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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십대의 물결/10대들의 성(性) 이야기

[수상작] 여자라서 다행이야!

작성일 : 05-03-31 23:43             
[수상작]여자라서 다행이야!
글쓴이 : 아하지기 (211.255.177.160)  조회 : 517  
 


- 아하! 청소년성문화센터 제 2회 성 이야기 작품 공모전 수상작 - 
<서울 YMCA 회장상>
 
≪ 여자라서 다행이야! 

간디청소년학교 2학년 김예인





지금은 열 다섯이고 이제 곧 있으면 열 여섯이 되는데 그럼 4년차에서 5년차로 바뀌게 된다. 
뭐가 5년차냐고? 생리 말이다. 

시간은 거슬러, 이천 년으로 내려간다. 
세기가 바뀌었다는 것을 온몸으로 즐거워하며, 메일주소도 ‘****21’로 바꾸던 새천년의 다짐 같은 것들을 하고는 (2001년이 본격적인 21세기였다는 것도 모른 채) 나는 초등학교 4학년, 언니는 중학생이 되었다. 

입학통지서를 받고 마냥 설레던 언니는 초등학교 졸업식을 얼마 안 남겨둔 어느 날 초경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초경을 했다는 엄마는, 요즘 아이들 성장이 빠르다며 놀랬고, 아빠는 최대한 가정적인 모습으로 꽃다발과 생크림 케이크를 사주었다. 

나는 언니가 너무 신기했다. 내 눈에 언니는 여중생임과 동시에 이제 나하고는 격이 다른, 거의 성녀 수준으로 비치는 정도였고, 이제 나하고는 종이인형으로도 놀아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언니는 (지금 생각해보면) 초경특유의 부끄러움, 창피함을 보였고 그래도 나는 ‘생리하는 여자들은 다 수줍어지는구나. 예쁘다.’ 하고는, 매일 피구만 하는 나는 한없는 어린애라고 생각했다. 

그래, 거기까지 좋았다, 

응, 그런데 말이다. 
쉬는 시간 애들과 우루루 몰려가 같이 화장실에 들어가서, 내 차례가 되어 바지를 쑥 내리는데, 글쎄 말이다. 

좀 수상한 게 묻어 있는 거다. 
당황한 나는 그대로 앉아있었고, '똥싸냐?‘는 아이들의 화 섞인 물음에 ‘아무 것도 아냐’ 라고 하며 ‘별 일 없겠지’하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샤워할 때마다 속옷을 직접 빨아야 했다는 걸 빼면 그럭저럭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얼굴이 뇌주름 잡히듯 잡혀있는, 나를 건치 아동이라고 보건소에 소개시켜준 양호 선생님이 성교육 프로그램 중 2차 성장기 이야기가 나온 비디오를 보여주셨다. 

물론 우리 또래의 어설픈 배우들의 연기만 보느라 웃겨 뒤집어졌지만 기억하는 내용은, 남자 아이가 좋아하는 여자 아이의 생일 잔치에 초대 받는다. 들떠있는 남자 아이는 여자 아이가 좋아하는 초콜릿을 선물로 주는데, 너무 좋은 나머지 초콜릿을 먹던 여자아이가 화장실에 갔는데 갑자기 안에서 막 우는 거다. 걔네 엄마가 놀래서 왜 우냐고 하니까 몸에서 초콜릿이 나왔다며, 다시는 초콜릿을 안 먹겠다며 엉엉 울었다. 초경을 시작하는 것을 알고는 엄마는 막 웃는다. 

초경을 초콜릿에 비유한 보건복지부 정말 대단하다... 라고 생각하며 씁쓸히 배 아파하는 날들과 황당에 당황이 이어지는 날들 후, 계절이 바뀌고 여름이 왔다. 

친척 오빠와 동생들과 여름놀이를 하는 캠프를 갔는데, 3박 4일 첫날부터 불청객이 또 오신 거다. 아무에게도 말은 못하고, 결국엔 배구도 수영도 못한 나는 감기를 핑계로 야영장 구석에서 성장기를 겪을 리 없는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쓸쓸히 보고 있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나의 초경 날들은 그렇게 이어지다, 
삼촌 기일 추모 예배를 갔다 오던 차 안에서 정신없이 자는데, 엄마가 어쩌다 발견한 것이다. 

엄마는 그 간의 일을 다 알아차리셨는지 나를 막 씻기고는 생리대 80개 들이와 빨간 팬티를 주셨다. ‘너 같은 애는 처음 본다. 라며. 

이제와 생각해보니 나는 단지 부끄러운 척 했던 것이다. 
초등학교에서는 생리는 고사하고 브래지어만 해도 반의 이슈였던 것이다. 혹여나 눈치껏 생리를 해야 했던 아이들끼리는 생리대를 ‘벽돌’이라고 부르던지, 화장실로 갈 때는 반드시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가야 하던지 말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지금의 나는, 그냥 평생의 동반자 하나가 생긴 기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아기를 낳겠다.’하는 생각은 없지만 여성성에 함께 해주는 솔직히 말하면 오래된 친구 같은 느낌이다, 

오늘 학교 수업으로 대안 생리대를 만들어 보았다. 
일회용 생리대의 표백에 찌들어 있었던 몸을 내손으로 바꿔보고 싶어서 만들고 있는데,  이거, 좀 손이 가지만 무지 재밌다. 

호르몬 과다성장으로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나의 2차 성장기. 

그러나 이 어마어마한 생명을 준 조물주와, 지연의 섭리에 감사한다. 
정말 여자라서 다행이다. 

정말이다.  정말..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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