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교육 환경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 ‘2015 학교 성교육 표준안’
2018년 법조계를 시작으로 연극계, 문학계, 체육계, 교육계 등 각계 각층에서 발생한 성희롱·성폭력의 심각성을 고발한 미투 운동이 교육계까지 확산되어 스쿨미투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로 인해 교육부는 ‘교육 분야 성희롱·성폭력 근절 자문위원회’를 구성했고, 이 자문위원회에서는 중등교육기관 성희롱·성폭력 방지 및 구제절차를 권고하였다(2018년 8월 28일). 이 권고 내용 중에는 ‘학교성교육표준안을 폐기하고, 국제적 기준에 맞는 포괄적 성교육 원칙과 방향을 제시하는 새로운 성교육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서 제공하라’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교육부는 이러한 권고안을 반영하지 않고, 여전히 학교 성교육 기본 방침으로 문제적인 ‘2015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내세우고 있다. 교육부 <2019년 학생건강증진 정책 방향>과 서울시 교육청 <2019년 학교 성교육 및 성폭력 예방교육 추진 계획>에 의하면, 학교 성교육 기본 방침으로 ‘성교육 표준안 적용 및 근거하여 실시하라’고 되어있다. 더불어 외부 기관 초빙이나 체험형 성교육 시 성교육 표준안 준수 요구와 임장 지도하라고 명기되어있다.
교육부 【 2019 학생건강정책증진 정책방향】 2. 학교성교육 내실화 기본 방침 ◦ 국가 수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 적용을 통한 학교교육과정에서의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성교육으로 학생들의 올바른 성가치관과 성의식, 성태도 확립 추진방향 ◦ (성교육 기본계획 수립ㆍ추진) 학교 성교육 표준안에 근거하여 관련교과와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하여 포괄적ㆍ체계적인 성교육과정 편성·운영 |
서울시교육청 【 2019 학교 성교육 및 성폭력 예방교육 추진 계획】 2. 운영방침 ○ 국가 수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참고하여 학교교육과정에서의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성교육으로 학생들의 올바른 성가치관과 성의식, 성태도 확립 |
교육부에 따르면 ‘학교 성교육 표준안’에 대한 개편 작업은 2019년 이후 2월 이후 중단됐다고 한다(한국일보 2019년 7,10.). 2018년 3월 제3차 사회관계장관 회의에서 교육분야 성희롱ㆍ성폭력 근절 대책 추진 계획으로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개편해 2019년 상반기 중 보급하겠다고 밝혔지만 약 1년만에 아무런 대책 없이 멈춘 셈이다. 사실상 참고할 수 있는 학교성교육표준안은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성교육표준안을 근거해서 성교육을 운영하라고 지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2015년 교육부에서 발표한 ‘국가 수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에 대해서 ‘시대착오적, 비전문적, 성차별적, 편향적, 국제사회 인권기준(아동권리협약, 여성차별철폐협약 등)에 위배’라는 수많은 언론의 질타와 국제인권단체(휴먼라이트워치 HRW)의 공개서한을 비롯해 인권단체, 여성 및 청소년 성교육단체 등의 민원이 이어져왔다. 또한 교육부는 2015년 학교성교육표준안 전달 연수에서 ‘초등학교에서 자위행위 언급 금지, 중학교에서 야동 언급 금지, 중고등학교에서의 성교육은 절제가 아닌 금욕이 바탕, 다양한 가족 배제, 동성애와 성소수자에 대한 지도 허용되지 않음’ 등을 안내했다.
이러한 학교 성교육 표준안의 영향 아래, 현재 학교 현장에서는 성에 대한 논의를 더욱 금기시하고 청소년의 성을 성별 이분법적이고 금욕주의적으로 접근하는 성적 엄숙주의로 인해 성교육 환경이 더욱 경직되고 악화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갖고 있는 학교 성교육 표준안은 학교 현장의 심각한 성차별과 성폭력, 인권 침해 문제를 예방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에 성교육 및 인권, 여성 단체에서는 학교성교육표준안이 ‘생식 위주의 이성애 관계를 모델로 하여 성차별 및 성별 고정관념 강화, 성폭력 예방교육의 후퇴, 십대 성문화 현실을 무시한 금욕주의 강조, 십대 성적자기결정권 침해, 다양한 가족과 성소수자 배제 등을 담은 차별적이고 반인권적인 교육안으로 폐지해야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창하고 있다.
2019년 현재에도 ‘학교 성교육 표준안’에 대한 문제제기는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올해 6월 교육위원으로 활동중인 박찬대 국회의원은 “현재 학교 성교육 표준안이 이분법적 성역할을 고착화하는 등 성차별적 규범을 강화하고 있으며 최근 심각한 문제가 되는 디지털 성폭력 등에 대한 내용은 표준안에 전혀 담겨 있지 않아 시대에 맞지 않는다”면서 학생들의 요구와 시대적 변화 등을 총괄적으로 반영한 새로운 기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일보 2019.6.2.)
국제적 인권 기준과 젠더 평등에 기반한 ‘포괄적 성교육’으로의 전환 필요
지난해 8월 ‘교육 분야 성희롱ㆍ성폭력 근절 자문위원회’에서 권고했듯이, 교육부는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폐기하고 새로운 성평등 교육 요구와 청소년 현실을 반영하고 국제적 기준에 맞는 ‘포괄적 성교육 가이드라인’ 작업에 조속히 돌입해야 한다. 청소년의 주체적 결정능력을 향상시키며 젠더폭력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세계 각국의 증거 기반 연구를 참고하여 2018년 “UNESCO 성교육 가이드( (national technical guidance on sexuality education)”등 국제적 흐름을 반영한 포괄적 성교육 가이드를 새롭게 마련해야 한다.
2018년 “UNESCO 성교육 가이드” 보고서에 의하면, 포괄적 성교육(Comprehensive Sexuality Education)은 성적 관계 내에서 자신의 권리에 대한 지식을 늘리고 청소년들이 건강한 성생활을 표현하고 건강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대인 관계 의사 소통 기술 및 의사 결정과 같은 사회·정서적 기술의 개발을 촉진한다. 포괄적성교육(CSE)은 청소년들이 사회적 행동과 문화적 규범이 성적 행동에 긍정적, 부정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성역할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도록 권장한다. 또한 포괄적 성교육(CSE)은, 청소년 복지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는 HIV 및 에이즈, 성병(STIs), 의도하지 않은 임신, 젠더 기반 폭력(GBV) 및 젠더 불평등이 여전히 존재하는 세상에서, 청소년들이 안전하고 생산적이며 충만한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포괄적 성교육을 효과적으로 실시하기 위해서는 지역 사회 전문 기관과 연계된 학교 기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확대해야한다. 2016년 유네스코 CSE 성과 검토 결과에 의하면, 가장 영향력 있는 섹슈얼리티 교육은 콘돔 배포, 청소년 친화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훈련된 건강 관리 제공, 부모와 교사의 참여를 포함한 지역 사회 자원과 연계된 학교 기반 프로그램이다. 포괄적 성교육으로의 패러다임의 전환과 더불어 지역 사회 전문 인프라(청소년성문화센터, 성폭력상담소, 인권 단체 등)를 강화하여 교육부와 여성가족부, 시·도청과 시·도 교육청 연계 협치 교육을 개발 및 확대해야 한다. 현재 여성가족부가 개발해서 실시하고 있는 성인권 사업(초·중·고)과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 청소년성문화센터가 협업으로 실시하고 있는 ‘마을속 성평등한 학교 만들기’사업 등을 확대해서 실시할 필요가 있다.
포괄적 성교육을 실효성 있게 실시할 수 있는 학교 성교육 정규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성교육이 정규교과가 아니기 때문에 학교 성교육 운영은 학교장과 담당교사의 재량에 따라 운영되고 있어서 천차만별이다. 2015년부터 학년 당 15시간 성교육을 실시하라는 교육부지침이 있지만 수업 시수확보가 늘 어렵고 가르치는 교사에 대한 지원도 부족하고 교육내용에 대한 합의도 미흡하다. 그래서 학교 성교육은 다른 교과에 얹혀가는 방식으로 보고되고 있다. 창의적 체험활동시간을 이용해서 보건교사가 실시하거나 관련 교과(가정, 생물, 도덕, 윤리, 역사, 체육 등)에서 학습내용 중 성과 관련된 내용이 나오면 교과교사가 성교육을 하도록 운영된다. 하지만 성교육 전문 훈련을 받지 않는 교사의 교육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성교육을 실효성있게 실시할 수 있는 성교육 시간 확보와 이에 따른 성교육 컨텐츠와 교사 전문성 향상을 동반해야 한다.
내실있는 포괄적 성교육 정책 수립 및 조정을 위해서 교육부와 지역 교육청에서는 성평등 정책 담당 부서를 설치해야 한다. 현재 교육부는 양성평등 담당과 학교성교육, 성폭력 사안 담당자와 부서가 나누어져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성평등에 기반한 포괄적 성교육정책을 총괄할 추진체계는 여전히 미약하다. 현재와 같은 보건위주의 성교육 토양에서 포괄적 성교육이나 성평등 교육이 의미있게 추진되기는 어렵다. 국제적인 권고까지 받고 있는 2015 교육부 학교성교육표준안은 여전히 그 일을 담당했던 공무원이 담당을 하다 보니 이전 정권의 적폐를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이에 교육부내에 성평등 정책 담당 부서를 설치하고 각 과에 흩어진 업무를 모으고 이를 총괄 조정해야 한다. 성평등 정책 담당 부서에서는 교육정책 전반에 대한 모니터링을 통해 성평등한 학교 환경 만들기를 위한 정책, 교사양성 과정, 교과 과정 개편, 성교육 가이드 라인, 지역 교육청과의 정책 연계 등이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또한 현행 양성평등교육과 폭력예방교육, 성교육으로 분리된 것을 통합과정으로 개편하고 인권과 성인지적 관점에 기초한 성평등 교육과정을 체계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부는 교육부의 자원만을 새롭게 만들려고 하지 말고 여성가족부와 민간 성교육 및 성평등 전문기관과의 협력 방안을 구축해야 한다.
글.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부장 박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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