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하! 성(Sexuality)을 읽다./핫!! 핫한~잇슈!

개정된 청소년성보호법의 시행에 즈음한 단상

작성일 : 08-07-10 11:10             
개정된 청소년성보호법의 시행에 즈음한 단상
글쓴이 : 아하지기 (59.15.196.150)  조회 : 525  



개정된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줄여서 "청소년성보호법")에 따른 아동 및 청소년 상대 성범죄자에 대한 등록 및 열람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있다는 소식이 언론매체를 통해서 들린다. 반가운 일이다. 청소년을 상대로 한 성범죄자에 대한 최초의 신상공개 제도 추진에 참여했던 나로서는 원래 계획되었던 1단계 신상공개를 넘어 2단계(즉, 사진까지 포함한 공개, 그리고 업데이트된 정보의 등록 및 열람 단계)로 돌입하게 된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보람이다. 내가 생업에만 신경 쓰는 동안 우리 아동과 청소년을 지키기 위해 고생하신 많은 분들의 수고에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그러나, 2단계로 들어가면서 한가지 눈에 띄는 것은 이른바 "소급적용 금지 조항"들이다. 즉, 청소년성보호법 부칙에서는 청소년 상대 성범죄자의 신상정보의 등록과 열람 제도, 그리고 취업제한에 관한 제도는 개정된 청소년성보호법 시행 후 최초로 청소년대상 성범죄를 범하고 유죄판결이 확정된 자부터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법률 불소급의 원칙에 충실한 조항들이다. 그러나 청소년성보호법의 실행에 있어서 법률불소급의 원칙이 반드시 무조건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철칙일까. 

법률불소급의 원칙으로 우리 부모님들과 아이들에게 변명하기에는 문제가 너무나 심각하다. 지금도 우리 아이들은 아동과 청소년을 상대로 하는 성범죄 성향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호시탐탐 위협을 당하고 있고 실제로 우리를 놀라게 하는 잔혹한 범죄들이 너무도 뒤늦게 발견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법률불소급의 원칙" 운운하는 것은 마치 성경의 안식일 논쟁을 보는 것처럼 답답함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하에서는 우리 부모님들로서는 재범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청소년성보호법 시행 후에 재범을 해 주고 또 이를 우리나라 사법기관이 즉시 체포해 유죄판결까지 받아주어야만, 그리고 판사님의 등록 및 열람 명령이 있어야만 관할 파출소에서 어렵게 그 범죄자들의 신상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전까지 우리 부모님들은 우리 자녀 바로 곁에 아동 청소년을 상대로 한 성범죄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도 이를 알아챌 방법이 없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정당한 상황인가. 

실제 법률불소급의 원칙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예외가 인정되고 있다. 독일에서 발달된 이른바 "부진정소급효" 이론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즉, 얼핏 보기에는 소급입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직까지 종결되지 않은 현재와 미래의 상황을 규율하는 법은 이를 소급입법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심각하게 오염되어 현재와 미래에 심각한 보건상 위해를 초래할 것이 합리적으로 예상되는 토양오염에 대하여 단순히 오염행위가 과거에 일어났다고 하여 이를 그대로 방치할 수 있을까. 같은 논리로, 현재 범죄자들의 재범의 위험성이 있고 그 재범의 위험에 너무도 약하게 방치된 우리의 자녀들이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현재 및 미래의 위험에 대처하는 것이 과연 소급입법일까. 

결론적으로, 우리가 지금 시급히 처리해야 하는 것은 과거에 발생한 범죄행위에 대한 이중처벌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의 범죄 행위로부터 드러난 현재와 미래의 위험에 대한 대처이다. 이에 대해서 법률불소급의 원칙을 무조건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너무도 편리한 문제 회피이다.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개정된 청소년성보호법의 등록 및 열람 제도, 그리고 취업제한 제도가 시행되기 이전에 이미 수차례나 아동 및 청소년을 상대로 한 성범죄를 저지르고 그 재범의 위험성이 현재와 미래에 존재하는 사람들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러한 재범의 위험은 우선적으로 국가의 공권력이 이를 통제해야 할 것이나 만약 국가가 완벽하게 우리의 자녀를 보호해 주지 못한다면(이것은 어차피 불가능할 것이다) 적어도 우리에게 우리의 자녀를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정보는 제공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국가가 국민에게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라고 믿는다. 만약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책이 보완되지 않는다면 어렵게 도입된 청소년성보호법상의 등록 및 열람 제도는 오랜 기간 동안(즉, 현재 및 미래의 재범 위험성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범죄를 저질러 주어 유죄판결을 받아 충분한 데이터 베이스가 구축될 때까지는) 미완의 제도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있는가. 얼마나 더 많은 우리 아이들의 희생이 있어야 우리의 제도는 완비될 것인가. 


변호사 변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