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고와 함께 한 1년

작성일 : 09-09-30 23:09             
경복고와 함께한 1년
글쓴이 : 아하지기 (211.110.158.214)  조회 : 323  


좌충우돌 자원 지도자 활동기 
                                  
안녕하세요. 저는 경복고등학교의 동아리를 맡고 있는 자원지도자 서종민입니다. 이번 달엔 특별히 그동안 경복고 아이들과 함께 했던 일과 더불어 제 좌충우돌 자원지도자 활동기를 들려드리려고 해요. 유쾌한 내용만은 아닐테지만 생생하고 솔직하게 전해드릴까 합니다. ^^ 

*** 
좌절, 분노, 모욕. 정말 말로 표현할 수 힘든 기분이었다. 온갖 감정의 틈 속에 지친 몸을 이끌고 아하센터로 돌아갔다. 내가 이 정도 밖에 되지 않았나, 라는 자괴감이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센터에서 동아리 활동에 대해 얘기하면서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한쪽에서 꿈틀거렸다. 기숙사에 돌아와서도 머릿속을 맴돌았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니 일상생활 속에서는 잊겠지 하였지만 끊임없이 짐으로 다가 왔다. 

어렵사리 섹슈얼리티 사진자료들을 센터에서 받았다. 첫 시간에는 종이에 쪽지질문을 받고 서로 얘기해보는 시간을 가질 계획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시간은 다양한 사진들을 보며 섹슈얼리티에 관한 얘기를 나눠 볼 생각. 첫 만남에서 동아리의 ‘폐부’ 얘기 까지 긴장감이 컸었던 상황이었다. 경복고는 올해 초 신입회원을 모집하는데 실패했고 ‘폐부’라는 말을 되내일 정도로 초반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인사를 나누고 경복고 친구들에게 종이를 나누었다. 그리고 간단히 취지를 설명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언제 가냐?’, ‘일찍 끝내자.’는 것이었다. 일찍 끝내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며 어떤 식으로 오늘 CA를 진행 할 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는 쪽지 질문지를 받았다. 질문지를 모은 다음 한명씩 나와 질문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얘기하게 하고 내가 다시 답을 했다. 지나치게 장난스러운 답변에도 그냥 지나치지 않은 게 실수였다. 진지함과 유쾌함 사이의 긴장을 어느 순간에 잃어 버렸으며 나뿐만 아니라 경복고 친구들도 이걸 왜 하는 거 지, 라는 의문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리고 한, 두 명 책상에 엎어져 버리는 아이들......... 

1라운드 땡- 

쉬는 시간 종이 잠시 나마 그 상황에서 벗어나게 했다. 두 번째 시간에 분위기를 돌려보려 섹슈얼리티 사진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전 시간의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다. 시작한지 5분도 되지 않아 아이들은 누워버리거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머릿속이 멍했다. 일순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군대에서 조교로 한번에 100여명 이상을 병력을 쉽사리 훈련시키던 기억이 떠올라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축제에 관한 회의를 진행하라고 했다. 회의가 끝나는 대로 오늘 활동을 끝내는 조건이었다. 한마디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컸었던 것이다. 

그렇게 첫 만남이 끝난 후로 한동안 경복고, 아하센터 등을 떠 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4학년 졸업반의 바쁜 나날 속에서도 그 짐은 쉽사리 벗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경복고 축제의 일정을 알게 되었다. 이전부터 여름에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별도로 연락해서 알아보려고 하지는 않았다. 센터에서 연락도 있었고 이 친구들을 본지도 오래되어 바쁜 일상이었지만 발걸음을 옮겼다. 


상쾌한 2라운드- 

정문에 들어서는 순간 술과 연예인초청으로만 점철되는 대학축제와 다른 모습에 집중 할 수밖에 없었다. 보디빌딩 동아리 친구들은 장소를 옮겨가며 자신의 몸매를 한껏 뽐내고 있었고 다른 동아리 사람들도 다양한 복장과 추임새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내심 우리 동아리 친구들도 기대되었다. 

카페였다.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연극무대나 홍대클럽에서 볼 수 있는 블랙 라이트를 활용한 카페였다. 보드게임과 정체를 알 수 없지만 뭔가의 방이 따로 마련되어 손님들을 이끌었다. 우리 동아리에서 원래 하던 것들과 연관성이 없는 부분은 아쉬웠지만 그들만의 상상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단순히 차나 음료를 파는 것이 아닌 자신들을 찾아준 이들을 충분히 즐겁게 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이틀이라는 짧은 준비시간도 놀라웠다. 잠깐의 방문이었지만 웃으면서 정문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
그렇게 축제가 끝난 바로 다음주에 CA가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실습 참여자까지 동행한다니... 전날 잠깐 준비하는데 자신감은 커녕 부담만 가중되었다.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친구와 통화를 하니 지루해질 거 같으면 애들 좋아할 만한 얘기로 화제를 돌리라는 조언뿐. 

처음엔 센터에서 받은 매뉴얼만 생각하고 갔었다. 실습참여자 분께 험한 꼴 볼 수 있으니 각오<?>하라는 농담 아닌 농담도 던졌다. 그런데 막상 교실로 들어가니 어제 통화를 나눈 친구가 생각이 났다. 좋아할 만한 얘기라. 순간 매뉴얼을 덮어버렸다. 먼저 부장인 호상이를 불렀다. 축제에 대한 공식적인 평가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런 회의를 통해 잘한 점, 못한 점을 확실히 알고 지나간다면 다음에는 보다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다른 친구들에게도 취지를 명확히 설명했다. 회의는 그간 느껴볼 수 없었던 적극적인 모습 속에서 이루어 졌다. 처음으로 한 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두 번째 시간은 연애에 관한 주제로 말을 꺼냈다. 사랑은 인간에 있어 만고불변의 화두가 아닌가? 요새 내가 만나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며 남녀 간의 소통에 대해 얘기를 진행했다. 아쉽게도 변변찮은 연애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약간의 이론 수준을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그 순간 실습참여자분의 활약이 시작되었다. 나랑 교대로 나온 이 분은 게리 채프먼이라는 사람의 ‘사랑의 언어’라는 것을 토대로 연애에 필요한 것들을 흥미롭게 설명해주었다. 다시 700일이 넘는 연애를 하고 있는 우리 부장 호상이가 교대로 나왔다. 그 친구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연애에 대해 얘기하였다. 나도 모르게 요즘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 얘기를 꺼내고 의견까지 구하기 시작했다. 많은 친구들이 열렬하게 의견을 내며 뜨거움<?>이 있는 시간이 진행 되었다. 

그날 실습참여자 분과 함께 만족감을 가지고 정문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사실 그 날이 올해 경복고에 나가는 마지막 시간이었다. 지난번의 실패 아닌 실패로 부담감에 빠져 있던 나에게 올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즐거움과 의지가 될 수 있었던 순간이 되었다. 

지난번 시간과 어떤 차이가 있었던 것일까? 다시 시작될 활동을 위해 던져 볼 수밖에 없는 질문 이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모임의 친구들이 매뉴얼이라는 것을 벗어나 스스로 흥미를 느낄 수 있을 만한 것을 찾아야한다는 것! 그리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친구들에게 배우고 그 친구들도 나에게 뭔가를 얻어가는 시간이어야 한다는 것! 이다. 때로는 그 친구들 중의 한명이 나와 자기의 생각을 말하고 나는 의자에 않아서 들으며 의견을 밝히는 입장이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도 나의 성교육 자원 활동은 서로 끊임없이 배워가며 계속 될 것이다. 


<동아리 자원활동가 서종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