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 Growth Diary (성장일기)

작성일 : 05-05-10 15:47             
[수상작]Growth Diary(성장일기)
글쓴이 : 아하지기 (210.181.81.157)  조회 : 808  
 

<SEXUALITY 感 상>
 

◈ Growth Diary (성장일기) ◈ 

신원중학교 박 진 현

 

 



“오늘부턴 일기를 써봅시다.” 
 
담임선생님이 퉁명스레 짧게 말씀하시고 교실을 빠져 나가셨다. 블루진이 더욱 파랗게 보인다. 너무나 짧고 아리송한말에 반은 곧 술렁거렸다. 일기라니? 

초등학교 때부터 일기 쓰는 걸 죽어라 싫어했던 수한이는 방금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일기라니. 그 지겨운 일기를 이제 와서 다시 쓴단 말인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말이 수한이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든다.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6교시가 끝나고 종례 시간이 다가 오자 담임선생님이 칠판에 무언가 써내려간다. 

‘오늘의 주제: 일기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일기에게 자신의 소개를 쓰기’ 

그러시곤 무언가 맘에 안 드는지 ‘쓰기’를 지우시고 ‘써봅시다’라고 고쳐 쓰시곤 밑에다 덧붙여서 ‘반장은 내일 2교시 끝난 후 일기를 걷어올 것.’ 이라고 쓰셨다. 

그래서 거무튀튀한 칠판엔 ‘오늘의 주제: 일기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일기에게 자신의 소개를 써봅시다 ※반장은 내일 2교시 끝난 후 일기를 걷어올 것’이란 먼지 풀풀 나는 흰 글씨가 적혀있었다. 흡족한지 빙글 한바퀴 돌아서 교탁에 손을 얹고 씨익- 웃으며 ‘이상’ 이란 말을 내뱉고 교실을 떠나는 담임선생님이다. 이제 익숙할 만도 한데, 선생님의 행동은 좀처럼 익숙하지 않다. 


지민이가 수한이의 어깨에 손을 얹고 물었다. 

“수한아, 너 일기 쓸 꺼야?” 
“넌?” 

수한이 대답은 하지 않고 오히려 되물었다. 

“글쎄..” 

지민이가 잠시 고민을 했다. 

“써볼까?” 

조금은 퉁명스럽게 수한이가 말을 꺼냈다. 

“왜?” 

지민이가 이유를 물었다. 그러나 수한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매미가 맴맴 울어서 이 어색한 공기의 흐름을 메워줄 뿐이다. 나뭇잎 사이사이 새들어 오는 햇빛이 왠지 오늘은 더욱 강렬하다. 



“다녀왔습니다.” 
“응. 왔니?” 

시원한 물 한 잔 내며 엄마가 마중 나온다. 

“아 맞다. 엄마!” 

수한이가 가방을 내려놓으며 넌지시 엄마에게 말을 건넨다. 

“왜?” 

빈 컵을 받으며 엄마가 묻는다. 

“엄마, 이것 봐봐” 

교복 상의 단추를 두세게 풀어서 수한이가 가슴 쪽을 엄마한테 보여준다. 

“나, 브래지어 할 만하지 않아?” 
“왜?” 

방긋 웃으며 엄마가 물었다. 

“이제 15살이 다 되가는데, 생리도 안하고.. 이상하지 않아? 내 또래 애들은 다 하는데” 

시무룩해하는 수한을 보며 엄마가 따끔하게 말했다. 

“생리하면 뭐 좋은 줄 아니? 여자가 됐다는 증표인데 네가 바란다고 
되는 게 아니야.” 

그러곤 계속 빨래를 정리했다. 

“칫.” 

단추를 잠그면서 수한이 제 방으로 올라가자 그저 엄마는 빙그레 웃을 뿐이다. 



“아..이게 아닌데...” 

전신거울로 아직 평평한 자신의 가슴을 바라보다 한숨을 쉬다 수한이 
휴지를 집어 들곤 과하다 생각될 정도의 휴지를 뜯고 가슴 부분 쪽 옷 속에 집어 넣어본다. 그러나 스르르 휴지는 빠지고 만다. 문득 잡지책에 눈에 띄어 뒤적거리다 일명 콜라병 몸매라고 하는 나올 땐 나오고 들어갈 땐 들어간 늘씬한 몸매의 아.. 이 얼마나 멋진 몸매인가..? 연예인이 반 정도 노출이 된 옷을 입고 이상한 포즈를 취한 사진을 수한은 열심히 바라보곤 그 연예인의 가슴과 자신의 가슴을 번갈아보다가 푹푹 한숨을 내쉬었다. 

- 상상 중 - 
굽 높은 하이힐을 신고 짧은 스커트를 입고 가슴이 푹 파인 야한 옷을 입은 수한이 거리를 걷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한 번 쯤은 뒤돌아 볼 만한 외모와 몸매에 지나가는 남자들 모두 침을 헤헤 흘리며 뒤돌아 본다. 그래, 난 이 남자들에게 미소 한 번 쳐주면 남자들은 쓰러지고 용기있는 몇 안 돼는 남자들은 나에게 말을 걸겠지. 시간 있으면 차나 한잔할래요? 그럼 난 차갑게 웃으며 도도하게 말하는 거야. 나한테 관심 있어요? 
- 상상 끝 - 

“그럼 좋겠다.” 

다시 그 잡지 속의 사진을 보았다. 당신은 얼마나 착하게 살았기에 
그런 몸매를 갖고 있는 거죠? 아무리 물어보아도 사진 속 연예인은 그저 입 꼬리를 올리며 비웃음 비슷한 미소를 지을 뿐이다. 그렇게 있길 몇 분 문득 수한은 학교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신 일기가 생각 나 하교길에 새로 산 일기장을 펼쳤다. 


00년 X년 XX일 

일기. 그것은 귀찮은 일 중의 하나. 

이 문장으로 수한은 일기장의 첫줄을 메꾸었다. 그런데 문제는 도무지 다음 쓸 말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일기의 이름은 한수. 이유는 내 이름을 거꾸로 돌리면 한수가 되기 때문이다. 

거짓말 - 한수는 수한이 좋아하는 남자앤데, 인기가 많아서 일치감치 포기했던 수한이었다. 

나의 일기 한수에게. 
나의 일기장아. 만나서 반갑다. 난 이수한 이라고 해. 

더 이상 쓸 말이 없었다. 결국 침대 위로 벌러덩 누워 잠을 청하는 수한이었다. 


“짜잔.” 

아침에 일어나보니. 이게 웬 상자 꾸러미? 

“이게 뭐야?” 

하나하나 곱게 포장된 게 은근히 내용물이 궁금해진다. 

“풀러 봐” 

이게 뭘까? 분홍리본이 곱게 묶여진 상자하나 집어 들곤 조심스레 
포장지를 뜯는 수한이었다. 그런데? 

“으악! 이게 뭐야?” 

내용물을 보자마자 수한은 곧 그것을 떨어뜨려 버렸다. 

바닥엔 흰 레이스가 달린 브래지어가 널브러져 있었다. 

“꺄아아악!!” 

그 꼴을 보자니 절로 비명이 나오는 수한이었다. 

“이게 뭐냐니. 브래지어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속옷을 집어 드는 엄마였다. 

“이걸 왜 나한테 줘?” 

끔찍하다는 듯이 수한이 물었다. 

“왜? 너도 이제 다 커가잖아. 그리고 하고 싶다며. 네가 그랬잖니? 
게다가 네 몸도 소중하고 청결히 다루어야지!” 

그러곤 차근차근 속옷 착용 법에 대해 설명하는 엄마였다. 


“아.. 갑갑해.” 

아직 뭔가 어색한지 계속 등 쪽과 어깨 쪽을 만지작거리는 수한이었다. 

“계속 그렇게 만지작거릴래?” 
“하지만..” 
“속옷 입은 거 티내니?” 
“....” 
“얼른 밥 먹고 학교나 가” 
“칫” 

그제야 신문을 읽고 있던 아빠가 잠시 신문을 접고 수한을 바라본다. 그러곤 장난스레 말을 건네신다. 

“너 브래지어 했냐?” 
“아.. 아빠!!” 

왠지 오늘은 더욱 소란스러운 아침이다. 


“뭐어?” 

일기를 내곤 수돗가에서 손을 씻다 수한이 지민의 얼굴을 바라보며 
놀란 듯 괴성을 지른다. 

“쉿-!!” 
“네가??!!! 새-읍!!” 
“어머 어머! 누가 듣겠다! 목소리 좀 낮춰!” 

수한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는 지민이었다. 수한이 가까스로 진정이 
되자 그제서야 손을 떼는 지민이었다. 

“언제부터 했어?” 
“....어제..”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지민이 말했다. 
세상에. 나보다 키 작은 지민이가 벌써 생리를 한다니! 수한은 왠지 억울한 생각이 든다. 

“근데, 너 생리하면 어떤 기분이야?” 
“그냥.. 찝찝해” 
“그래?” 

찝찝하다고.. 아, 나도 느껴보고 싶다. 

“근데 말이야. 수한이 너어..” 

수한이를 요리조리 살펴보던 지민이가 눈길을 가슴 쪽에 두자 
뭔가를 발견했는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어머. 수한아. 너 브래지어하지? 너 이제 브래지어해?” 
“어?... 어.. 티나?” 
“어. 티나. 근데 너 가슴 커 보인다.” 
“그..그래?” 
“응” 

괜스레 어깨를 활짝 피고 우아하게 반으로 들어가는 수한이었다. 
그리고 교실로 들어갈 때 이 말을 지민이한테 해주는걸 빼먹지 않았다. 

“너,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생리하면 뭐 좋은 줄 아니?” 


00년 X년 XX일 

한수야. 오늘 지민이가 나한테 말했어. 
“나 생리한다!” 

그 말이 어찌나 밉살스러웠는지 넌 아마 알지 못할걸? 
그래? 
한수야. 근데 나도 오늘 처음으로 속옷을 착용했어. 넌 남자니까 이런 나의 쾌락을 느껴보진 못할걸? 
하하. 왠지 수한이 네가 부러워지는데? 
뭐 조금 아주 조금 불편했지만 볼륨 있는 몸매를 만들기 위해선 어쩔 수 없잖아! 
그래? 설마 그 속옷이란 종류가 브래지어라고 하진 않겠지? 

하하하 이 녀석. 엉큼한 구석이 있다니까?! 

있잖아. 한수야. 아직 이틀째인데 난 네가 정말 마음에 든다. 말도 통하고 말이야. 
나도 널 만나서 기쁘다. 내 이름도 정말 멋진 걸로 지어주고. 
넌 나의 가장 친하고 또 처음으로 사귄 친구야. 정말 고맙기만 한걸. 

물론 한수란 아이가 정말로 있는 게 아니다. 모든 게 수한의 가상인물이다. 왠지 모르게 수한은 일기 생각으로 가득차 있다. 담임 선생님이란 사람은 그다지 일기를 걷어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니까. 담임 선생님이 이 일기를 읽을 거란 생각은 되지 않는다. 갑자기 한수에게 담임 선생님의 얘기가 하고 싶어졌다. 

있지. 한수야. 우리 담임 선생님은 괴짜다! 
어떤 선생님인데? 
남자 분이신데, 정말 잘 생겼어. 근데 속은 별거 아니야. 그렇다고 우리한테 잘해주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한수는 말이 없다. 괜히 기분이 나쁘다. 그래서 곧바로 일기장을 덮었다. 하긴. 한수는 학교란 곳을 가보지 
않았으니 기분이 나빴을 거야. 다시 일기장을 펴서 아까 두 번째 장을 펼쳤다. 

미안. 난 네 기분 따위 생각하지도 않았어. 미안해 한수야. 

“수한아! 밥 먹어!” 

엄마의 목소리다. 그래 한수야. 넌 정말 멋진 녀석이야! 내일 보자! 


“..” 

왠지 남자아이들의 눈빛이 이상하다. 
은근히 날 바라보는 것 같은 게 기분이 묘하다. 아침 자습 시간이라 할일이 없어서 그저 책을 읽었다. 그 때였다. 

[타앙!!] 
“앗 따가워!!” 

등 쪽으로 타고 오는 알싸한 고통이 옴 몸으로 퍼진다. 
누가 브래지어를 잡아당기다 놓았나보다. 

“씨 이- 누구야?? 어떤 자식이야?” 

이수한 드디어 폭발하다. 

“누구냐고!!” 

수치스럽다. 이 이수한을 화나게 한 녀석 오늘 걸리기만 해봐! 

“나.. 난데..” 

너 이 자식. 너 잘 걸렸다. 
물불 볼 겨를이 없었다. 주먹이 날라 갔다. 

[퍼억!] 

경쾌한 마찰음과 함께 녀석이 나가 떨어졌다. 
별 것도 아닌 게 까불고 있어. 

“너 죽을래?” 
“자..잘못했어! 
“다음에 또 그래봐! 그땐 인정사정 안보고 쥐어 패 줄 테니까.” 

그런데 
지민이가 수한이를 바라보는 게 심상치 않다. 뒤쪽을 바라보니. 아이고. 교감선생님이 아니신가! 


“아니. 여자애가 남자애를 그렇게 쥐어 패도 되는 거야?!” 
“아얏..” 

출석부로 머리를 맞으며 수한이 무슨 말을 하려다 만다. 
잘못은 저 녀석이 먼저 했는데. 그리고 여자애가 남자애를 패면 안 돼는 건가요? 오만가지로 일그러지는 수한의 얼굴이다. 

“뭐야, 그 표정은?” 

맘에 안 드는지 교감 선생님이 나무라신다. 
그리고 수한의 옷차림을 보신다. 

“아니! 너 귀 뚫었어? 옷 줄였어? 하이고 가슴 봐라 터질 라고 하네. 
터질라고.” 

기가 막힌다는 듯이 교감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그러더니 힐끔힐끔 수한의 가슴 쪽을 계속 본다. 아니 이 할아버지가 미쳤나? 

“교감선생님 뭘 그렇게 보세요?” 
“..으응? 예끼 이 놈!” 

자기가 수한의 가슴을 봤다는 걸 들킬까봐 도리어 호통치는 
교감 선생님이다. 

“너 같은 애가 커선 술집 여자가 되는거야! 어려서부터 이러면 써?” 

그 때였다. 

“교감 선생님. 그건 잘못된 생각이라고 봅니다.” 
“뭐..뭐라고??” 
 
얼굴이 새빨개져서 교감 선생님이 목소리의 주인을 찾는다. 저 선생님은 양호선생님이 아닌가? 

“아니 김 선생이 학생부엔 무슨 일인가?” 
“아, 황 선생님이 부탁하신 약품을 갖다 드리려고요.” 

과학 선생님이 머쓱하게 웃으신다. 

“교감 선생님. 귀를 뚫었다거나 옷을 줄였다고 해서 술집 여자가 
되는 건 아닙니다. 저도 귀걸이 했거든요. 어때요. 제가 술집 여자입니까?” 
“어흠..” 

교감 선생님이 헛기침을 하신다. 주위에서 여러 선생님의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술집 여자란 모든 여자들에겐 치욕스러운 말이예요. 알고 계시나요? 
술집 여자. 즉 창녀란 말은 정말 여자들에겐 써야 하지 말아야 할 욕이라고요.” 
“큼큼.” 

교감 선생님이 아무 말 하지 않자 양호 선생님이 더욱 몰아붙이신다. 

“몸을 판다는 자체부터 기분이 나쁜 거예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하고 싶어서 그런 일을 겁니까?” 
“물론 아니지요.” 
“앞으론 조심하세요.” 
“아..알겠습니다.” 

교감선생님은 더우신지 부채질까지 하신다. 
킥킥.. 웃음이 절로 났다. 

“큼큼!!” 

좀 큰소리로 헛기침을 해 학생부에 물을 끼얹으신 교감 선생님이었다. 
잠시 삭막한 분위기가 깔렸다. 이런 분위기를 깬 건 다름 아닌 

“우앗! 지각해서 죄송합니다!!” 

지각하신 수한이의 담임 선생님이셨다. 


“수한아 어쩌자고 그런 짓을 했니?” 
“창수가 먼저 제 브래지어 끈을 잡아당기고 놓아서 그랬어요.” 
“어머. 그런데도 그 애는 안 오고 너만 왔단 말이니?” 
“네.” 

시무룩하게 수한이 말했다. 

“이따가 교감 선생님을 더욱 혼내야할 것 같은데?” 

상큼하게 양호 선생님이 웃으신다. 
이따가 교감 선생님 꽤 고생하실 것 같다. 


00년 X월 XX일 

한수야. 난 오늘 학교에서 무지무지 기분 나쁜 일이 있었어. 
왜? 
글쎄 창수라는 녀석이 내 브래지어를 잡아당겨서 놓치지 않잖니? 
그것 참 나쁜 녀석이구나! 
그래서 내가 패버렸어. 그런데.. 
그런데? 왜? 
하필 그 때 뒤에 교감선생님이 계셨지 뭐니? 그래서 학생부로 끌려갔지. 그것도 나만 말이야. 먼저 잘못한 건 창수 그 녀석인데 말이야. 그러곤 여자애가 남자애를 그렇게 패도 되냐고 그러시더라고. 여자는 남자를 때리면 안 된다는 거 있니? 
정말 기분 나빴겠다. 성차별까지 하다니. 정말 나쁜 사람인걸! 
그래서 20분 정도 혼쭐이 났지. 근데 갑자기 교감선생님이 날 성희롱하잖니? 가슴 쪽도 보고 말이야. 그래서 뭘 보세요? 라니까 괜히 호통을 치셨어. 그러곤 귀걸이하고 옷 좀 줄였다고 내가 커선 술집여자가 될 거래. 
정말 나쁜 선생님이시구나. 뭘 보세요? 라고 한 건 정말 잘한 짓이야. 성희롱을 한다면 강하게 안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 라고 부정적인 말을 해야 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거야. 네가 오늘 한 짓은 정말로 잘한 짓이야. 술집 여자라. 그럼 안 돼지. 어떻게 교감 선생님이 되셨을까? 난 정말 이해가 안 되는구나. 하지만 옷을 줄인 건 잘못된 행동이야. 옷을 줄인다는 건 자신의 몸매를 감상하세요. 이런 뜻과 비슷하거든. 내일은 옷을 다시 원상태로 해놓으렴. 

자식. 말 하난 잘 한단 말이야. 내일은 수선 점에 가서 교복을 원상태로 해놔야겠다. 

내가 아무 말도 못하고 당하고만 있자 그 때 양호 선생님이 나타나셔서 날 구해주셨어. 교감 선생님은 아무 말도 못하시고 말이야. 정말 통쾌했어. 
양호 선생님이? 하하하 그것 참 우습다. 

양호 선생님이 K.O로 이기시고 날 데리고 교정으로 데려가셔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지. 싸우게 된 이유랑 교감 선생님 흉 같은 것도. 
하하하 K.O? 

오늘 일은 다 쓴 것 같았다. 일기장을 덮었다. 졸음이 밀려온다. 무거운 눈꺼풀이 기어이 수한을 잠들게 한다. 


“으아아암~” 
 
햇빛이 따사롭게 커튼을 비집고 새나온다. 

“후아아암” 

수한은 다시 한번 기지개를 키곤 침대에서 일어난다. 

“으음..” 

똑같은 일상. 반복되는 생활. 평범한 일상. 어쩌면 난 이런 생활에 
만족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전신 거울을 보니 조금은 봉긋 솟아오른 것 같은 가슴이 보인다. 뿌듯해라. 

“이수한! 오늘도 기죽지 말고 활기차게 보내자!” 


맴맴맴- 무더운 더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리쬔다. 

“에구구.. 더워라” 

혼잣말을 중얼중얼 하면서 수한이 계단을 올라간다. 
그늘이 져서인지, 서늘해진 걸 느끼는 수한이었다. 오늘은 왠지 기분이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 


“이 일차방정식 문제 풀어볼 사람.” 
 
언제나 시간은 잘도 흘러간다. 아아.. 검은 게 칠판이고 하얀 게 글씨니 한 남자애가 열심히 분필을 가지고 문제를 풀고 있다. 어.. 근데.. 쟤.. 누구지? 

“지민아.” 

볼펜 뒤쪽으로 지민이 허리를 쿡 찔러 지민이의 시선을 모은다. 

“어?” 

무언가 시선을 빼앗긴 듯 지민은 칠판만 하염없이 바라본다. 
수한은 기분이 살짝 나빠진다. 

“야 쟤 누구냐?” 
“쟤?” 

그제야 수한의 눈을 마주치는 지민이었고 곧 갈색 빛으로 빛나는 머리를 한 아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응.” 

무척 궁금하다는 듯이 수한이 묻는다. 

“쟤, 네가 어제 국어시간이 자고 있을 때 온 전학생이야. 
진짜 죽이지 않냐?” 

여전히 그 남자애를 바라보며 지민이 묻는다. 저 녀석 뒤통수 밖에 안 보이는데. 잘 생겼나? 

“잘했다 문수겸.” 

문수겸? 쟤 이름인가? 
선생님의 말씀을 듣더니 몸을 돌려 제자리로 돌아가는데 수한은 그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 

할 말을 잊게 만드는 준수한 외모. 찰랑이는 머릿결. 훤칠한 키. 이러니 지민이 넘어갈 만하다.

“그치? 죽이지?” 
“...” 

여전히 수한은 할 말을 잃어 버려 지민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아아.. 아침에 느꼈던 둥둥 뜨는 듯한 기분은 이 기분을 미리 예상하고 알려줬다는 건가. 

“야.. 지민아.” 
“으응?” 
“나. 쟤 좋아할 것 같다.” 
“뭐어?” 

흠칫 하고 놀라면서 지민이 경악을 한다. 

“나도 쟤 좋아한단 말이야! 다른 애들도 쟤 엄청 좋아하는 애들 많던데! 넌 별로 관심 없을 줄 알았는데. 라이벌이 늘었잖아!!” 
“...지민아.. 수업 중이다..” 

수한이 낮게 충고했지만..! 

“한지민 학생. 이따 따라오세요.” 

결국 걸리고 만 지민이었다. 


“야. 너 이름이 문수겸이라고?” 

여기는 여자 화장실. 아까의 상황으로 수한은 어떻게든 자신의 존재를 그 아이한테 알려야는 해야겠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휴유.” 

앞머리를 쓸어 올리면서 수한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쉰다. 

“으음.. ” 
“안녕? 난 이수한이라고해. 넌 문수겸이지?” 

그래! 이게 제일 좋겠다! 안녕? 난 이수한이라고해. 넌 문수겸이지? 
교실로 들어가는 폼이 여간 웃기지 않는 수한이다. 뚜벅뚜벅.. 저기 맨 끝자리가 그 아이 자리였지? 그 아이가 자기 자리에 앉아 있다. 아아아 뭐야! 왜 이렇게 심장이 떨리지? 

“...” 

결국 그 아이 자리를 지나쳐서 곧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수한이었다. 바보! 바보! 멍청이! 해삼! 말미잘! 
얼굴이 화끈 달아온다. 눈물도 찔끔 나온다. 바보같이 그 말 하나 못하고! 


00년 X년 XX일 

한수야. 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어제 전학 온 아인데, 이름이 문수겸이래. 
수겸이? 이름이 멋진걸! 그 아이가 부럽다! 
오늘 말 걸려고 했는데 도저히 떨려서 걸 수가 있어야지. 
그래? 이야 드디어 수한이가 사랑에 눈을 뜨는구나! 축하해. 
축하한다고? 아 너 너무한 거 아니야? 그냥 사랑도 아니고 짝사랑이라니까? 
짝사랑이라.. 많이 힘들지! 힘내라 수한아! 

한수의 격려의 말로 오늘 분량의 수한이의 일기는 끝이 났다. 내일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아참. 내일은 꼭 말을 걸어봐야지! 은근히 기대하는 수한이었다. 


“꺄아아아아악!!!” 

아침부터 커다란 비명이 들려온다. 

“무슨 일이야??” 

요리 기구를 한손에 들고 부리나케 달려오는 엄마가 보인다. 
물론 아빠 역시 달려오신다. 

“어...엄마... 피..” 

어쩔 줄 몰라 하며 수한이 눈물을 글썽이며 엄마한테 말한다. 

첫 생리. 
드디어 수한이 여자가 된 것이다. 


“아....안녕..?” 

뭔데! 오랜만에 일찍 와봤더니!! 왜 네가 여기 와 있는 건데?? 

“어.. 안녕” 

난 어렵게 꺼낸 말이건만.. 넌 쉽게도 말하는구나... 

“...” 

수한은 그저 수겸일 뚫어져라 쳐다봤다. 
굳이 할 일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 수겸은 너무 멋있었다. 턱을 괴고 창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살랑대는 바람이 수겸이의 머리를 흩트려놓고 지나갔다. 

“뭐야... 할 말 있어?” 

여전히 창밖을 바라보다 수한의 시선을 눈치 챘는지 수겸이라 묻는다. 

“...할..말..?” 

할말이라.. 난 너에게 너무나 많은 말을 하고 싶어.. 

“..아니.. 없는데.. 하하..” 
“그래?” 
“응..” 

그리곤 말없이 교과서를 펼치는 수한이었다. 


“그럼 이것으로 수업을 마치겠다. 주번은 복도 좀 쓸고” 

무섭다고 소문난 선생님이 나가신다. 마침 주번이었던 수한은 
지민이와 빗자루를 들고 복도로 나갔다. 그때였다. 

“아이스케키~” 

허벅지 쪽이 시원하게 느껴지더니 치마가 들쳐졌다. 그러다 수한이 발에 걸려 넘어지다가 주머니 속에 꼭꼭 숨겨놨던 생리대가 튀어나온다. 

“꺄아악!!!! 뭐야 너네!!!” 

지민이가 도리어 비명을 지른다. 

“어쭈? 이수한! 너도 드디어 마법에 걸리신 공주님이시냐?” 

창수가 생리대를 집어 들더니 비아냥거린다. 

“너네 죽으래?” 

얼굴이 새빨개져선 수한이 발을 동동거리며 악을 써댄다. 
그 때였다. 

[퍼억!!!] 

둔탁한 마찰음이 들리더니 으악! 소리와 함께 기철이가 나가 떨어진다. 
이게 무슨 일이지? 수한은 뒤를 돌아본다. 수겸이가 도용이의 멱살을 휘어잡는다. 겁에 질린 도용이가 내려줘 내려줘를 연발한다. 

[쿠당탕~!] 

커다란 소리가 들려오더니 도용이가 단번에 나가떨어진다. 
수겸이 창수에게 다가간다. 그러곤 왼쪽 손으로 
창수의 왼쪽 뺨을 강타한다. 

[퍽!] 

그러다 창수가 성난 소처럼 수겸에게 돌진하자 수겸은 가볍게 
창수의 옆구리를 차준다. 덕분에 창수는 도용이보다 30cm 나가 떨어졌다. 

“아이고 창수 죽네!!” 

엄살을 피우며 창수가 앓는 척을 한다. 

“..” 

갑자기 수겸이 수한에게 다가온다. 

“바보야!! 이럴 땐 한 방 때려줘!! 힘뒀다 뭐하냐?” 

그리곤 수한의 생리대를 손에 쥐어주곤 수한의 팔을 이끌고 바닥에 내동댕이 쳐있는 3명에게 데려간다. 

“사과해.” 

수겸이 쓰러져 있는 3명에게 말한다. 

“..?!” 
“미안하다고 사과하라고!! 안들려??” 

수겸이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잠시 3명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미..미안해..” 

라고 사과를 했다. 그러자 수한은 

“정신 차려 짜식 들아!” 

라고 말하면서 빗자루를 넘겨준다. 


00년 X월 XX일 

하하하 한수야 오늘을 정말 기분 좋은 일이 있었어! 
그래? 무슨 일인데? 
수겸이 알지? 걔 때문에~ 
왜? 
있지. 창수가 3교시 끝난 다음 복도를 쓸고 있는데 그녀석이 치마를 들치는 거야! 게다가 넘어져서 생리대까지 떨어지고.. 참! 나도 이제 생리해! 
그게 좋은 일이야? 그 창수라는 녀석 끝까지 불한당이구나. 생리를 한다고? 정말 축하한다! 드디어 수한이 너도 여자가 되는구나! 여자가 되었으니 더욱 몸을 소중히 해야겠구나! 
근데 수겸이가 나와서 그 애들을 때려줬어. 하지만 수겸이가 아니더라도 난 그 애들을 때려 줬을 꺼야! 
이야~ 수겸이란 아이 참 멋진 친구구나! 수한이 너도 사람 볼 줄 아는구나? 
수겸이는 알고 보니 정말 멋진 아이야. 얼굴 뿐만 아니라 성격도 좋고. 매너도 있고. 완전 팔방미인이지? 
아이구! 드디어 네 눈에도 콩깍지가 씌었나 보다! 하하! 


일요일이다. 집에는 아무도 없고.. 그냥 오랜만에 컴퓨터를 하는 수한이었다.

마술반지- ㅋㅋ 맞아 아무나 컨닝 하는 게 아니지 
슈렉한개- 야야야 나도 예전에 컨닝 한번 했거든? 근데 감독한테 
딱~ 걸린거야! 죽는줄 알았지 뭐 
마술반지- ㅎㅎㅎ 난 실력파야 짜식아. 
슈렉한개- 웃기지 좀 마! 니 실력이야 뒤에서 놀겠지 안 봐도 훤해 
마술반지- 야! 그러는 넌 잘하냐? 
슈렉한개- 몰라!! 야 나 나가볼게 할일이 있거든 
마술반지- 그래? 그럼 잘 가 ㅂㅂ 
슈렉한개- ㅋㅋㅋ ㅃ2 
[슈렉한개]님이 방에서 나가셨습니다. 

채팅 친구도 나갔겠다. 할 일도 없고 채팅 방을 나가서 인터넷을 하는 수한이었다. 

[토독 토독] 

마우스 소리가 거실을 메아리친다. 

“음? 이거 뭐지?” 

강추!! 한00 연예인 보러가기 클릭 ‘무료’ 

뭘 보러 간다는 거지? 수한은 아무 생각 없이 클릭 했다. 

“어.. 어머!! 꺄악!!” 

그러자 나체 상태의 여자들의 사진들이 나오는 게 아닌가! 
수한은 황급히 컴퓨터 코드를 뽑았다. 

“뭐야.. 뭐냐고..” 


-다음날- 

어제의 충격으로 수한은 마음 한 쪽이 이상하다. 어제의 그 사진은 뭐였지? 왠지 답답해서 수한은 교정에 있는 벤치에 앉아있었다. 

[툭] 

누군가가 어깨에 손을 올려서 수한은 화들짝 놀랐다 

“뭐..뭐야.. 많이 놀랐어?” 

양호 선생님이다. 

“난 또.. 안녕하세요?” 
“응 그래. 무슨 고민 있니?” 

양호 선생님이 생긋 웃으며 묻는다. 

“음.. 그게..” 

수한이 잠시 망설인다. 역시 양호 선생님이니까 말해도 되겠지? 

“사실은.. 어제 인터넷을 하다가 야한 사이트에 잘못 들어갔어요.” 

아이 창피해. 선생님은 날 어떻게 보실까? 

“야한 사이트?” 

선생님이 되물으셨다. 수한은 그저 고개를 푹 숙일 뿐이다. 

“수한이가 그것 때문에 많이 예민해진 모양이구나.” 

부드럽게 미소 지으면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예..” 
“수한아.. 괜찮아. 나 때가되면 한번씩은 겪는 일이거든.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어쩌면 청소년들은 한번씩 다 겪어봐야 할지도 몰라” 
“...” 
“문제는 그런 걸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나쁘게 생각해야 하는데 그걸 더욱 즐기는 사람부터 문제이고, 성을 하찮게 생각하거나, 성은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는 점이야” 
“무슨 말씀이세요?” 
“그런 걸 포르노라고 하는 변태 짓이지만, 사실 성은 아름다워. 너도 알다시피 성을 통해 새 생명이 태어나는 거야. 성관계를 맺을 때도 서로를 정말로 배려해주고 아껴줘야 되는 거지.” 

꽤 간단한 설명이 여운이 남는다. 

“...자 이제 그만 들어가자 수업 시작하겠다.” 

양호 선생님이 벤치에서 일어나신다. 

“기운 내.” 

양호 선생님이 수한의 어깨를 다독여주며 말했다. 
왠지 힘이 솟는 수한이었다. 


00년 X월 XX일 

한수야 오늘은 정말 독특한 일이 있었어. 어제 인터넷을 사용하다 이상한 사이트에 들어가 버린 거야. 
저런! 많이 놀랐겠구나! 
그래서 오늘은 너무 예민해 있었는데 양호선생님이 큰 힘을 주셨어. 
멋진 선생님이신걸! 수한이는 좋겠구나! 
그래서 잘못 인식된 성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성을 나쁘게만 생각해도 좋지 않은 것 같아. 
꽤 올바른 생각을 했구나! 드디어 의젓해졌는데? 그래 수한아. 네 말이 맞아. 성은 깨끗하고 아름다운거야. 몇몇 이상한 어른 때문에 성은 변태가 되어 버렸지만, 언젠간 우리들도 한번씩은 겪는 중요한 일인걸. 

이걸로 오늘 하루도 마감했다. 여전히 한수는 올바른 말만 하니 수한은 다시금 오늘 하루를 되돌아본다. 


-1달 후 (방학) - 

“흠...” 

그래 머리 단정 교복도 단정. 

“후아~~” 

깊게 숨을 내뱉는 수한이다. 뭘 그리 긴장했는지 수한의 태도는 
쭈뼛쭈뼛 불안정해 보일뿐이다. 

“다녀오겠습니다!!” 

수한이 말하곤 학교로 향한다. 하늘색 리본이 달린 선물을 끌어 않고. 
9월 13일. 수겸이의 생일이다. 방학 동안 수겸이를 보지 못했지만 이주일 전부터 개학을 하고부터 수겸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9월 13일. 수겸이의 생일이다. 오늘 이수한. 역대의 날이다. 가장 중요한 날이다. 오늘 수겸이에게 자신의 마음을 말할 걸 생각하니 생각만 해도 야릇한 기분이 드는 수한이었다. 


[딩-동-댕-동] 
 
마지막 6교시가 끝이 났다. 하늘색 리본의 선물은 아직 수한의 가방 속에 있다. 어떻게 건네 줘야 할까. 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마침 수겸이는 청소 당번이고 지민이 역시 청소 당번이다. 그래. 기다리다가 고백하는 거야. 왁자지껄 시끄러운 청소시간이다. 감독하시는 선생님도 없다, 청소는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속에서 묵묵히 청소를 하는 수겸이를 수한은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이 거의 되돌아가고 지민이와 수한이만 남게 되고 마지막 마무리를 하는 수겸이를 바라보면서 수한은 지민이를 보내었다. 그리곤 메고 있던 가방 속에 하늘색 리본의 선물을 꺼내곤 수겸이에게 다가갔다. 그 때였다. 

[벨레벨레 뚭뚭뚭 벨레벨레 뚭뚭뚭] 

다소 엽기적인 핸드폰 벨소리가 들려온다. 서로 눈치만 보다가 묵묵히 청소만을 하던 수겸이 자신의 교복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받는다. 

“응 누나. 응.. 아니 괜찮아. 응.. 응.. 오늘? 누나네 집에서? 하지만 아버지.. 알았어. 이따가 갈께.. 이따 봐. 응.. 됐어! 무슨.. 그래.. 알았어.. 사랑해~ 됐지? 끊는다.” 

수한은 지금 수겸이 통화한 전화 내용을 믿을 수 없었다. 수겸이가 친 누나가 있을 리 없을 텐데.. 사랑해? 아버지? 뭐지? 뭐야? 수한은 머릿속이 백지가 되버린 듯 했다. 이런저런 이상한 생각이 오간다. 
뭐냐고!! 수한은 순간적으로 하늘색 리본이 달린 선물을 떨어트리곤 도망치듯 교실을 빠져나갔다. 


수겸은 지금 도망치듯 교실을 빠져나간 수한의 뒷모습을 황당하게 쳐다보았다. 그리곤 하늘색 리본이 달린 선물을 집어 든다. 

‘나한테 주려고 했던 건가..’ 

선물을 요리조리 훑어보다가 검정 펜으로 수겸이에게 라고 쓴 걸 
발견한 뒤 천천히 선물 포장을 뜯었다. 

TO. 수겸 
Happy Birthday Dear 수겸 
- FROM. 수한^^ 
P. S. 별거 아닌데 그냥 잘 써줘. 

“흐음.. 오늘이 내 생일이었던가?” 

라고 중얼거리다 앞쪽에 봉제 토끼 인형이 붙어있는 파란색 털 
실내화를 집어 든다. 그리곤 그 자리에서 신어본다. 꽤 푹신푹신한 느낌이 괜찮다. 곧 날씨가 쌀쌀해질 테니, 이런 털 실내화도 꽤 실용적이라 생각하는 수겸이었다. 

‘근데 왜 아까 전엔 그냥 간 거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수겸이었다. 어째서? 왜 도망가듯 나갔을까? 왜..? 


00년 X월 XX일 

한수야 난 오늘 정말 힘든 일이 있었어. 
그래? 무슨 일인데? 방학동안 잘 지내나 싶었더니 결국은 아니구나? 개학 하자마자 사건이라니 
오늘은 수겸이 생일이었어. 그래서 파란색 털 실내화를 사서 줄려고 했는데, 
했는데? 
수겸이가 핸드폰을 갖고 있는데 그때 핸드폰으로 통화가 온거야.. 그런데.. 전화내용이... 어떤 누나에 대한 거였는데..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는 등 낯간지러운 말을 하는 거 있지.. 수겸이 사귀는 사람 있나봐.. 분명히 친누나는 없을 텐데.. 

눈물이 뺨을 타고 뚝- 흐른다 

으아아아아 울지 마~~ 노트가 젖잖아!!!! 우선 진정해 수한아. 진정하고 내말을 잘 들어봐. 정말 수겸이한테 누나가 없을까? 정확해? 
정확해! 누나가 없어! 
우선 오늘은 진정하자. 수한아.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지. 알지? 침착하자. 


00년 X월 XX일 

한수야 난 오늘 정말 힘든 일이 있었어. 오늘은 수겸이 생일이었어. 그래서 파란색 털 실내화를 사서 줄려고 
했는데, 수겸이가 핸드폰을 갖고 있는데 그때 핸드폰으로 통화가 온 거야.. 그런데.. 전화내용이... 수겸이 사귀는 사람 있나봐.. 분명히 친누나는 없을 텐데.. 정확해! 누나가 없어! 

한 선생은 수한의 일기를 읽고 꽤나 심각해 했다. 14살의 사랑이라. 수한이의 일기는 참 읽을만했다. 혼잣말 하는 것 같은 게 꽤나 소설 같기도 하고, 판토마임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한 달 하고 반 정도에 수겸이 전학을 왔다. 녀석은 꽤나 문제를 일으킬 녀석으로 보였다. 노란색도 아니고 새빨간 머리를 하고 와선 문수겸입니다. 라며 말을 건넨 녀석이 꽤나 맘에 들었던 한 선생이었다. 물론 학급 규칙을 위해 맘에 들었던 녀석의 빨간 머리를 다시 탈색 시켰지만 녀석은 남자로써 나무랄 데 없는 녀석이었다. 문제라면 그녀석의 가족관계. 부모님들 끼리 자주 성격 때문에 다투셨던 모양이다. 그나마 수겸이는 자신의 친누나를 믿고 열심히 살아왔는데 
결국 부모님께서 이혼을 하시자 자신의 친누나와 떨어지게 됐고, 그 때부터 녀석은 삐딱하게 나가기 시작한 것 같다. 잠시 한 선생님은 자신의 허리에 달려있는 최신 유행인 벨트를 만지작거리며 자신을 담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교실로 다가갔다. 그렇게 자신의 반에 관심도 없던 한선생이 말이다. 


“....” 
 
수한은 기쁘다. 지금 수한이 파란색 실내화를 신고 있다. 어째서 내가 준걸 신을까? 내심 마음이 기쁘다. 그러자 수한과 수겸의 눈이 마주친다. 

“..어..” 

얼굴이 새빨개져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수한을 바라보며 수겸이 생긋 웃어주자 수한 역시 웃어준다. 
그 때였다. 

[드르르륵!!!]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뒷문으로 향했다. 

“문수겸은 날 따라오도록” 

한 선생이 짧게 수겸을 불렀다. 


“...” 

꽤나 으슥한 곳으로 한 선생이 수겸을 데리고 왔다 

“분위기 캡이지?” 

껄렁껄렁하게 한 선생이 수겸에게 물었다. 

“...피식.” 

수겸 역시 비웃듯 웃는다. 
 
“...” 

한 선생이 아무 말 없이 담배를 꺼내서 입에 문다. 
수겸이 놀란 듯이 쳐다보자 한선생은 담뱃갑을 내 밀었다. 그러자 수겸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뭐든지 다 배워도 좋다했지만 담배는 안 된다고 누나가 그랬어요.” 

“누~나?” 

한 선생이 의외라는 듯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주저앉곤 묻는다. 

“이야~ 이 새끼 의외로 순진한 면이 있네? 너 시스터 콤플렉스냐?” 
“그럴지도 몰라요” 

수겸 역시 한 선생 옆에 스르륵 주저앉아서 무릎에 얼굴을 묻으며 
수겸이 말했다. 수겸이 자신의 옆에 앉자 한 선생은 노트를 수겸이에게 건넨다. 

“야. 수한이 일기다. 맨 마지막 쪽만 읽어. 안 그럼 죽는다!” 

그 말을 남긴 체 한 선생은 으슥한 그 곳을 빠져나갔다. 

00년 X월 XX일 
한수야 난 오늘 정말 힘든 일이 있었어. 
오늘은 수겸이 생일이었어. 그래서 파란색 털 실내화를 사서 줄려고 했는데, 
수겸이가 핸드폰을 갖고 있는데 그 때 핸드폰으로 통화가 온 거야.. 
그런데.. 전화 내용이... 수겸이 사귀는 사람 있나봐.. 
분명히 친누나는 없을 텐데.. 
정확해! 누나가 없어! 

이거.. 무슨 내용이지? 


“오늘 할 말은 없다. 참. 문수겸과 이수한은 방과 후 내 자리로 올 것. 이상” 

한 선생이 말을 끝마치자 수한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수겸을 
바라보지만, 수겸은 뭔가 알고 있는 것 같다. 

-상담실- 
“잠깐 수겸아. 선생님 자리는 학생부인데.” 

수겸이 학생부 쪽으로 가지 않고 상담실로 가자 수한이 
다급하게 말한다. 

“그래? 아까 선생님이 상담실로 오라고 했는데. 들어가자.” 

왠지 진지한 태도의 수겸이의 행동을 수한은 뿌리칠 수 없었다. 
몇 분 동안 수한과 수겸은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다. 

“...선생님이 많이 늦으시네..” 

수한이 어색한 이 공기의 흐름을 잠시나마 띄우려고 말을 꺼냈다. 
하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무겁다. 다시 몇 분이 흐르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수겸이 말을 꺼낸다. 

“있잖아. 너한테 묻고 싶은 말이 있어서.” 
“..뭔데?” 
“너.. 나 좋아하니?” 

설마 들킨 걸까? 수한은 초조해진다. 

“어..? 뭐라고?” 
“너.. 나 좋아해?” 
“..무슨..?” 
“아님 아니라고 말을 해.” 

어떻게 안 거지? 
“...만약 날 좋아한다면. 그냥 친구로 지내자. 네가 어떻게 생각할진 몰라도 난 그리 좋은 놈은 아니거든.” 
“....” 

교복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수겸이 상담실 문으로 다가간다. 

“참. 내 생일날 통화한 누나. 우리 친누나야. 지금은 
가족 문제로 떨어져 있거든.” 


시간은 참 빨리 흘러간다. 그 동안 수한과 수겸의 사이가 참 많이 서먹해졌다. 1년이 흐르고 2년이 흐르고 수한은 중학교를 졸업했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또 흘렀다. 


[철컹철컹] 
 
지하철 창밖으로 건물과 사람들이 휙휙 지나간다. 아직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진 시간은 많고 여자는 긴 다리를 비비 꼬으며 가방에서 두툼하고 낡은 노트를 꺼낸다. 공책 몇 권을 합했는지 백과사전만 했다. 

00년 X월 X일 
한수. 지금은 등굣길이야. 어제 중학교 동창회 모임을 가졌는데 수겸이는 보이지 않았더라. 
그 친구 다시 보고 싶은데? 
군대 갔다던데 이번 주 안에 제대할 모양인가 봐. 
그래? 연락 되면 한번 만나봐. 
만나면 하고 싶은 말 무지 많을 것 같아. 그 동안 잘 지냈는지. 여자 친구는 있을는지. 
그 나이에 여자친구 있겠지. 없는 게 이상한 거야. 

잠시 일기쓰기를 멈추는 수한이었다.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올릴려고 고개를 들었다. 자신은 많이 변했다. 예전에 그렇게 걱정했던 가슴은 꽤 글래머가 되어있고 그렇게 작았던 키는 170을 넘어섰다. 모델 뺨칠 정도의 몸매는 예전에 꿈꾸던 상상이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 어릴 적 그렇게도 원했던 일들을 수한은 다 성취했다. 난 성장했다. 란 단어부터 엄청난 발전인 것이다. 머리칼을 쓸어 올리다, 문득 자신의 앞에 서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뚜렷한 이목구비가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을 연상케 한다. 

“...저기요.” 

수한이 말을 건넨다. 하지만 상대방은 대답이 없다. 

“..저기. 저랑 언제 만났던 적 있나요?” 
“...” 

여전히 상대방은 말이 없다. 

“....많이 본듯한 얼굴인데.” 
“수한아..” 
“네?!” 

예상치 못한 반말에 수한은 되묻는다. 

“나. 아직 여자친구 없어” 

남자가 싱긋 웃으며 수한에게 말한다 

“....” 
“...” 

[철컹철컹] 

전철의 모터 소리만이 두 사람의 침묵을 메워 줄 뿐이다. 


“다썼어?” 
“아니.. 좀더 자지 왜 나왔어.” 
“그냥.. 이거 마시고해.” 
“고마워.” 
“근데.. 아직까지 이거 갖고 있어?” 

전화번호부책 만한 두툼한 노트. 

“당연하지.” 
“얼마나 남았어?” 
“이제 조금만 쓰면 돼.” 
“나도 보여줘.” 
“싫어~” 
“쳇.. 나 삐졌다” 
“가서 자고 나중에 보여줄게” 
“알았어. 그럼 무리하지 말고 얼른 자.” 
“응” 

[탁]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여자는 불 꺼진 방에서 노트북을 
다시 키곤 키보드로 글을 쓰는 여자였다. 그리곤 무어라 쓰곤 미소를 지으며 문서작성을 저장하곤 컴퓨터를 껐다. 낡아서 바스러질 것 만 같은 두툼한 노트를 껴안으며. 

수한은 수겸과 함께 결혼하여 곧 사회생활에 적응하곤 희망차게 살고 있다. 

그 증거로 난 행복하다. 



성장일기. 작가가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 
작가 - 이수한 

p. s. 문제는 우리 아기. 우리 아가 엄마처럼 싹싹하게 크길 바래. 


-Growth Diary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