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t of Shampoo

작성일 : 05-07-12 14:07             
Scent of Shampoo
글쓴이 : 아하지기 (210.181.81.157)  조회 : 322  


 <Scent of Shampoo>

- Written by Wind


마지막 12월... 
나는 처음부터 결론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만둘 수 없었고.. 결국은 오늘 같은 결과를 낳았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그렇듯이 결론은 내가 내리지 못했다. 
사망 선고가 내려진 가련한 암환자처럼 나는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는 수밖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 난 처음부터 그랬었다. 
나와 그 사람의 각본 없는 영화는 이렇게 비극으로 끝을 맺었다. 


처음 10월... 
난 그 날도 평소 같이 나의 허전한 마음을 채워줄 누군가를 찾아서 인터넷을 헤매고 있었다. 나의 성격과 행동력으로 보아 직접 발로 뛰는 건 불가능했다. 그나마 글이라도 나눌 수 있는 인터넷을 사용해서 사람들을 찾고는 했다. 그 날이 넘어가기 30분 전. 
메신저 검색 창에 나이와 지역의 조건만을 넣고 사람을 찾았다. 
아이디가 조신해 보이는 사람이 하나 들어 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마우스를 움직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이디 참 예쁘네요. ^^’ 

첫마디였다. 난 그렇게 428일 간의 길고 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 사람은 무언가 달랐다. 아니, 나와 너무나도 같았기 때문에 너무나 다르다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내가 증오하고 있는 나의 이면까지도 이 사람은 나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나보다 더 잿빛, 나보다 더 깊은, 그런 사람이었다. 한 마디 한 마디 마다 나로 인하여 경탄을 자아내게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우리 둘은 서로 짐을 진 채로 만났다. 나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누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그 사람은 자신 보다 나이가 어린 동생을 좋아 하는 사람으로. 동질감 속에 점철된 처음 만남이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Haze, 아지랑이 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잡힐 듯이 잡히지 않았던, 그렇게 아련한 사람이었기에.. 
그렇게 시작했던 우리들은 거의 매일 만났다. 어쩔 수 없이 메신저이기는 했지만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만났다. 서로에 대한 것들을 한 가지 한 가지 알아 갈수록 나는 이끌려 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그러던 중에 내가 사랑했던 누나를 떠나보내는 일이 생기게 되었다. 내가 누나를 떠나 보내던 날 그 사람도 그 동생을 떠나 보냈다. 이틀 밤을 죽은 사람처럼 보내던 나와 그 사람은 어느새 서로를 위로하기 시작했고 난 그 때 그 사람이 생각보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 느낌을 확실히 하기도 전에 우리들은 고 3을 맞고 조금씩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나는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만나자고 제의를 했다. 
물론 거절 당했다. 그렇게 한 달간의 시간 동안 계속 보채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한 달째 되던 날 드디어 나의 제의를 받아 들였다. 
그 당시 그 사람은 내 얼굴을 알고 있었고 나는 그 사람 얼굴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일방적으로 기다려야 하는 만남이었다. 
만남 장소는 여의나루역 1번 출구. 시간은 다섯 시. 


따뜻한 4월... 
나는 4시부터 나와서 기다렸다. 시간이 다섯 시가 되자 그 때부터는 출구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상상 속에서 나는 기다렸다. 
갑자기 어떤 사람 하나가 내 옆에 와서 척하니 서는 게 아닌가. 
내 옆에 와서 섰던 사람은 너무나도 작고, 너무나도 앳돼 보이는 여자였다. 장난기 있어 보이는 얼굴로 내 옆에 서서는 새침하게 돌아서서는 걸어 나갔다. 
나는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어서 마냥 따라갔다. 
일상적인 대화로 무언가 말을 해야 한다고 느낀 나는 말을 걸어 나갔다. 마치 10년 이상을 알아온 사람처럼, 나는 너무나도 자연스레,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렇게 말을 걸어 나갔다. 
그 사람은 참 말이 없었다. 스스로가 말 하는 것 보다 듣는 것을 더 좋아 한다고 했던 그대로 정말로 말이 없었다. 처음 만남부터 우리들은 걸었다. 여의도 공원을 걷고, 한강고수부지를 걷고, 그렇게 열 시쯤 되어 그 사람을 데려다 주기 위하여 지하철을 탔다. 
그 때까지 거의 말이 없었다. 그 사람 동네에 도착해서 우리들은 이제 막 시작한 연인처럼 집부터 역까지 반복해서 걸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내 손을 잡는 그 사람... 난 4월 한 달 내내 잡아주었던 손을 보며 그 사람을 떠올렸다. 


향기의 5월... 
다음 만남은 우리 학교 축제날이었다. 나는 조금 이라도 일찍 끝난 날은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최대한 노력을 했었는데 그 날은 일이 어떻게 꼬인 것인지 약속을 잡아 놓고도 30분이나 늦었다. 
하필이면 약속 장소는 교보문고, 시간은 다섯 시, 내가 출발한 시간은 다섯 시 삼십분 이었다. 허겁지겁 택시를 타고 달려가서 도착해 보니 그 사람은 자리에 없었다. 나는 너무나도 허탈한 마음에 멍하니 서점을 돌아 다녔다. 그렇게 헤맨 지 삼십 분.. 그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샴푸 냄새. 처음 만난 이후로 한 시도 잊어본 일이 없던 그 샴푸 냄새가 내 머릿속을 휘감아 돌기 시작했다. 
나는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거짓말처럼 그 사람이 그 곳에 서 있었다. 차라리 거짓이었으면 했다. 그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는 우리. 난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할 수 없었고 내 머릿속에는 그 사람의 샴푸 냄새로 가득했다. 
주변을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느껴지지 않았고 오로지 그 사람만 보였다. 오로지 그 사람만 느껴졌다. 
역시나 먼저 움직인 것은 그 사람이었다. 그 날 만남 이후로 난 버릇처럼 사람들의 샴푸 냄새를 기억해 나갔다. 그렇게 나의 5월은 향기로 메워졌다. 


시원한 6월... 
다음 만남은 비가 오고 난후에 싸늘하던 공원이었다. 언제나 모든 만남에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하던 나였건만 그 날은 비가 오고 난 후라는 것을 그만 잊고 만 것이다. 평소처럼 걷고 있는데 날이 추워지고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상당히 추워하기 시작했다. 
어디서 용기가 난 것일까. 난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을 끌어안고 말았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날 풍기던 샴푸 냄새가 내 머릿속 끝까지 들어와 나의 모든 사고를 정지시키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읽었던 소설 구절처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돋는 기분과 함께 나는 또 한번 멈춰 섰다. 
거부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나를 밀쳐내지 않았다. 그렇게 끌어안은 채 나는 계속해서 속삭였고 그 날의 달밤에는 가볍게 끌어안고 있던 우리 두 사람,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여름 같지 않게 서늘하던 6월의 밤은 지나갔다. 


영원의 7월... 
다음 번엔 우리 집 앞이었다. 갑자기 내 핸드폰으로 연락이 왔다. 

‘지금 가면 볼 수 있는 거죠? 그럼 갑니다. ^^’ 

나는 어머니께 이것저것 말도 안돼는 핑계를 대면서 빠져나갔고 
왠지 모를 불안 속에, 약속 장소에서 그 사람을 기다렸다. 하지만 불안한 느낌 그대로 그 사람은 한 시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를 않았다. 연락할 방법이 없던 나는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 한 시간이 더 흘러가고 내가 찾아 나서기로 마음을 먹은 순간 나를 스쳐 지나가는 그 샴푸 냄새. 바로 그 사람이었다.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던 그 사람은 많이 헤맸다고 했다. 그래도 나를 만나기 위해, 나를 만나기 위해서 그 길을 왔던 것이다. 그 상태에서 걸을 수는 없었다. 자주 가는 카페에 가서 땀을 식히고, 이미 너무 늦어버린 시간 때문에 서둘러서 그 사람 집으로 향했다. 그 사람 집 근처 벤치에 앉아서 바람을 쐬던 우리들은 동네 아이들의 재롱을 보며 왠지 모를 편안함에 젖었었다. 그 순간 갑자기 그 사람은 내게 몸을 기대 왔다. 7월의 더운 밤이었음에도 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감각은 이미 마비된 것만 같았다. 아무런 말도,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내 한 팔로 감싸 안아도 들어올 정도의 작은 어깨를 잡아 나에게 끌어 당겼고 그 사람은 나에게 완전히 몸을 기댔다. 
별들도, 바람도, 사람들도, 모든 것이 멈춘 그 순간이 영원하길 바랐다. 헤어지기 위해 정거장에 나온 우리들은 잡았던 손을 놓았다. 
내가 한 걸음도 못 띄어서 우리들은 다시 돌아보고는 서로가 부셔지도록 껴안았다. 7월의 열대야는 우리들 속에 끼어들지 못했다. 그 이후로 수능까지는 만나지 못했다. 내 스스로가 너무나 만나고 싶었지만 우리들의 조금 더 나은 나중을 위해서 나는 참았다. 


다시 11월... 
수능이 끝나고 우리들은 신촌 에서 만났다. 비가 왔다. 
우산으로 집까지 바래다주던 나는 비가 오는 중이니 내 우산을 쓰고 들어가라고 했다. 그 사람은 당연하게 거절을 했고, 나는 계속 강요를 했다. 순간 너무나 무서워지는 그 사람 얼굴에 나는 못 이기는 척 발걸음을 뒤로 돌렸다. 건널목 앞에서 나는 웃으며 인사를 하고는 그대로 우산을 접어서 비를 맞았다. 나는 내가 비 맞는 건 용납할 수 있었지만, 그 사람이 비를 맞는 건 용납할 수가 없었다. 나는 너무나 처연히 뒤를 돌아 봤고, 그 사람은 그 자리에 없었다. 
그 이후로 두 주 동안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후회와 좌절로 안타까운 시간을 지냈다. 그러던 중 두 주 만에 갑자기 연락이 왔다. 

‘넌 말야. 내 어디가 좋은 거야?’ 
‘내가 마음에 드는 한 가지 부분을 댔다가 만약에 그 부분이 사라진다면 너를 좋아 하는 이유가 없어지는 거잖아. 그런 거 싫어. 나는 그냥 니가 좋은 거야.’ 
‘휴우 그럴 줄 알았어. 우리 한 달 동안만 계약 연애 하자.’ 
 
난 바보같이 상처 받을 꺼 뻔히 알면서 제안을 받아 들였고, 아주 잠시 동안 즐길 수 있었다. 그러다가 운명의 12월 12일이 왔다. 
새벽 두 시 삼십 분. 갑자기 전화가 왔다. 

‘갑자기 남자라는 족속들에게 실망했어. 그래서 너도 싫어. 
그러니까 연락하지 말아줘.’ 
‘그래. 그럼 연락하지 않을게. 안녕.’ 

난 붙잡는 것도, 매달리는 것도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처음 
계약 연애의 조건은 떠날 때 붙잡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당황스럽게 이별이 올 줄은 몰랐다. 나는 겨우 그 사람에게 이것 뿐이었나 하는 생각이 나를 감돌았다. 
이해할 수 없는 이별의 이유. 끝까지 그 사람은 나를 뛰어 넘는 대답으로 나에게 할 말을 앗아갔다. 
그 날은 햇살이 비춰 올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난 그 날 처음으로 안녕이라고 했다. 
여태껏 일 년을 넘는 시간 동안 안녕이라고 말한 건 처음이었다. 
안녕이라고 말하는 건 영원한 이별 같다고, 그래서 싫다고 했던 사람에게 안녕이라고 했다. 아무런 생각이 
없어지는 순간. 

내 머릿속에서 그 사람이 풍기던 샴푸 냄새가 내 머릿속에서 울려왔다. 
나는 어딘가에 풀어 놓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내 목소리가 아닌 남의 목소리로 나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 당시 라디오 DJ 의 목소리를 빌려서 고백했던 나의 마음을 적어 볼까 한다. 

제목 : 사람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다른 게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 말할 수 없고, 사랑하는 사람을 붙잡지 못하고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오늘 드디어 나의 사랑하는 그녀에게 처음으로 안녕이라는 말을 했다. 
안녕이라는 말은 왠지 다시는 못만 날 것 같다 해서 안녕이라는 말을 1년 넘게 써 본적이 없는데. 오늘 허락받고 안녕이라는 말을 했다. 
안 하던 사람에게 하니까 정말로 영원히 이별이라는 느낌이 온몸으로 전해져 왔다. 안녕이라 하기 전에 그녀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 
잊지는 않을게.. 그 땐. 정말 좋았으니까. 
밤새 날 위해 노래불러주던 네 모습도.. 
그 덕분에 하루 만에 나아버린 감기도.. 
잊을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니까. 

그랬다.. 
난 까맣게 잊고 있었다.. 
감기 걸려서 힘들다고 하던 날.. 
난 밤새워 그녀에게 노래를 불러주었고.. 
그녀는.. 
다음 날 지나가는 말처럼, 귀찮다는 말로.. 
다 나았다고.. 
그렇게 말했었다.. 
난... 
까맣게 잊고 있었다... 
순간의 행동에 만족하지 못해.. 
내 눈앞에 닥친 상황을 인정하지 못해.. 
그렇게 인정하지 못해서... 
난.. 
그녀를 떠나 보내게 되었다.. 
지난 400여 일간.. 
솔직히 난.. 
행복보다는 고통 속에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사랑하는 지에 대한 확신.. 
그것 없이 난.. 400일간.. 죽음에 가까운 나날들을 보냈다. 

마지막 순간.. 
알게 되었다... 
그녀가 날 사랑하고.. 
다만.. 다만 말하지 못했던 것 뿐이라고... 
나의 어린애 같은 투정에..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었던 그녀였는데.. 
난 느끼지 못했다..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예쁘다는 말은 가볍게 느껴질 정도의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녀가 만들어 놓았던 이미지들.. 
내가 말했던 나의 이상형들이었다.. 
그녀는.. 
나 모르게 자신을 나의 이상형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보다는 적막을.. 
몸에 안 좋은 인스턴트 음식들 보다는 따뜻한 차 한 잔을.. 
아무 생각 없는 유흥거리보다는 차분한 산책.. 

우리들의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인 만남 모두.. 
그 사람의 마음이 아니었나. 한다.. 
떠나보내고 나니 모든 것이 정리된다. 

그녀는.. 
날 사랑했다고. 
다만 '사랑한다.' 라는 말을 하지 못했던 거라고.. 

난 마지막 순간까지 걱정의 끈과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다. 
울기 보다는.. 
다가올 인연의 끈을 위해 기도하는 쪽을 택했다. 

아직도 사랑하고 있기에.. 

그 짙은 샴푸 냄새는 아직 내 속에 남아있기 때문에, 나는 포기할 수 없다. 
언젠가 그 샴푸 냄새가 내 곁을 스쳐 지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우리들의 인연의 끈은 그렇게 짧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 F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