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운하의 소녀

작성일 : 06-04-28 09:51     
[도서] 운하의 소녀
글쓴이 : 아하지기  조회 : 446  
 


<끝나지 않는 일> 

'이 이야기는 이미 앞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어느 이야기나 다 그렇듯이,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영원히 안 끝날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의 시작 부분이다. 이 부분만을 읽는다면 'Never Ending Story''천일야화'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책을 모두 읽고나면 가슴 묵직하게 다가오는 그 말의 의미가 내게도 한 겹 씌어진 것 같아 답답하다. 이유는 담고 있는 주제가 성폭력이기 때문이다. 

20년 만에 얼어버린 운하. 그 앞에 서 있는 한 소녀. 똑같은 풍경에 자리한 소녀는 두 사람이다. 한 사람은 현재 소녀, 또 한 사람은 소녀의 담임 선생님이다. 놀랍게도 닮은 현재의 소녀를 바라보는 과거의 소녀는, 그녀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게 된다. 그녀의 직감은 문제의 해결 방안을 암시해 주는 복선처럼 깔리는데, 현재의 소녀는 화실의 미술 선생님에게 성폭력을 겪고, 과거의 소녀는 삼촌으로부터 성폭력을 겪은 상태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못한 채, 가슴에 응어리가 되어 있기는 두 사람 다 마찬가지. 특히 과거의 소녀는 20년 동안의 기억을 한 구석으로 억압해 둔 채 생활했는데, 현재의 소녀와 자신을 오버랩 시키며 그 때의 일을 떠올린다. 하지만 현재의 소녀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던 중, 그녀가 써 낸 글의 의미를 파악하고 떠나기로 한 여행을 멈춘 채 현재의 소녀를 구하러 간다. 

이 이야기는 두 사람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과거의 소녀와 현재의 소녀, 각각 겪은 일이 똑같지만 상황이나 가해자가 다른 점 등은 두 소녀를 각각의 개체로 인식하게 하지만, 결국 같은 유형의 사건으로 상처받고, 고통 받은 것은 같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 고통을 겪은 소녀가 그대로 성장을 하면, 끝내 내면의 치유를 이루지 못한 담임선생님, 즉 과거의 소녀와 같은 생을 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이야기는 두 사람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한 사람의 이야기인 것이다. 

아무튼 이 이야기에서는 같은 주제를 다룬 다른 책들에서 보여주는 양상과 비슷한 면을 다루어가고는 있으나, 피해자 스스로도 그 상황을 기쁨으로 받아들인 면이 있다는 측면으로까지의 접근을 보여준다. 이런 면은 피해자 스스로가 깊은 수렁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힘을 제한하는 요소로 작용을 하는데, 바로 그 점을 간파한 것이다. 실제로 성폭력을 겪은 피해자가 법정에서 진술을 하게 될 때, 함께 즐긴 것이 아니냐는 식의 발언을 듣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미묘하면서도 중요한 부분임에 틀림없다. 물론 피해자 당사자에게는 또 한 번 커다란 수치심을 불러일으킬 테지만. 

나는 이 책의 북글을 쓰면서 그 제목을 '끝나지 않는 일'이라고 정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으며, 일어날 일인 성폭력. 과연 이 부분은 어른들의 윤리에만 맡겨야 하는 것인지 싶다. 어떤 누구라도(특히 여자) 피해갈 수 없는 비밀스런 통과의례로 남겨져야 하는 일인지 싶다. 

두 소녀가 바라보던 운하는 어쩌면 모든 소녀의 운하일런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 운하의 강물은 영원히 얼어 붙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서지정보 : <운하의 소녀 / 티에리 르냉 지음, 조현실 옮김 / 비룡소 > 


아하!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아동 성교육 지도자 모임 임성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