 최대한 판타지적으로 표현하곤 합니다. 특히 보는 사람들이 동일시하는 주인공들일 경우, 낭만적 사랑의 각본에 어울릴만한 음악을 배경음악으로 깔면서 말이죠. 그런데 ‘가족들이 함께 보는 주말 드라마에 어떻게 이런 걸 내보낼 수 있느냐’라고 말하기에는 그 수준이 너무 순수해(?) 저로써는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어리둥절할 뿐이었습니다.


성적 일탈 행위로써의 ‘동성애’ 읽기

그래서 곰곰이 생각을 해 봤습니다, 도대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 지점이 무엇일까 하구요. 그것은 ‘키스’라고 하는 특정한 성적 행동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다시피 이성애자들의 키스는 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키스를 한 것이 ‘남성과 여성’이 아닌 ‘남성과 남성’이라는 점에서 생깁니다. 이 문제의 키스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표현-우리가 늘 일상적으로 타인과 맺고 있는 관계들처럼-으로 보고 있다기 보다는 ‘성적 일탈 행위’ 중의 하나로 읽어낸 것이죠. 즉 ‘동성애’ 자체가 하나의 성적 행위로만 받아들여진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마치 수많은 포르노에서 여성과 여성이 ‘남성’으로 상정된 관람자가 흥분할 수 있도록, 보는 이의 욕망에 맞추어 몸을 도구화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안에서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일상에서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사람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이 때문에 사회 제도나 개인적 관계들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갈등들이 아닙니다. 그저 보는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이 욕망을 충족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는 사회와 직접적으로 단절되고, 도구화되어 있는 몸의 행위가 있을 뿐이죠.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보여진 몸, 보이는 모습들이 이런 ‘포르노’인가, 그런 음란물인가를 살펴봤을 때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키스는 납득할만한 감정, 관계, 상황들이 존재합니다, 자연스런 일상의 삶의 모습처럼 말이죠. 즉 ‘동성애’는 포르노에 나오는 성적 일탈행위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의 ‘정체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나는 누구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며, 특별한 관계를 만들어 가는가를 포함하는 하나의 삶의 모습인 셈이죠.


관계와 삶, 자율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용감한 말걸기

이렇게 생각해보니, 사람들에게 ‘동성애 키스신’이라고 이름 붙여진 장면은 사실 - ‘베드신’이나 성폭력이라고 밖에 읽혀지지 않는 ‘강제 키스’, 여성에 대한 모멸과 기만의 과정을 동반하는 일명 ‘낭만적 연애’를 주요한 내용으로 담고 있는 이성애 커플 주인공의 드라마에 견주어 볼 때 - 건전하다 못해 ‘시시한’ 키스 장면 중 하나에 불과할 뿐입니다. 오히려 보는 사람이 ‘음란함’의 시선을 버린다면, 이런 키스신은 ‘보이지도’ 않을 겁니다.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결국은 같이 살아가고 ‘평등한 삶’을 살기 위해 손 내미는 용기가 더 큰 센세이셔널한 충격으로 다가오겠죠.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극중 태섭이 가족들에게 커밍아웃하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감동받은 것처럼 말이죠.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우리가 ‘동성애 키스신’이라는 것만을 떠올린다면, 우린 이미 그것을 포르노처럼 소비하고 있는 것일 겁니다, 그야말로 ‘음란한 시선’을 가지고 말이죠. 관계와 삶, 자율성을 가진 사람들의 공동체에서 어떤 포용과 소통이 가능한지를 본다면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장면, 우리가 눈물을 훔치며 함께 볼 수 있는 장면들이 더욱 기억에 많게 남게 될 것입니다.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가 특별한 청소년들이-성소수자 (가족을 가진) 청소년, 다문화 가족의 청소년, 장애 청소년 등을 포함한 ‘보통’의 청소년들까지- 자신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타인과 소통하고 더불어 사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사례의 하나로써 말이죠. 어쩌면 이건 청소년에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아직도 나와 다른 타자를 무서워하고 함께 살길 두려워하는 어른들에게, 이 드라마는 어쩌면, 용감한 말걸기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레즈비언 라디오 방송 ‘L양장점’
활동가 수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