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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에는 어떤일이?

[상담활동가 인터뷰] 아하에서의 20년, 홍숙선 선생님이 말하는 아하!상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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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6월의 어느 목요일 오후, 영등포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성상담전문가로서 아하와 함께해주고 계신 홍숙선 선생님을 만났다.

 

‘대체불가 유일무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궁금한 것이 되게 많았는데 이렇게 여쭤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너무 기뻐요.

대체불가 유일무이라는 말. 제가 특별하게 무언가를 해서라기 보다는 아하 초창기 때부터 함께해서 그냥 관용구처럼 쓰이는 말인 줄 알았어요.

 

그럴리가요, 선생님이 아하에서 쌓아오신 업적을 보면 이보다 더 어울리는 수식어는 없을 것 같아요.

아하에서 그렇게 생각해주신다니까 너무 감사하네요.

 

올해로 아하가 20주년을 맞았는데 20년이라는 오랜 시간동안 아하에서 함께하셨다고 들었어요. 선생님에게 아하는 어떤 존재인지 궁금해요.

처음에는 성교육과 성상담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으니까 성교육과 성상담을 병행하곤 했었어요. 그러다 점점 분리가 되었는데, 그땐 성상담은 거의 자원봉사였고 성교육은 돈이 좀 됐었거든요.(웃음) 그래서 한 사람이 여러 기관에서 교육하고 이러는게 흔했는데 나는 아하 사람으로서 정체성 없이 여기저기서 활동한다는 것이 좀 창피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어딜가든 아하사람이라고 하고 다녔고, 다른데서 강의 요청이 들어와도 아하 일에 방해가 될 것 같으면 다 거절했어요. 이상하게 그런 정체성이 있었어. 내 정체성이 아하였어요. 내 자신과 아하를 동일시했었죠. 괜히 행동도 조심스럽게 하게 되고.. 거의 아하 때문에 내가 만들어졌어요. 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호기심으로 들은 얘기만 있다가 아하에서 교육을 받고 새로운 지표가 열렸죠.

 

아하가 정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상담은 어릴 때부터 꿈꾸시던 일이셨을까요? 선생님의 청소년기가 궁금해요.

청소년기.. 나는 정말 재미없게 살았던 것 같아요. 조용하고 착실한 학생이었어요. 상담은 결혼하고 나서 늦게 시작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은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은 자기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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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상담은 어떤 계기로 하시게 되셨어요?

대학교 다닐 때 어머니는 약학과를 가시길 바라셨는데 약학과에 가려면 성적이 너무 좋아야 해서 다른 과를 고민하다 시청각교육과를 갔어요. 근데 선생님은 너무 하기 싫었고 그러던 차에 결혼을 하게 됐어요. 결혼과 출산, 육아를 하던 차에 친구가 애들 키우는데 너무 좋은 책이 있다고 추천해주지 뭐예요? 지금은 집단 상담이라고 하는데 그때는 심성수련이라고 하는 것을 그때 접했어요. 서울대교수진들이 모집을 해서 교육을 시키고 여러 학교에 심성수련 리더로 내보냈었거든요. 아마 제 인생에 터닝 포인트를 꼽자면 그 때가 아닐까 싶어요. 그때 교수님들한테 배웠던 것이 정말 감동의 순간이었어요. 집단상담 봉사를 하는데 그게 그렇게 보람이 있더라구요. 근데 그때 다들 얼마나 무식했냐면 집단 상담을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게 아니라 문제 학생들을 대상으로 했었거든요. 그 중엔 형편이 어려운 학생도 물론 있었구요. 그걸 방송으로 몇반에 누구, 몇반에 누구 상담실로 오세요. 했던거예요. 거의 공개처형이네요(웃음) 그랬죠. 그걸 생각하면 아직도 미안하고 마음이 너무 아픈데 얘네들은 얼마나 순수한지 나를 너무나 좋아하고.. 그 때를 계기로 상담자로서의 틀이 잡힌 것 같아요.

 

집단 상담에서 시작되어 어떤 계기로 성상담을 하시게 된거예요?

그 당시에 학교가 문제인게 교사가 결강을 하게되면 무조건 나를 들여보내서 성교육을 하라고했어요. 어머나, 내가 뭘 알아서 얘기를 하나. 큰일이 난거죠. 그땐 성교육이랄 것도 없었고 나는 집단상담하러 갔는데 개인상담 시키고, 성교육 시키고.(웃음) 이걸 어떻게 해야하나.. 또 성교육을 배울만한 경제적 여유도 없었거든요. 그러던 차에 성교육을 무료로 배울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쫓아간게 YMCA였어요. 그래서 간거지.. 그게 성상담실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갔다가 거기서 만난 선생님이 되게 따뜻하고 좋은 분이었거든요. 멤버들 데리고 산에도 가시고 책보고 같이 공부도하고. 그게 되게 자부심으로 남아있어요. 사실 나는 거기서 끝내려고했는데 박애선 선생님이 대학원 안가냐고 물어보시더라구요. 대학원은 무슨 내가 대학원이야 라고 생각했었는데 사회생활하면서 석사는 해야되지 않겠냐고 하셨어요. 제가 계속 사회생활할거 같이 생각되셨나 봐요. 그때 석사 등록금도 친구가 도와주고 정말 어렵게 박사를 9년만에 했지요. 여담이지만 나이가 많아서 박사 대학원에서 제 서류를 던졌다고 하더라구요.(웃음)

 

지금은 그래도 성에 대한 자료들이 많지만 그땐 지금에 비해 전문적인 교육도 많지 않고 개인적으로 공부하고 수련하기에 열악한 환경이었을 것 같아요. 어떻게 공부하셨어요?

초반엔 성의 심리학(A.G.카플란)이 엄청 큰 도움이 되었어요. 그걸 교재로 같이 공부한게 너무 좋은 기억이라서 스터디하면 지금도 하고 싶어요. 그때 이명화 선생님도 계셨는데 정말 좋았죠. 또, 성학회는 가능한한 많이 참여하려고 노력해요. 성학회가면 의사도 많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경향을 알 수 있죠.

 

모든 상담이 그렇겠지만 특히 성상담은 외부적인 인식이 긍정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더라구요. 성상담가로 활동하시면서 어려웠던 적은 없으셨나요?

초기에는 오해를 되게 많이 받았어요. 학교에 성교육 강의가면 교장실에서 차를 대접한다고 불러서 오늘 강의는 무엇을 할건지 물어보고 제한을 했어요. 자위 빼고, 동성애 빼고.. 심한 얘기는 하지마세요. 등등.. 그때 에피소드가 정말 많은데, 다 기억은 안 나는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남자까지 성교육을 시켜요? 여자만 시키는게 아니고?’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여자만 시킨다는게 무슨 의미냐면 여자만 몸조심 시킨다는 그런 교육인거죠. 그리고 또 생각나는게 성교육을 한다고 하면 왜 성교육을 계속하세요? 성 문제있어요? 어쩌다 성교육을 하게 됐어요? 이런 질문을 해요.

 

와, 정말 성에 대해 어떤 시각으로 보는지 알 수 있는 사례들이네요. 그때에 비해 지금은 조금 변화가 있단걸 체감하시나요?

많이 달라진 것 같으면서도 우리나라는 그게 쉽사리 달라지지 않는 것 같아요. 사범대 다니면서 들었던 말 중에 인상 싶었던 말이 문명은 엄청 발달하는데 문화는 그게 엄청 뒤쳐진다는 말이었어요. 진짜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특히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백지이길 바라거든요.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는데도 한결같이 그렇게 생각하곤 해요.

 

전에 한 신문사에서 하셨던 인터뷰 중에 ‘성을 모르고 지나가는게 결코 잘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모르면 사고치기 쉽다. 올바른 성교육은 성관련 유혹을 당했을 때 그에 맞서는 자기방어능력을 기르는 것이다.’라고 언급하셨었어요. 그 부분이 참 인상 깊더라고요, 저도 실무하면서 양육자분들에게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어떻게 대해야할까요? 무슨 말을 해야하죠? 라는 질문을 많이 듣거든요. 양육자분들이 자녀의 성 이야기에 접근할 때 주의해야할 점이나 고려해야하는 포인트들이 있을까요?

성상담에서 양육자 상담은 너무 너무 중요해요. 양육자를 많이 만나고 설득해야해요. 양육자는 아이에게 굉장히 큰 환경이에요. 아이가 어떻게 양육자를 벗어나서 살겠어요? 아이에게 양육자란 그냥 환경이라고 생각해야해요. 환경이 바뀌어야해요. 저는 주로 양육자상담을 하면서 양육자를 설득하거나 양육자가 왜 그렇게 되었느냐를 통찰하고 상담하면서 탐색해요. 그러다 가족 상담이 되기도 하지만..(웃음) 양육자 상담을 적극적으로 해서 양육자가 편해지고 아이가 편해지는 것이 중요해요. 그런면에서 소통 이런 단어는 조금 막연한 느낌이 있죠. 소통은 대부분 앉혀놓고 “우리 대화 좀 하자.” 하고 본인이 강의하는 설교예요. 그런 것 보다는 아이의 입장을 생각해본 적이 있냐 등의 질문을 통해 아이에게 여지를 주고 기다려줄 수 있도록 도와줘야하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덧붙여 양육자 이야기를 자세히 듣는 것도 중요하구요.

그래서 접수면접이 가장 어려워요. 보통 접수면접이라하면 이름대고 관등성명 대고 그러는 줄 아는데 한번만에 이 사람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고 적절하게 배치할 수 있도록 생각해야하니까 더 많은 통찰과 혜안을 가지고 있어야하거든요. 또 접수면접에서 가장 먼저 양육자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이 되어야 그 다음 이야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양육자에 대한 공감은 필수죠.

 

양육자 뿐만 아니라 실무자에게도 너무 큰 도움이 되는 말씀이네요. 그럼 꿀팁을 주시는 김에 청소년들과 오랜기간 세대를 넘어 소통할 수 있는 방법도 알려주세요!

비법은 노력인 것 같아요. 한때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애들 만나는데 애들이 자꾸 무섭다고해서.(웃음) 저는 무섭다는 것이 외모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그야말로 꼰대기질이 있는거예요.. 아무래도 세대차이가 있으니까 권위적으로 가르칠게 많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걔네들을 이해하려고 마음을 바꾸면서부터는 그 다음엔 무섭단 말이 없어졌어요. 취향도 바꿨어요. 꽃보다 남자도 보고.(웃음) 그걸 상담에 잘 써먹으니까 라포형성에도 도움이 되고 재미있더라구요. 근데 게임은 못해요, 제가 중독경향이 있어서 게임하면 또 정신없이 보거든요. 게임까지하면 큰일나죠. 애들 관심사는 최대한 챙겨보려고 하고 모르는건 애들한테 물어보기도 해요. 아예 모르면 물어보기가 힘들지만 어느정도 아는 상태에서 물어보면 또 애들이 잘 설명해주거든요. 아이들을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예쁘게 여기니까 기특하게도 애들도 좋아해주더라구요. 그렇게 매 상담에 온 마음을 다해서 상담을 하는거죠. 아이들이 좋아지길 바라면서, 얘가 어떤 부분이 힘들구나를 잘 파악해서 그걸 짚어주는거예요.

 

예쁜 마음을 가지고 애들에게 애정을 가득 주는게 비법이네요. 새겨들어야겠어요. 그럼 아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을까요?

아하 상담실에서 계속 눈을 치켜보고 태도가 안 좋았던 내담자가 생각나요. 처음엔 몸을 잔뜩 구기고 나를 보고 있는게 맞나 싶을 정도로 눈을 치켜뜨고 봤었는데 회기 끝 무렵엔 얼굴을 들고 눈을 마주치면서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얘가 얼굴을 들 수 있는 아이구나 생각했어요. 상담하면서 내 노력이 잘 전해졌는지 마지막엔 아주 많이 바뀌었어요. 어머님도 고맙다고하시고..그 내담자가 기억에 나요.

 

오랜기간 아하 상담실을 지켜오셨으니 얼마나 많은 사례가 생각나시겠어요. 아하 상담실에서 좋았던 순간을 하나 더 소개해주신다면?

가해자 상담하는게 참 좋았어요. 힘들지만 그걸 넘어서면 되게 보람이 느껴저서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구치소가서도 상담을 하곤 했었는데 되게 보람을 느꼈던게 내담자들이 변하는게 엄청 빨라요. 그 변화가 되게 빨라서 눈에 확보이니 좋았어요. 가해자들이 정말 나쁜 소수 빼고는 다 상담이 가능하고 상담 하다보면 자신에게 뭐가 부족했는지를 빨리 파악하고 변해요.

 

맞아요. 가해 청소년 상담을 진행한다는 것이 또 아하의 큰 특징이기도 하죠. 참 중요하고 필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그럼 이제 아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아하의 첫인상 기억나세요?

아하의 첫 인상이요? 음.. 세련됐다. (20년전인데요?) 우리가 한국 YMCA에 있다가 아하에 왔으니까 뭔가 더 젊어진 느낌, 청소년을 위한 공간 이런 느낌을 받았어요. 또 그땐 지금보다 더 가족 같았거든요. 온돌방에서 밥 해먹고 그랬는데 그때가 참 재밌었어요.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땐 식구가-선생님은 식구라는 단어로 표현하셨다.- 본관에 다 모여 있을 정도로 수가 적었어요. 지금 본관 화장실 있는 그 쪽에 온돌방을 하나 만들어서 싱크대도 두고. 그때 계셨던 집사님이-오랜시간 센터 운영 지원을 해주시던 선생님- 그렇게 마음이 따뜻했어요. 얼마나 따뜻했냐면 식구들이 뭘 좋아하는지 다 아셔서 밥을 주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는거예요. 밥을 해서 누구는 이거 싫어하니까 빼주고 누군 이걸 좋아하니까 더 주고. 그게 그렇게 사랑받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없어진게 너무 아쉽네요. 우리는 그 온돌방 너무 좋았는데..

 

그 때를 경험해볼 수 없었던게 너무 아쉽네요. 그거 말고도 또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많으시죠?

가장 기억에 남았던건 대천 해변가 이동 거리상담이요. 아마 우리가 시작이었을걸요? 다같이 준비하느라 많이 애썼는데 너무 좋았어요. 그때 제가 했던건 청소년들을 상담하기 위해서 간단한 심리검사. 연애유형별 검사 이런거 해놓고 거기에 먹을거 좀 넣고 콘돔 넣고 나눠주는거였어요.(유인책이었네요.) 미끼죠.(웃음) 그런거 해놓고 결과 알고 싶으면 오라고 테이블 놓고 기다렸는데 그때 되게 좋았어요.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요. 상담을 즉석에서 할 수 있었거든요. 해석하면서 당신 이렇네요? 하면서 짧게라도 상담으로 이어갈 수 있었거든요.

기억에 남는게 헌팅하러 왔다는 남자분이었는데 어떤 준비가 되어있냐했더니 준비된 것이 없다는거예요. 그래서 기회가 되면 성관계도 할거냐고 했더니 하겠대요. 그래서 그럼 콘돔을 쓰는건 어떠냐했더니 창피해서 못하겠다는거예요. 이미 써본 사람처럼 보이는게 창피하대요. 소위 말하는 꾼 같아 보일까봐 걱정된다 이거죠. 처음인 것처럼 보이고 싶다고.. 그게 정말 충격이었어요. 아무래도 여성주의상담을 하고, 대부분의 여성피해자를 만나고 하니까 나도 모르게 고정관념이 있었던거죠. 대부분 여자들은 경험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하고 남자들은 경험을 자랑스러워하니까 모두가 그럴거라는 고정관념. 스스로 너무 놀랐어요. 지금 생각하면 되게 위험한 이야기인데 그 뒤로 내가 바뀌어야겠다, 다르게 생각해야겠다 노력했어요.

그 캠페인이 재밌어서 몇 번 갔는데 그 기억이 아직도 너무 좋아요. 상담실 밖이라서, 모래바닥에 앉아서 분위기가 더 좋았거든요. 또 하면 또 가고 싶어요. 서울 가까운데 할만한 곳 없나요? 하하

 

엄청 좋은 기억이셨나봐요. 말씀하시면서 되게 행복해보이셨어요. 앞서 말씀해주신게 다 아하의 변화겠지만, 또 다른 아하의 변화에 대해 말씀해주실게 있으실까요?

일단 사람이 너무 많이 늘었어요. 그리고 대외적으로 확실하게 인정을 받았다는 것. 처음에는 누가 아하를 알아요. 대부분 몰랐어요. 이렇게 까지 아하가 인정받게 된데에는 다 이명화 선생님 덕인 것 같아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명화 선생님의 공이 가장 크다고 생각해요. 제가 행정업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멀리서 봤을 때 이건 완전 이명화 선생님의 개인 작품이구나 싶을 때도 있어요. 이명화 선생님의 공이 컸고 또 그만큼 키워놨고 서울시의 신임을 얻도록 노력해오셨죠. 제가 이렇게 말하면 이명화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들이 다 도와줬다고 하시는데 백 명이 도와줬다고 해도 그 백 명이 도와주게 한 그 한사람이 있는거잖아요. 그 한명이 있어야 도와주지 없으면 누굴 어떻게 도와줘요. 안도와주지. 이명화 선생님을 대학생때 봤거든요. 사실 그땐 되게 우습게봤어요. 쬐끄만 여학생. 그 이미지가 계속갔어요. (언제까지요?) 몰라 계속 갔어요. 그런데 요즘엔 존경스럽다고 생각해요.

아하의 사이즈가 커지고 대외적으로 인정받는게 느껴져요. 이제 동종업계에서는 아하를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강의 나가서 아하라 그러면 인정을 하더라구요. 인정 하는 것이 피부로 느껴져서 아하가 컸다는 것을 실감하죠. 또 내가 느끼기에 아하는 소통을 중요시 여기고 여기에 관심을 갖고 노력한다는 것이 큰 장점인 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엔 직원들이 윗선이랑 문제가 생기면 상담실에 와서 상담을 했었거든요. 그런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던거죠. 사실 감정적으로 보면 하고 깊은 얘기는 직원이나, 관리자나 양쪽이 다 있을거 아니에요. 그리고 한쪽에서 하는 말이 백프로 다 옳은 것도 아닐테고요. 그래도 관리자들이 그걸 수용하려고 애쓰는 모습들에서 노력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연히 상담 내용은 비밀보장이지만 관리자분들도 상담에 대해 묻지도 않더라구요. 그런 것이 다 성숙한 모습이죠. 또.. 고맙게 생각하는게 아하 상담실은 내담자 중심적으로 내담자를 위하는 마음이 살아있는 상담실이에요. 감사하게도 그런 사람들이 계속 들어와서 일하고 있고..

 

내담자를 위하는 마음이 살아있는 상담실! 너무 뜻 깊은 표현인 것 같아요. 아하의 변화를 여쭤봤는데 좋은점만 잔뜩 말씀해주셨어요. 아쉬운 점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 아하에 바라는 점이나 앞으로 기대하는 점이 있으실까요?

더 잘해나가면 좋겠죠. 그런데 유지하는게 더 어려운거 아니에요 원래? 이제 점점 사이즈가 커지면 여기저기서 장애물도 생기고 할텐데 좀 더 단단하게 잘 유지했으면 좋겠어요. 어휴, 근데 인터뷰하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수다만 떨어서 되는거예요? 질문이 뭐죠?

 

해줄 이야기가 없을 것 같다고 걱정하시던 모습이 무색하게도 어찌나 재미있게 이야기를 해주시는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에 답하시는 선생님의 한마디 한마디에서 청소년에 대한 애정과 상담에 대한 열정, 아하에 대한 애착을 엿볼 수 있었다. 오랜 시간 그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으로 청소년을 마음으로 안아주신 덕분에 지금의 아하 상담실이 성상담전문기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긴 시간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려 애써주시고 소중한 이야기를 나눠주신 최고의 인터뷰이 홍숙선 선생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글. 성인권상담팀 이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