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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성(Sexuality)을 읽다./조금은 딱딱한... 칼럼!

소수의 '성' 교육

작성일 : 10-05-31 23:33             
소수의 '성' 교육
글쓴이 : 아하지기 (112.149.189.253)  조회 : 511  


지난 5월 8일 열린성교육의 한 프로그램으로 '사춘기 노트'를 진행하게 됐다. '사춘기 노트' 는 초등 고학년인 아이들이 소그룹으로 모여 앉아 자신의 노트를 직접 만들며 아이들 안에 녹아 있는 사춘기 고민들을 끌어내기도 하고, 교육적으로 필요한 내용들을 전해주는 시간이다. 그러다보니 아이들과 친해지는 것이 관건이고 활발한 아이들을 중심으로 교육을 풀어나가게 된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아이들을 기다리는데 들어온 아이들의 성비를 보니 유난히 차이가 컸다. 최근 교육들의 특성이기도 했지만 워낙에 개인 참여자를 모집한 교육인데다 학년별로 나누어 진행하다 보니 그랬던 것 같다. 한번은 여학생이 대다수였고, 또 한 번의 교육은 남학생이 대다수였다. 재밌는 것은 2번의 교육 모두 서로 처음 본 사이였는데도 불구하고 다수의 성(性)으로 구성된 아이들에 의해서 수업이 주도됐다는 것이다. 매번 교육 때마다 소극적인 참여를 하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질문을 건네기도 하고, 관심사를 묻기도 했지만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집단에서 소수의 성을 가진 아이들은 수업이 끝날 때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해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거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처음 만나는 사이의 아이들이다 보니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고민을 늦추려던 때에 고등학생 한 반이 참여해 소그룹 형태로 진행하는 ‘끼리끼리’ 프로그램을 참관하게 되었다. 이미 1학년 때부터 아하! 센터에서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라 매우 적극적이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 반 역시도 여학생들이 절대적으로 소수인 집단이었다.

스킨십에 대해 모둠 토론을 하고 발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토론 내내 여자 아이들의 의견은 대체로 무시되거나 놀림당하기 일쑤였고, 남자 아이들은 시덥지 않게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수업은 당연히 남자아이들에 의해 흘러갔고, 이미 그 반 아이들에게 이런 상황은 일상적인 모습인 것처럼 보였다. 여자 아이들이 발표하는 중에도 남자 아이들은 꾸준히 성적인 농담을 건넸는데 그런 모습들에 나는 불편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소외받는 환경에서 오랫동안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어떻게 성장할까.

솔직히 처음 고민의 출발이 구석에서 조그맣게 모여 앉아 가위질을 하며 기죽은 모습을 보인 학생들 때문이었기 때문에 좀 더 생각해보기로 했다. 씩씩하게 함께 참여했으면 좋으련만, 아예 포기하는 듯한 그 모습에 조금은 화가 났었다. 그런데 더 문제는 이런 상황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나중에는 소수에 대한 배려 없는 다수의 아이들 성향에 동화되거나 그 아이들과의 관계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변할 거라는 사실이었다. 학교에서도, 센터에서도 다수의 아이들-그것이 특정 성(性)일수도 있고 혹은 공부를 잘하는 집단이거나 비장애 아이들일 수도 있다-에 의해서 수업이 진행된다면 언제까지고 소수인 아이들은 수업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없게 되지 않을까.


이 수업을 참관하면서 ‘미디어, 성폭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포럼의 충남대 손병우 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부터 ‘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야 하며 그 단어에서 오는 모호함을 좀 더 섬세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그리곤 일상에서 성인들에게 묵인된 ‘폭력적 상황’들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체화된다는 말도 기억난다. 요즘의 교육을 보며 이 이야기를 종종 떠올리게 된다. 다수의 성에 의해 주도되는 교육도 문제지만 인원이 너무 많아 일일이 강사가 그 상황을 컨트롤할 수 없다는 데에도 큰 문제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시간에 쫓겨 아이들의 폭력성을 묵인하는 강사의 수업은 얼마나 위험한가.

모든 교육을 아울러 고민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체험형(또는 토론형) 성교육에서만큼은 소규모 교육 형태의 프로그램 ‘지향’이라는 소신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교육 인원도 너무 많다는 생각과 함께) 그래야 소수 집단인 아이들도 덜 소외받고 일방적으로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되는 상황도 줄일 수 있으며 문제 상황에 강사의 개입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성교육 생산자로써의 역할과 소신

현장에서의 고민이 이러한데 여전히 전학년 대상의 대단위 성교육, 혹은 방송 강의 요청이 끊이지 않는다. 예산과 시간을 탓하지만 그래도 요즘 아하!센터는 모든 교육 요청에 응하지 않고, 적어도 한 반 대상의 출강 형태를 유지하려고 분투중이다. 처음엔 사업 운영에 지장이 있을까 걱정했지만 센터 내의 방침에 따라 교육 형태를 안내해드리고 그 설명에 따라 담당자들의 생각이 바꿀 수 있도록 조율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게 됐다.

생산자를 변화시키는 건 소비자의 몫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건 착한 소비일 때의 말이다. 소비형태가 바뀌어야 한다면 그 소비자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도 생산자밖에 없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주기만 하면 아무 것도 변화되지 않는다. 변화를 원한다면 그들의 의식과 문화를 변화시키는 것도 성교육의 생산자인 우리 몫이고 더 나은 교육을 바래야 하는 우리 책임이 되어야 한다.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이상적인 교육이 아니라 적어도 아이들이 교육을 받는 주체자로서 소외받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수에 의해 수업이 ‘쉽게’ 진행되는 것에 익숙해지지 않고, 소외받고 있는 소수도 수업의 주체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조금은 ‘힘겨운’ 수업이 되도 말이다. 


아하!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교육사업팀 서영미


노한나 10-06-15 23:08  211.203.30.99        
* 위에있는아이들모습과같이 
항상공동체인모습이면좋겟네요~ 
퍼갈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