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9-07-31 16:49
한 달 천하! 네이키드 뉴스
글쓴이 : 아하지기 (59.15.196.148) 조회 : 382
아슬아슬하게 높은 노출 수위로 뉴스를 진행해 온 ‘네이키드 뉴스’가 최근 한국에 상륙했다.
1999년 캐나다에서 시작된 네이키드 뉴스는 근엄한 정장 차림의 앵커 대신 나체의 여자가 뉴스를 읽어 준다는 아이디어로 시작했다. ‘감출 것은 없다(Nothing to hide)’는 광고 문구도 선풍적 인기를 얻었고 현재 세계적으로 1000만 명에 가까운 유료 이용자를 확보했다고 한다. 지난 6월23일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한 한국판 네이키드 뉴스 또한 아나운서가 옷을 입지 않은 채 등장하거나 뉴스를 진행하면서 옷을 벗는다고 하니, 호기심에 한두 번 시청 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 포맷이 당혹스러운 건 단순히 '노출' 때문만은 아니다. 자본주의에서 노출은 이미 차고 넘친다. 당혹스러움은, 노출이 다른 곳도 아닌 저널리즘 자체에서 이뤄진다는 데서 온다. 대놓고 선정성을 표방하지 않는 한 저널리즘의 표정은 (적어도 겉으로는) 엄숙하다. 선령 선정성을 내세우는 언론이더라도 뉴스 전달자의 몸을 직접 '전시' 하는 일은 없었다. 반면 네이키드 뉴스가 전시하는 것은 전달자의 몸 자체다. 시청자들도 전달자의 몸을 눈으로 소비한다. 아나운서는 관음의 대상이다. 몸이 관음의 대상으로 소비 된다는 점에서 저널리즘 문법보다는 포르노그라피 문법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진행자가 하나같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포르노그라피에서 작동하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권력감정도 그대로 재현된다.
뉴스는 단지 상황설정을 위한 소품일 뿐이다.
방송이 되고 얼마 후 방송통신위원회는 이 인터넷 방송의 음란성을 주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성인용 유료 서비스를 놓고 어느 정도나 감시를 할 수 있을까. 더구나 이 ‘뉴스 아닌 뉴스’의 진짜 문제는 단 한 명의 기자도 없고, 단 한 건의 기사도 직접 취재하지 않으면서 뉴스 서비스라고 주장하는 데 있다. 같은 뉴스라도 어떤 기자의 손을 거쳐 어떤 아나운서가 보도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 된다는 상식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결국 이들 스스로 ‘뉴스는 그냥 구색 맞추기’라고 자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렇듯 많은 논란을 겪으며 시작한 국내 서비스는 보름도 안 돼서 인터넷 피투피(P2P) 사이트에 뉴스 영상이 유포됐다. 누구라도 ‘네이키드 뉴스’를 검색하면 ‘벗는 뉴스’, ‘국산 아나운서, 하나씩 노출’ 등의 다양한 제목으로 찾아볼 수 있다. 이 영상들은 네이키드 측에서 제공한 샘플 영상뿐 아니라 뉴스 본방송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15세 이상 ‘틴(teen) 버전’은 물론 아나운서들이 상반신을 노출한 토플리스(Topless) 차림으로 진행하는 19세 이상의 ‘어덜트(Adult)’ 버전 방송도 유통이 자유로운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청소년들이 얼마든지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성교육을 하는 교육자 입장에서 주의 깊게 드려다 봐야 할 점은 바로 이런 점이다.
“당당한 노출, 소비자를 움직인다” “잘 벗은 화보 하나, 열 CF 안부럽다” 등 기존의 한국 문화에서도 여성의 몸을 ‘매개’로 한 성상품화는 끊임없이 있어 왔다. 문제는 이런 문화 가운데 청소년들 사이에서 ‘셀카’, ‘몰카’들의 무분별한 성 놀이들이 난무해졌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언제나 상업성의 구도가 다른 무엇보다 앞선다. 그리고 후에 문제점으로 일어나는 일들은 개인의 문제로 돌리기 일쑤이다. 그러나 청소년들의 문제만은 개인의 문제로 돌릴 수 없다. 성인들의 상업적인 기반에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아니던가. 상업성에 압도당한 외국의 콘텐츠들을 아무런 대책 없이 그대로 따라하거나 받아들이는 매체들이 늘어나는 현실 속에서 우리들은 청소년들이 어떻게 하면 주체적인 미디어의 수용자가 될 수 있을지, 또 교육자로서 청소년들과 어떤 의사소통을 통해 접근해야 할지, 우리들 스스로가 심도 있는 고민을 해야 한다.
많은 물의를 빚은 틴버전은 방송 2주만에 폐지되었고 사회적 반발과 각종 심의로 고초를 겪던 네이키드 뉴스는 결국 한달천하로 막을 내렸다. 네이키드 뉴스의 출현을 통해 우리는 언론이 스스로 압도적 관음사회의 정치, 경제학적 전형성을 드러내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이를 계기로 적나라한 노출만 없을 뿐, 몇 가지 '암시'의 기호들을 서사적으로 배치해 연상 작용을 일으켜 결과적으로 성매매를 알선하는 기존 매체들에 대한 비판도 필요할 것이다.
아하!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전문강사단 조성희
'아하! 성(Sexuality)을 읽다. > 핫!! 핫한~잇슈!'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트랜스젠더 ‘여성’까지만? (0) | 2011.12.21 |
|---|---|
| 사랑이 어떻게 쿨하니 (0) | 2011.12.21 |
| 그 많던 남자들 어디갔나 (0) | 2011.12.21 |
| 장자연의 죽음을 애도하며 (0) | 2011.12.21 |
| 아동·청소년 성과 인권:지역사회 안전망 가동을 위한 실천 제안 (0) | 2011.1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