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아하!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책을 읽고,

그 속에서 읽어낸 섹슈얼리티를 모두와 나누고자 글을 쓰는 [섹슈얼리티 북티끄],

2017년 3월부터 월 1회 연재합니다.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은유)

 

 

읽지 않을 이유가 없다.


, 연애, 결혼, 역할에 수시로 울컥하는 여자의 말하기라는 부제도 딱이고, 35~45세 여자들을 겨냥했다는 것도 좋다.

용감하기도 해라. 육아, 입시, 요리, 재테크, 건강 같은 실용서도 아니면서,

페미니즘 시각을 견지한 중년비정규직생활여성의 줏대 있는 출판전략이라니- 브라보!

 

고백하자면, 책 한 권 다 읽는데 오래 걸렸다. 개인사변류의 에세이는 거의 읽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처음부터 달랐다.


- 자기 욕망을 일인칭 시점에서 구사할 수 있는 언어는 여전히 모자라다(p37)

- 딸아이에 대한 나의 감정은 혈육의 정이라기보다 여성 간의 자매애에 가깝다. 할머니 이전부터 대대손손 피를 타고 전해 내려온 소수자 감수성이다(p57)

- 여자로 태어나서 미친년으로 진화한다는 말은 여자의 연대기에 관한 핵심적 진술이다(p75)

-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그 숨죽인 시간을 산다(p195)


등 일일이 헤아리기도 아까운 문장들마다 한동안 머무르며 마음을 쓸었다.

특히, ‘나에게 엄마로 사는 건 인격이 물오르는 경험이 아니었다. 외려 내 안의 야만과 마주하는 기회였다’(p31)라는 구절에서는,

비혼여성활동가가 차고 넘치던 일터에서 차마 쪼개어 나누기 구차했던 양육의 지난한 고통이 뒤늦게 몰려와 오래 아렸다.

그 분열의 시간을 고스란히 공감해주는 것도 탁월한 책이다.

4부의 구성을 통해 여자라는 본분, 존재라는 물음, 사랑의 의미, 일이라는 가치를 고루 담아내는데,

저자의 서늘하도록 정확한 감정선과 깊은 성찰, 그리고 타의 추종을 불허할 필력 내공이 각자의 예전 기억을 오롯이 오늘의 일상으로 가져다놓는 마술을 부린다.

각 글의 마무리는 저자가 즐겨 읽는 시()의 일부로 채우곤 하는데, 그것이 또 얼마나 기가 막힌 사유들로 이어지는지는 읽어본 자만이 알 수 있을 것 같다.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집 앞에 도착해서도 차마 들어가기 아쉬워 동네 가로등불에 비춰보며 시 한편 소리 내어 읽어보는 낭만(혹은 용기)도 선물 받았다.

 

집안일부터 세상일까지 울컥해서 싸울 때마다 질문은 탄생하고,

끝도 없고 두서없는 물음의 연쇄가 결국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되었다는 저자.


그래서인지 그녀가 시선을 두던 세상의 흔한 아픔이 새삼 처연하고,

술 먹고 인류 문제로 꼬장부리는 후배가 있어 행복하다고 편지로 답하는 동지애가 든든하고,

아마 국내 최초였을 절판기념회를 통해 인연을 다하는 법을 깨우친 그녀의 지혜로움이 몹시 탐난다.

하여, 나도 그러련다.


내 삶이 내 살 같지 않을 때

존재에 대한 의심을 거두고

한없이 투명해지려면 계속 말해야 한다.

싸움이 불가피하더라도.


글. 김민영(기획협력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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