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하! 에는 어떤일이?/만나고 싶다! 아하의 사람들!

그 때 그 사람 5) '사람'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한 상담 - 윤경혜 선생님

작성일 : 11-07-28 18:23             
그 때 그 사람 5) 윤경혜 선생님
글쓴이 : 아하지기 (119.196.214.222)  조회 : 85  


'사람'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한 상담


아하! 서울시립 청소년 성문화센터(이하 아하!)에서는 올해 개관 10주년을 맞이하여 “그 때, 그 사람”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다섯 번째 아하!가 찾은 인터뷰는 아하!의 전신인 YMCA 상담실에서 출발하여 아하의 초창기 책임상담원을 맡아주셨던 윤경혜 선생님이십니다. 이번 인터뷰는 판교에 계신 선생님의 자택으로 이명화 센터장님과 함께 찾아 뵈었습니다. 여전히 정정하시면서도 따뜻하고 편안한 첫 인상의 선생님께서는 ‘사람’에 대한 사랑에 기반한 상담, 편안하고 즐겁게 사는 삶에 대한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전(前) 아하 책임상담원
윤경혜 선생님


어떻게 상담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87년인가? 88올림픽보다는 전이었으니까, 대충 그 때로 생각을 해요. 아까 수영 이야기를 했었는데, 우리 아이가 강남YMCA에서 수영을 시작했어요. 우리 아이가 2학년쯤 되었었나? 근데 그 때 YMCA 신문에 종로YMCA에서 상담을 할 사람을 뽑는다는 내용을 보게 되었어요. 지원 계기는 그냥 주부로만 살기에는 발전이 없는 듯해서, 자기 계발도 되면 좋겠다 싶어서 시작했어요. 순수하게 봉사 활동을 할 생각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죠. 

그렇긴 해도, 어딘가에 얽매이기보다 봉사라고 생각하면 편안하게 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지요. 그 때 상담실에 봉사를 하겠다고 온 사람들을 보니까, 순수한 봉사에 대한 마음보다도 뭔가를 이루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였더라구요. 저는 그보다는 좀 가볍게 내 자신이 나태하게 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갔어요.


성(性) 상담이라는 점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는지?

애초에 성(性) 상담이라고 써있었어요. 근데 잘 모를 때니까요. 뽑을 때 대학원 이상! 이렇게 근사하게 써 있었는데, 그 때 그렇게 근사하게 해서 봉사할 사람을 뽑는 데가 없었잖아요. 그래서 이런 데는 뭔가 전문적이고 멋있는 사람들이 모여 뭔가 시작되겠구나 싶어 시작하게 되었어요.


상담하신 기간은 얼마나?

87년에 종로에서 시작해서 서초로, 그렇게 13년을 하고서, 영등포 아하! 까지 가게 되었네요. 서초까지는 자원봉사로 했고, 아하에서는 책임상당원이라고 시작이 되었네요. 


처음 상담을 시작하실 때 어땠는지?

YMCA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상담이라는 것이 시작이 되었어요. 상담이라는 것은 굉장히 매력적이었는데, 성(性) 상담이라는 건 정말 사람 당황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거였어요, 말 그대로. 무슨 야동을 보거나 그런 것도 없던 시대였는데, 그런 것들 보는 것 이상으로 사람 당황하고 힘들고, 이런 것을 꼭 우리가 일일이 답변하고 상담이라고 해줘야 되나? 이게 상담인 건가, 아닌 건가? 막 이런 식의 생각이 들 정도로 막 다들 상담 받고 나오면 뛰어나와서... 아우, 이럴 때 너무 당황스럽고 '이거 안 받고 싶어,` 이런 얘기들을 참 많이 서로 했었어요. 

근데 그걸 쭉 지탱하고 갈 수 있었던 것이, 물론 상담 실장 선생님이 끌어주는 것도 있었지만, 상담원들끼리 같이 나누고 풀고 하면서, 의지가 되고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꾸준히 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았으면 '아, 상담이 이런 거라면 정말 못하겠다~.' 그런 느낌이 많았던 시작이었어요.


초창기 상담 중에 후회되거나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다면?

제가 지금까지도 많이 후회되고 처음이라 실수했구나 싶은 상담 중의 하나가, 여고생이었는데 임신을 해서 온 사람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 때까지만 해도 우리의 고정관념이 너무 강했을 때였어요. 상담을 한 지 얼마 안되었을 때니까. 여고생이 임신을 했다고 하면, 무조건 아기를 낳으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이 강했었어요. 그래서 그 여고생을 붙들고 막 설득작업을 했었던 거에요. '너는 그 아기 낳으면 네 인생 망친다, 아기를 안 낳아야만 앞으로 고등학교도 졸업하고 대학도 가고 네 인생이 풀려진다.' 이런 식의 설득 작업을 너무 많이 했어요.

또, 부모님 모두 전문직으로 가정 환경도 좋고, 부모님 일 때문에 어릴 때 프랑스에서 살다 온 아이였어요. 그래서 그 시대인데도 한국 아이들보다 좀 더 자유분방하고 외모나 이런 것도 굉장히 성숙한 아이였어요. ‘난 내가 원해서 임신했어요.’ 라면서 온 아이를... 

걔가 나보다 앞서가는 아이였고, 나는 그걸 못 쫓아갔던 거에요, 그 때 수준이. 그래서, ‘아우 얘, 니가 지금 그런 걸 원해가지고 될 때가 아니다.’ 그러면서 내딴에는 최고로 열심히 진땀을 흘려가면서 설득작업을 했어요. 그리고 걔는 다시는 안 나타났어요. 당연하지, 그런 상담자를 만나겠어요?

그 일이 상담을 하면서 너무 후회되는 상담으로 기억에 남는 일이에요. 상담 시작한 지 몇 달 밖에 안되었을 때인데, 그 아이를 만나서 걔한테 두고두고 미안해요. 상담 공부를 계속 하면서도 상담자로서 굉장히 큰 초창기 실수로 기억에 남는 상담이에요.

그렇게 걔가 인상적이었고, 그 다음에는 별로 기억에 남는 일이 없는 것을 보면, 그리 오래 안 가서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아요, 내 생각에는. 그런 실수를 두 번, 세 번은 안 했으니까. 그래서 언제나 걔가 제일 많이 기억에 남아 있어요.

근데 걔도 정말 특이한 아이였던 것이, 그 시대인데도 불구하고 와서 명단을 쭉 보여줬어요. 내가 전화만 하면 쫓아올 남자들 명단이라면서, ‘이 사람들이요, 내가 전화하면 바로 딱 올 수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런 식으로 말하는데... 그러니까, 얘가 내 생각을 훨씬 넘어서서 내가 얘를 못 쫓아가겠는 거에요. 그래서, ‘어머, 얘가 이게 웬일이야, 너 지금 여고 2학년이잖아,이러면 안돼~’ 그랬었죠. 너무 내가 엄마로서 답답하게 굴었던 거죠. 성(性) 상담자로서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내담자를 받았던 케이스였어요.

 
지금도 그런 케이스의 내담자를 받으면 상담 선생님들 중에 당황하실 분들이 많으실 듯하다. 가치관이 바뀌는 건 참 어려울 텐데, 어떻게 하면 상담자들을 더 잘 도와줄 수 있을까?

상담자가 성(性)에 대한 상담을 하겠다고 했으면, 상담 교육을 받기 이전에 자기 가치관부터 조절을 하고 시작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신의 상담 가치관 정립이 제일 먼저 된 상태에서 상담에 임해야지, 상담이 이론적으로 이런 것이고 저런 것이고 아무리 공부를 했어도, 자기 가치관이 고정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성(性) 상담은 안 받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리고 내가 생각할 때는 훈련도 훈련이지만, 일단은 외국에서도 그렇고 직장에서도 그렇겠지만, 경험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경험이 제일 중요한 교육이라는 거죠. 일단은 풍부한 경험을 해봐야 해요. 아무리 이론적으로 많이 배운 사람이라도, 경험이 없으면 허황된 지식이거든요. 실전에서 자기가 부딪혀보고 해야죠. 

예를 들어, 아무리 이론으로 팔을 이렇게 젓고 저렇게 젓고 가르치면 뭐해요, 자기가 직접 물 속에 들어가서 물과 적응을 해봐야 수영을 배우죠. 상담도 상담을 많이 받아봐야 그만큼 숙련되고, 그 사람이 상담자로서 자격도갖춰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쭉 하다 보니 상담을 하면 할수록, 그 상담자가 제대로 된 상담자가 되겠구나, 이렇게 경험을 쌓아야 그 다양한 사람, 정말 얼굴 똑같은 사람 둘도 없다고 하는데, 상담도 완전히 다른 경험들을 다양하게 경험을 해봐야 사람에 대한 이해 폭이나 그 사람을 받아들이고 공감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커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말씀을 듣고 보니, 많은 경험을 갖고 계신 선생님이야말로 정말 좋은 상담자이신데 지금도 계속 상담을 하고 계시는지?

그러면 제가 제 자랑한 거 같이 되는 건가요? (웃음) 좋은 상담자라는 생각은 안 해봤고... 저는 상담을 하면서 오히려 내 자신이 많이 변화되었어요. 

우리가 왜 상담을 하기 전에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전에 긴장을 하는 것도 있고,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그런 생각에 따라서 내가 어떻게 해야 되겠다는 많은 생각들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게 되잖아요.

근데 상담을 많이 하고 보니까, 어떤 사람, 누구와 만나도, 그 사람에 대한 좋은 마음으로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그런 자세가 되는 것 같아요. 그런 면이 내게 도움이 된 것 같아 참 편안하고 좋아요. 제가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말도 많다고들 하는데,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저 사람은 어떻겠구나, 속이 어떻겠구나, 뭐가 힘들겠구나,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같이 얘기를 하다 보니까, 그 사람들이 나를 편안해하고 좋아해주고, 그러니까 자꾸 얘기를 많이 하게 되고 그런 거죠. 나이나 위치나 이런 것과 상관없이, 누구를 데려다 놔도 그냥 하나의 인간으로 서로 만나고 대하게 되는, 그게 참 편안하고 좋은 것 같아요. 

내 자신이 상담자를 하면서 그런 자세로 바뀌어지고 나니까, 누구와도 만날 때 항상 편안하고 좋아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내가 사람하고 만나서 이야기하는 거 좋아한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냥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이해하고 알게 되어가는 과정이 좋은 것이죠.



그렇다면,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상담이란?

‘상담의 시작 전에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상담 교육 첫 장에서 배웠어요. 그 내용은 그 당시 제 마음에 굉장히 크게 와 닿았어요. 그 후로는 언제나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는 자세로 상담에 임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왔어요. 그리고 상담을 하고 지금까지 오면서, 상담을 할수록 사랑이 커지는 거고, 사랑이 정말 중요하구나, 그런 것을 계속 느껴요.

아직도 제가 만나는 아이가 있어요. 얼마 전에 ‘이제 10년이 넘었지?’ 그랬더니 ‘아니에요! 10년이에요!’ 막 우기더라구요. 날 보고 빨리 나오라고 급하게 SOS를 해서 처음 만난 사람이었는데, 자살을 시도했어요. 자기가 죽어가면서 상담실에 전화를 해서 그랬대요. ‘나, 지금 사실은 약을 먹었는데…’ 그래서 상담실에서 빨리 오라고, 이 사람을 살려야 한다고, 그래서 저한테 빨리 오라고 난리가 났어요. 분당 YMCA상담실에 나갈 때라 가까웠거든요. 

그 때가 밤이었는데도 쫓아갔어요. 그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무섭지 않아요?’ 이런 얘기를 하는데, 나는 사람이 무섭지 않아요, 정말. 난 사람 속은 다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사람이에요. 근데 그 사람이 정말 집안도 어렵고, 신체적으로도 각종 병은 다 가지고 있는 아주 힘든 사람이었어요. 남자에요. 20대 후반에 만나서 지금은 30대 후반이 되었어요. 

난 정말 틀에 박힌 상담,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해요. 아까 틀에 박히는 거 싫어한다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내 식대로 해요. 난 상담을 떠나서 그 사람을 도와주려는 마음이었고. 한 사람을 살려간다, 라는 마음으로 그 사람을 대했어요. 그래서 그냥 친척처럼, 개인적으로 했어요. 뭘 갖다 주기도 하고, 지원도 해주고.

이 사람은 10년 동안에 자살 시도를 4~5번 정도 했나 봐요. 살기가 너무 힘든 사람이에요. TV에도 나온 병인데, 못 고치는 병을 가지고 있어요. 몸도 아프고, 힘들어 했지요. 내가 병원도 쫓아가고 하면서, 하여튼 많이 개인적으로 엉겨 붙어서 했는데, 요전번에 만났을 때, 내가 ‘와~, 와~!’ 막 이런 소리를 했어요. 취직한 지 3달 되었대요. 그래서 ‘야~ 정말! 내가 너무 기쁘다!’ 드디어 그 사람이 정말로 취직을 했어요, 보습학원에. 그러면서 ‘이제 내가 정말로 열심히 벌어볼 거에요.’ 그러면서 아직도 힘들지만, 이제는 계속 가겠다는 의지가 더 강하게 섰어요. 그래서 내가 요전번에 ‘와~ 이뻐라!’ 그랬지요. 


상담실은 더 이상 나가지 않고 계시는데?

그래서 제가 이 이야기를 상담 케이스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저는 그냥 사람과 그러는 것이 좋은 거에요. 또 제가 많이는 할 자신이 없어요. 또 사실은 아들 같은 마음도 있었어요. 우리 아들이 이러면 얼마나 힘들까, 이런 엄마의 마음? 상담자이면서 하나의 엄마의 마음이 되어서 같이 돌보는 그런 느낌이 강했던 거 같아요. 그런 식으로 사람을 만나다 보니까, ‘나는 여러 사람은 못하겠다.’ 그렇게 된 거였죠. 

또 연극하는 여자 분도 있었는데, 자기는 꼭! 따뜻한 사람에게 상담을 받고 싶다고 해서, 저한테 연결되었어요. 이 분도 지금까지 계속 만나고 있어요. 어려울 때마다 의지하고,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저를 상담자로 생각하지를 않아요. 사실 무슨 친척이나 그런 사람처럼 대하는 것 같아요.

제가 상담실을 벗어나고 싶었던 게, 같이 식사하면 안되고, 시간은 한 시간씩, 뭐 그런 규정들이 있잖아요. 그런 상담보다도 '난 그냥 정말 누군가 한 사람을 도와주는 쪽으로? 능력이 된다면 그렇게 해주고 싶다'는 식의 기분이 많이 있었어요. 그래서 언제든지 도와주겠다고 하고서, 내 핸드폰 번호 가르쳐주고, 연락하고, 만나고, 그런 식으로 했지요.


아하! 에는 얼마나 계셨는지?

아하! 에서는 5년 있었는데, 분당에서는 너무 멀어지기도 했고. 상담이라는 게 굉장히 자기 자신이 탈진되는 느낌이었어요. 자기 것을 너무 많이 빼주는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힘들었어요.


아하! 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 느낌은 어떠셨나?
 
첫 느낌은, ‘와~! 아하가 정말 많이 컸구나!’ 이 느낌이었지. YMCA 한쪽 구석에서 눈치 봐가면서 돈 안 되는 사업이었는데 말이야. 그렇게 시작했는데, 우리 건물을 가지고 근사한 교육관까지 가지고 딱 시작하면서, 이렇게 상담실이 커졌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죠.


23년 간 청소년의 성(性) 문화의 변화를 보시면서 감상평을 하신다면?

변화가 어마어마하죠. 성(性)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개방도 되었고, 사람들의 인식도 너무 많이 바뀌고, 모든 게 거의 다 바뀌었죠. 일단, 그 때는 이성간의 성(性) 문제도, 말하자면 결혼 전의 성(性) 문제 같은 것은 무조건 안될 것 같은 인식을 가지고 있던 시대였는데, 지금은 많이 벗어나 있죠.

또 제가 예전에 종로에서 상담을 할 때 굉장히 기억에 남고 마음에 걸리는 아이 중의 하나가, 동성애로 온 아이가 있었어요. 그래서 걔한테는 제가 공부를 해가면서 굉장히 열심히 한 1년 이상 했었어요. 근데 나중에 직장에 가면서 어려워져서 못 오게 되었지요. 한편으로 저에게도 동성애를 상담하는 것에 대한 한계가 있었을 거에요. 지금은 동성애에 대해서 세계적으로 결혼까지도 인정하는 나라가 나오고, 굉장히 많이 바뀌었잖아요. 그러니까 성(性)에 대한 인식이나 가치들이 그 시대와는 너무 많이 바뀌었죠.

 
그런 변화 속에 청소년을 위한 성(性) 교육이나 상담의 역할이라면?

성(性) 문제만 가지고 이야기를 하자면, 이건 세상의 흐름에 따라서 그만큼 바뀐 거에요. 당연히 우리는 그 흐름에 따라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한편으로 아까도 내가 상담이라는 것이 사람 한 명, 한 명에 대한 사랑의 마음으로 그 사람을 공감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잖아요. 성(性)에 대한 가치나 인식은 따라가주면서, 상담면에서 보자면 그 성(性) 문제를 떼어놓고 볼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상담이니까, 그 성(性) 문제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싶어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뭐냐 하면, 동성애니까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또는 얘네가 성(性) 문제가 생겼으니까, 그 성(性) 문제에서 흐름을 어떻게 해야 한다, 바꿔야 한다는 식의 초점을 두기 보다는, 성(性) 문제는 그대로 흐름에 맞춰 따라가되, 그 사람 속의 인간에 대한 상담, 인간 중심의 상담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항상 나오는 단어지만, 사람에 대한 것을 바라보기 때문에, 그 성(性) 문제라는 것은 하나의 곁다리라고 이야기해야 될까요? 그건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안 들어요. 그 사람의 마음에서 오는 문제라든지, 그런 것을 바라보고 싶은 거죠. 

한편으로 청소년을 바라볼 때, 학생은 좀 더 학생다웠으면, 아직은 좀 더 준비를 하고 기본 덕목에 충실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어요. 어쩔 수 없나봐요.  



10년이 된 아하! 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

어쨌거나 시작은 상담실에서, 성(性) 상담에서 시작한 아하! 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아하! 가 성문화센터이고, 성교육도 하면서 많이 커졌지만, 기본은 상담실이라는 것, 청소년의 성 문제를 상담하는 것에 기반하여 컸다는 점을 기억해주세요. 아이들이 이런 문제들을 가지고 있구나, 지금 상황이 이렇구나, 이런 모든 것들이 다 그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그 마음을 그대로 잊지 말고, 그 기반에서 더 커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시작부터가 그거였으니까, 언제나.
 

인터뷰 진행 이명화 센터장, 이도윤
정리 이도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