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교육부가 배포한 학교 성교육 표준안은 부적절하고 성차별적인 내용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다양한 가족 형태를 배제할 뿐 아니라 잘못된 성폭력 예방법을 제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비판 끝에, 2017년 교육부가 성교육 표준안을 손보기로 결정했지만 개편 작업은 현재 기약 없이 잠정 중단 상태이다. 이 성교육 표준안은 여전히 학교 현장에서 활용할 만한 참고 자료로 권고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많은 성교육 전문가들은 UN 포괄적 성교육 국제 지침을 우리가 따를 만한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에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는 올해 2월부터 UN 포괄적 성교육 국제 지침의 핵심 내용을 카드 뉴스 시리즈로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ahacenter)에 소개하고 있다. 8가지 주요 핵심 개념을 4개의 연령 집단(5-8세, 9-12세, 12-15세, 15-18세 이상)으로 구분하여 적용하기 쉽게 제시한 것이다. 지난 8월 21일에는 3탄 ‘젠더 이해’ 편이, 9월 5일에는 4탄 ‘폭력과 안전’ 편이 공개되어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포괄적 성교육의 핵심 개념을 카드뉴스로 업로드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포괄적 성교육(Comprehensive Sexuality Education)이 도대체 무엇일까? 포괄적 성교육은 섹슈얼리티에 대한 인지적, 정서적, 신체적, 사회적 측면을 배울 수 있도록 마련된 커리큘럼 기반 교육 과정이다. 이 교육은 ‘권리’에 기초하고, ‘젠더’에 초점을 두고 성교육에 접근한다. 기존에 성기 중심적, 생물학적 정보에만 치중한 성교육과 차별화된 지점이다.
물론 포괄적 성교육이 정보 면에서 기존 교육에 비해 떨어진다는 뜻은 아니다. 포괄적 성교육은 인간 발달, 해부학, 재생산 건강, 피임, 출산, 에이즈 등 성병에 대한 과학적으로 정확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정보를 연령과 발달 단계에 따라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도 포괄한다.
정보 제공 이상으로, 이 교육은 청소년이 성/재생산 건강과 관련한 긍정적인 가치를 탐구하고 배우는 데 도움을 준다. 가족 생활, 관계, 문화, 성 역할, 인권, 성평등, 차별이나 성 학대 같은 위협 등에 관한 논의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성의 이론적 측면에서부터 실천적인 측면까지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포괄적 성교육은 흔히 오해되곤 한다. 포괄적 성교육에 관해 흔하게 받는 질문들을 살펴보자.
▶포괄적 성교육은 아이들의 순수성을 빼앗는다.
이 질문에서 ‘순수성’이 의미하는 바가 정확히 무엇인지, 그것이 왜 배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차치하고서라도 포괄적 성교육은 더 이른 성적 활동과 ‘위험한’ 성적 행동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사실, 이 프로그램은 ‘위험한’ 행동을 줄인다. UN에 따르면, 프로그램 실행 결과의 3분의 2는 특정한 ‘위험’ 행동이 줄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어린이 또한 연령에 맞는 정보가 필요하다. 포괄적 성교육 안은 발달의 원리에 기초해 있으며 지역적 맥락을 고려한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 어린이는 타인과의 성행동을 하기 이전부터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알아채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신체, 관계, 감정을 이해하는 기술과 지식이 필요하다. 성교육하기 ‘이른’ 때란 없다.
▶성교육은 ‘금욕’을 강조해야 하는데 포괄적 성교육은 너무 방만하다.
UN이 제시하는 내용에 따르면, 절제와 금욕만을 강조하는 성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성과는 아직 확정적이지 않거나 효과적이지 않다. 반면 포괄적 성교육은 포괄적인 접근법 안에서 가치와 책임에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존중, 수용, 평등, 공감, 상호성과 같은 내용을 보편적 인권과 불가분의 관계로 강조한다. 포괄적 성교육이 방관적이고 무책임하며, ‘무분별한’ 성관계를 조장한다는 오해는 오해일 뿐이다.
▶포괄적 성교육은 이미 생물학 등 다른 과목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을 중복적으로 불필요하게 포함한다.
효과적인 포괄적 성교육은 다른 과목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성에 대한 태도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또 이를 젠더와 권력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은 어린이와 청소년의 삶과 건강에 있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
당연하게도, 성교육의 가장 효과적인 결과를 위해서는 교육이 특정한 맥락과 청소년의 필요에 의해 실행되어야 한다. 이에 대한 변수는 성의 영역이 역동적이고 급변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포괄적 성교육 분야를 구분하여 운영하는 것은 커리큘럼, 교수법, 자료에 대해 평가하고 그 퀄리티를 강화할 수 있는 유용한 기회가 되기도 한다.
▶성교육은 학교와 교사 개인의 몫이며 지원 없이도 훌륭히 해낼 수 있다.
질 높은 포괄적 성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훈련과 지원이 필요하다. 교육의 일부분으로 양육자와 지역 공동체를 개입시키는 것은 중요하다. 학교와 사회는 별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에 대해 부정적인 사회문화적 환경을 볼 때 학교에서의 섹슈얼리티 수업은 쉽지 않은 도전이 될 수 있다. 포괄적 성교육을 지도할 교사는 참여적 방법으로 포괄적 성교육 내용에 대한 훈련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청소년들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미 섹스, 섹슈얼리티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섹스와 섹슈얼리티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소셜미디어가 이를 해석하는 관점과 태도를 전달해주지는 않는다. 포괄적 성교육을 받지 않는 경우, 어린이와 청소년은 또래 집단과의 갈등, 미디어와의 갈등과 이로 인한 피해에 취약할 수 있다. 양질의 섹슈얼리티 교육은 긍정적 가치와 관계를 강조하는 완성도 있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물론 포괄적 성교육은 섹스, 섹슈얼리티뿐만 아니라 신체, 사춘기, 관계, 라이프스킬 등에 대한 정보를 포함한다.
포괄적 성교육에 대한 각양각색의 오해에도 불구하고 아하센터는 포괄적 성교육 관점에 기반해 다양한 성교육과 성상담을 실시하고 있다. 앞으로도 포괄적 성교육이 우리나라에서 체계적으로 계획되고 실행되기 위해서는 학교와 국가, 교사, 양육자, 어린이, 청소년의 적극적인 협조가 요청된다.
글. 아하센터 기획협력팀 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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