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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에는 어떤일이?/그곳에 아하가 있었다!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_김규항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

 

 

 

11월 마지막 목요일 저녁, 아하!센터에서는 김규항 선생님을 만나 고래가 그랬어경향신문이 함께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는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강의내용 중 일부를 옮깁니다.

 

여러분, 인사드립니다. 김규항입니다.

저희 고래가 그랬어요에서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이라는 제목으로 캠페인을 천천히 진행 중 인데요. 9천명이 약속을 했고, 경향신문과 함께 진행 중입니다.

 

 

 

교육은 상품성이 아니라 인간성을 키우는 일입니다.

한국에서 교육이란 의미는 매우 협소합니다. 수학, 과학과 같은 공부만 교육이라고 지칭하고 있죠. 하지만 사람들이 건강하고 조화롭게 성장하는 모든 것이 교육과 관련됩니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은 그 의미를 잃어버린지 오래입니다. 한국의 교육은 상품을 창출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죠. 어떤 사람이 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몇 등급의 평가를 받는 얼마짜리의 사람이 될 것인가의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답답하고 고통스런 과정이 되어버렸습니다. 얼마나 효율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가가 교육의 중점이 된거죠.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개인이 사회의 변화를 막을 수는 없으나, 이런 식의 교육이 지속된다면 이 나라나 사회에 미래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입니다. 모두가 불안한 이러한 사회 속에서 내 아이만 행복해질 수는 없습니다. 우선, ‘교육이라는 것의 본래 의미가 뭐지?’라고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교육이 바뀌는 데서 가장 첫 번째의 과정은 교육의 본디 의미를 생각하는 겁니다. 교육은 사람을 키우는 일입니다.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공부는 마음껏 놀기입니다.

여러분 이 의견에 동의하십니까? 우리 애가 놀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나라의 옛 어른들을 보면 그보다 직관적일 수가 없습니다. ‘자식을 키운다.’는 것을 옛 사람들은 농사를 짓는다.’고 했습니다. ‘자식 농사라는 것의 그 농사는 가장 정직한 과정으로써의 일을 의미합니다. 농부는 농번기에 매우 바쁩니다. 끊임없이 해야 할 일들이, 꼭 하고 넘어가야만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빼놓고는 가을에 수확을 할 수가 없죠. 빠뜨렸던 일들을 몰아서 할 수도 없습니다.

아이의 교육이라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아주 조화롭고 건강한 사람이 되려면, 어렸을 때부터 성장의 절기와 때에 맞춰 느끼고 누려야 할 일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무서운 것은 논농사 밭농사는 눈에 뻔히 보이는 것이지만 자식 농사라는 것은 겉보기로 그 결과를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스펙을 보고 자식 잘 키웠다 말하지만, 사람은 냉장고도 차도 아니기 때문에 인성이 중요한 것이죠.

그러니까 이 자식농사라는 개념에서 때에 맞춰 해야 할 일이 있다.’의 가장 기본적인 것이 바로 놀기입니다. 마음껏 놀기, 제대로 놀기. 이게 참 어려운 얘기죠?

제가 초등학교 때, 유신시대에는 그 곳을 학교라고 보기 힘들었습니다. 모든 남자 교사는 폭력교사 였고, 선생님과 아이 사이에 의논과 토론은 없었으며, 지시와 명령만이 존재했죠. 하지만 방과 후에는 놀았어요. 그러면서 아이들은 육체적으로도 건강해지고, 사회도 배우고, 힘을 합하고 양보하는 것이 더 편하고 좋은 것이라는 것도 배우고, 정의롭지 못한 것을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 때의 뿌듯함도 배웠습니다. 그런 것들을 지금은 생략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사실은 아이들이 놀아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는 것은 굳이 이렇게 말해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며, 그렇게 지켜져야 하는 것이고, 지켜졌기 때문입니다. 전 지구에서 한국의 아이들만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단히 비정상적이고 참혹한 상황인데, 이러한 농사의 결과는 우리 사회에 엄청난 재앙이 될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돌이켜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놀 것, 놀 친구, 놀 장소를 빼앗은 것은 우리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돌려줘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학은 선택이어야 합니다.

요즈음 미디어에서 일 년에 두 번 정도 대학이 지성의 전당인데 취업 학원으로 전락했다느니, 인문학이 전락하고 있다느니 등의 얘기가 흘러나옵니다. 우리 그 누구도 이 사실을 모르지 않습니다.

과거 80년대 초에는 대학 진학률이 20%에 불과했습니다. 다섯 명 중에 한 명 꼴이었기에 분별력이 있었지만 현재는 다릅니다. 90% 이상의 진학률을 가진 지금은 그 가치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상위 수준의 학생들이 최상위 계층 부모의 자식들로 급속도로 채워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실제 대학에 강연을 하러 가보면 한 동네 아이들이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교육이 완전히 시장의 바닥에 던져지면서 돈으로 아이의 성적까지 비정상적으로 끌어올린다는 것입니다.

집에서 학습지로 영어 공부를 하는 아이와 우리나라 최고라 손꼽히는 강사에게 강의를 듣고 유학을 다녀오는 아이가 경쟁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미 이것은 승자가 정해진 경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쟁 쇼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현재, 대학이라는 것이 아이들의 교육에서 목표가 되어버린 것은 아이의 경제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함인데 현실에서 대학은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현재 대학생들을 보면 끊임없이 취업준비를 하고 있으나 보이는 것은 비정규직과 같은 불안과 두려움 뿐 이죠. 지성을 연마하는 얘기는 이미 뒤로 물러났습니다. 이것은 거대한, 그리고 이상하고 기괴한 쇼입니다. 부자 엘리트 아이들을 위해 일반 가정의 아이들이 경쟁의 들러리를 서고 있는 꼴이라는 겁니다.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투자를 할 때는 합리적인 계산이 필요한 법인데, 지금 우리는 우리의 돈, 시간, 열정, 인생을 투자하는 데 있어서 눈을 감고 있다는 거죠. 한국의 어머니들은 자신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아이 교육에 올인하고 있고, 그것이 너무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조금 더 현실적이라면, 대학 진학을 준비하되 대학을 가지 않고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역시 함께 준비해야 합니다.

말 나온 김에 우리가 인정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공부라는 것, 시험에 관한 그것은 재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라는 것은 재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너무나 두렵죠. 그래서 한국의 어머니들은 공부에 재능이 없다.’라는 말 대신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한다.’라는 말을 이용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게 성공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성공이다. 현재 한국에 직업이 몇 개입니까? 통계청의 통계에 의하면 약 1만개에 달합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의 아이들이 백수로 살지 않는 한 모두 직업을 가질 수 있을텐데, 부모님들이 아이들의 직업으로 생각하는 것은 과연 몇 개나 있을까요? 고래가 그랬어 연구소 결과에 의하면 10~20개 뿐이 되지 않습니다. 아이가 나중에 1만개의 직업 중에 하나의 것을 가지고 살아갈텐데, 그 아이들을 가르치는 부모님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은 열등감이나 자괴감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좋은 직업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사람이 성공했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본디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남들이 알아준다고 해도, 물론 이런 것들이 현실 사회에서 중요할 수 있으나 주체가 그렇지 않다면, 나에게 맞지 않는다면, 행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상위 5%, 성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최상위층의 아이들 역시도 불행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아이들은 더욱 더 선택의 폭이 좁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불행한 청년들은 더욱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불행한 지를 결정하는 데에 사람과의 관계와 직업이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하지 않은가 합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사실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몇 등 짜리 직업을 가지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아이에 맞는 직업을 가지는 것입니다.

 

아이와 노동자가 행복해야 좋은 세상입니다.

노동자라는 말은 좌파나 우파,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말인데, 한국 사회에서는 노동자라는 말을 사용하면 빨갱이라고 치부합니다. 노동자라는 말은 사실 매우 중립적이고 보편적인 말입니다. 자신의 노동력에 대한 대가로 임금을 받는 모두가 노동자입니다. 우리 교육 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아이들 대부분이 노동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노동자와 어린 아이들을 연계시키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고 금기처럼 되어있습니다.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에서 좋은 사회라 하는 것은 노동자와 아이들이 행복한 사회입니다. 사실 이것은 같은 말입니다. 노동자가 행복한 것이 아이들이 행복한 것이고, 아이들이 행복한 것이 노동자들이 행복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우리 스스로가 노동자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어떠한 사회에서도 볼 수 없는 이상한 현상입니다. 우리나라는 노동자들이 어떠한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 모두와 연계되어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노동 자체를 내 아이와 연결시키지 않으려 합니다. 이런 것들이 개선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아이들의 교육 문제에 있어서 노동에 대한 교육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고래가 그랬어는 노동 교과서를 집필하고 있습니다.

 

아이 인생의 주인은 아이입니다.

한국 부모님들의 아이 교육에 대한 열정을 전적으로 나쁘게 말할 수 없고, 아름다운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헌신과 열정에 앞서, 아이의 주인은 아이라는 것을 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나의 헌신이 막상 아이에게는 폭력이 되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이가 나와 독립된 존재라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은 한국 어머니들의 인생에 있어서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한국의 어머니들은 세계의 그 어떤 어머니들보다 아이들과 밀접하게 소통하고 있으나, 그 소통의 내용은 너무나 협소합니다. 우리가 아이를 만들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양육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양육은 하되, 이 아이가 어떤 삶을 선택하느냐는 전적으로 이 아이의 문제라는 것을 되새기지 않으면 한국 부모의 정서상 스스로 고통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행복한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행복합니다.

결론에 해당하는 가장 중요한 얘기입니다. 지금 행복한 아이가 어른이 되어도 행복합니다. 교육이라는 불안감에 시달리다 보니까 아이의 인생을 놓고 경영을 합니다. 20세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전자는 인생의 준비기로 놓고, 후자는 인생의 본격기로 둡니다. 그래서 인생의 본격기를 위해 준비기를 희생해도 된다.’라는 생각이 우리 사회에 일반적으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 자체로 굉장히 위험하고 무모한 태도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생각을 갖는 데에 있어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이미 그 준비기를 지나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준비기를 부질없고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중요한 시기와 중요하지 않은 시기가 없습니다. 모든 시기, 모든 때가, 순간순간이 소중합니다.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고결하고 순수한 것들은 오히려 우리가 20대 이전에 가졌을 수도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것은 어떤 시절이든 저마다 다 소중한 것인데, 이것을 우리는 함부로 무엇이 더 중요하다라고 평가할 수 없습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아이가 대학을 들어간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마다 주변 환경을 거치면서 조그만 것들로부터 느끼고 소통하며 알아가는 것입니다. 나중에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이라는 것을 다 갖추고 있더라도, 행복을 공부한 적 없는 아이들은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 교육사업팀 양유경

 

* 강사 : 김규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