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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연의 죽음을 애도하며

작성일 : 09-05-30 17:51             
장자연의 죽음을 애도하며
글쓴이 : 아하지기 (59.15.196.148)  조회 : 490  



장자연의 죽음을 애도하며: 우리는 그녀에게 ‘어떤 친구’가 될 것인가? 


탤런트 장자연이 2009년 3월 7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죽음에 앞서 장자연은 기획사 사장으로부터 연예계 유력 인사의 접대 자리에 참석할 것을 강요받았으며, 접대 상대에게는 잠자리를 강요받았다는 내용을 담은 자필 문서를 남겼다. ‘장자연 리스트’라 불리는 이 문서는 날짜와 주민번호, 서명과 지장으로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본인에 의해 직접 작성된 문서임을 어떻게든 알리고 싶어 한, 처절한 노력의 흔적이다. 가히 피로 쓴 이 문서에 대한 수사는 얼마나 진척되었는가? 그녀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심판 하고자 했던 사실들이 현재 다루어지는 꼴은? 

알다시피 경찰은 누구의 눈치를 보고 있는지 일부 피의자는 소환도 하지 않은 채 변죽만 울리는 수사를 진행 중이다. 조선일보는 자신들이 얼마나 무서운 언론사인지 본때를 보여주고 싶은 건지 조선일보와 방사장을 입에 올린 사람들에 대해 형사 고소와 민사 소송을 남발하고 있다. 보다 못한 시민 사회단체 대표 4명은 얼마 전 고 장자연의 성상납 강요 의혹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을 국회에 청원하기에 이른다. 

현실에 분노하여 인터넷 사이트를 돌며 이 죽음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한다는 서명 운동에 동참하다 문득, 그녀가 태어난 날과 이름 석 자가 가슴에 박혔다. 1980년 1월 25일 생. 장자연. 


나와 동갑이네. 모질게도 목숨을 끊었구나. 
함께 끝까지 가보자고 손잡아 주는 여자 친구 없었니? 

남성들의 ‘접대 문화’가 숨 쉬는 공기처럼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이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여자 연예인들이 성상납에 대한 외압을 받고 있을 지 상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손잡아줄 여자 친구를 찾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남자들이 룸살롱에서 여종업원을 옆에 앉히고 술 마시는 건 쉬쉬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이 상대 여성들의 실체가 드러나면 그 여성을 향해 거침없이 혐오감을 표출하는 현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여자 연예인들에게 성적인 코드를 빼면 존재감을 설명하기도 어려운 현실 속에서 성적인 것 외의 이미지를 덧씌우기 위해 이들이 얼마나 노력을 하는가. 적어도 자신에게 입혀진 성적인 코드가 쇼비즈니스의 일부임을 끊임없이 증명해 내야 한다. 이런 이들이 평생을 따라다닐 끔찍한 낙인을 감수하고 친구의 손을 잡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사무친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대한민국에서 여배우로 산다는 것’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여배우 문정희가 직접 다른 여배우들을 인터뷰하는 형식의 다큐멘터리였는데 화면 속의 여배우들은 하나같이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대차게 자신의 꿈과 일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인터뷰를 마칠 때 대부분 문정희와 포옹을 하며 “진작 만나 얘기할 걸”이라고 말했다. 따뜻하고 묵직한 힘이 브라운관을 통해 전해졌다. 

나도 비슷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대학에 입학해 처음 사귄 여자 친구가 남자 선배로부터 성적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녀가 내가 이 사실을 아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아 모른척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떤 순간을 계기로 그녀의 ‘숨기고 싶은 피해’를 함께 ‘분노’로 재구성하게 되었다. 눈물이 범벅이 된 채 달달 떨고 있는 서로의 손을 꼭 잡았던 그 힘. 그 힘으로 결국 우리는 그 남자를 제법 멋지게 혼내줬다. 

장자연, 그녀도 그렇게 시작하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슬픔이 훅 밀려온다.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며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짐해야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무능한 경찰과 부패한 언론에 계속 문제제기하는 것도 더없이 중요하지만, 내 옆의 그녀들과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시작해 보는 것이다. 

그녀의 손을 잡고 웃어보자. 그녀의 등을 두드리며 안아 주자. 그녀가 무심히 던진 말들을 다시 떠올려 보자. 나에게 무슨 말을 걸고 싶어 했는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했는지. 황망하게 떠난 또 다른 그녀를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내 여자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 호기롭고 대찬 우리들의 힘을 나누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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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