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신규 성교육자원활동가 수기_몸동작프로그램 매개자 김민지 선생님




몸동작프로그램 매개자 김민지 선생님 수기

 

 

  지난 봄, 진로와 관련해서 청소년들에게 관심 갖기 시작한 무렵에 학교 홈페이지에서 아하 몸동작 자원활동가 모집 글을 보게 되었다. 낯설고 신기한 이름이었다. 비록 6개월 동안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니, 왜 센터 이름이 아하인지 이제는 알 것 같다.


  3일 동안의 지도력 양성 워크숍은 많은 사람들이 고정관념이나 잘못된 통념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하는 청소년의 성뿐만 아니라 불평등한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나도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크게 한 방 먹은 기억이 있다. 라운딩을 하다가 사춘기의 키워드에 어떤 것들이 있냐는 질문에, ‘이성 친구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나름대로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를 대신하기 위해서 머릿속을 거쳐서 한 말이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동성친구도 있겠죠?”였다. 사춘기 아이들에겐 좋아하는 친구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또래관계가 중요하다는 것과 반드시 이성을 좋아해야하는 것은 아니라는 두 가지 사실을 완전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고정관념이라는 것이 얼마나 뿌리 깊게 스며들어 있는지 몸소 느꼈던 순간이었다. 그 외에도 뜨끔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모든 프로그램들이 내가 어떤 편견을 갖고 있는지 하나씩 들춰주는 기분이었다. 실무자 선생님들의 모든 말과 행동 속에도 차별은 없었다. 아하는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는 공간이다. 나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 그래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공간이다.


  새봄이네와 한봄이네 프로그램 참여는 개인적으로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다. 한 번도 몸으로 무언가를 표현해본 적이 없었던지라 나무가 되고 쇠가 되는 것이 참 어려웠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 나를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몸을 불사르며 을 표현하고 나니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나의 몸만으로 무언가를 그렇게 발산한 것은 처음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대상인 프로그램인데 오히려 내가 얻어 가는 것이 더 많았다. 한봄이네 첫 교육을 하던 날, 궁금증을 가득 안고 지하로 내려온 아이들을 보니 설렘과 걱정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모든 아이들에게 프로그램의 취지를 전달할 수는 없었다. 분명 우리는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안에 있었지만 아이들의 경험은 모두 달랐다.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참여하려고 하는 아이들의 눈빛을 보며 힘을 냈다. 다 같이 손잡고 땀 흘리며 뛰었을 때는 마주잡은 손으로 서로의 에너지가 전달되는 것이 느껴졌다. 발산부터 이완까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안 지하 전체의 공기가 달라졌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완과정에서 아이들의 발등을 손으로 살포시 감싸주던 순간이다. 경직되거나 움찔거리는 경우엔 좀 더 머물렀다. 아이들의 체온이 느껴지는데 괜히 울컥했던 때가 있었다. 만약 내가 힘들어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발등을 감싸준다면 어떤 기분일지 생각해보았다.






  한봄이네를 통해 아이들과 직접 대면하고 소통할 수 있었다면, 아이들의 속마음을 알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코딩작업이었다. 아이들의 설문지와 쪽지질문을 정리하면서 수많은 생각을 했다. ‘너도 그 때의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구나’,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나?’, ‘우리 서로 같은 걸 궁금해 하는구나’. 가감 없이 솔직한 질문도 있었고, 때로는 자신의 이야기를 적절히 둘러대서 물어보는 질문도 있었다. 많은 아이들이 저마다 적절한 답을 얻어서 아프거나 다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아이들이 혼자 알아가기에 이라는 주제는 너무나 버겁다. 정확한 지식을 제공하는 것만이 아니라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는 성인들이 정말로 필요하다. 성평등 교육정책 토론회에 참여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을 위해서 같은 고민을 하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당장 눈앞에서 나타나는 변화가 없더라도 이렇게 꾸준히 움직이면 개인에서부터 정책까지 많은 것이 변할 수 있지 않을까?

인권, 차이와 차별, 다양성, 권력구조, 나의 몸 움직이기, 자존감 등 이 모든 것들이 성교육과 관련된 키워드들이다. 내가 받은 성교육은 생식기와 피임법이 전부였다. 나 역시 그 시절에 잘 몰라서 당황하고, 상처받고, 혼자 속으로 끙끙 앓던 문제들이 많았다. 하지만 아하를 찾는 청소년들은 언제든지 도움을 요청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부럽다. 청소년들보다 내가 더 알고 있어서 가르쳐주는 어른행세가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으로서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해주는 성인이 되고 싶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아하를 통해서 더 많이 깨닫고 공부하면서 아이들이 내 몸’, ‘네 몸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도록 보탬이 되고 싶다.



작성자: 김민지(2017 신규 몸활동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