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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성(Sexuality)을 읽다./문화에서 성을 찾아내다

[영화] '오르가즘주식회사'와 '구글베이비'

작성일 : 10-04-30 13:39             
[영화] 오르가즘주식회사와 구글베이비
글쓴이 : 아하지기 (59.15.196.148)  조회 : 402  


난자를 제공한 엄마와 자궁을 제공한 엄마, 그리고 길러준 엄마가 따로따로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 엄마들 중에 ‘진짜’ 엄마를 선별해야 한다면, 누구일까? 누구에게 피 끓는 혈육, 모성을 느낄까? 오르가즘을 자위나 성관계 등을 통한 물리적인 성감대 자극 대신 신경이나 뇌에 전류를 흘리거나 알약 하나로 느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오르가즘에서 땀과 체온과 살갗의 접촉은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는 불필요한 노동이 되는 것일까?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은 이제 공상과학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것이 아니다. 2010년인 바로 지금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올 여성영화제에서 상영한 <구글베이비>와 <오르가즘주식회사>는 앞의 두 질문에 대한 우리의 현실을 직면하게 해준다. 과학기술과 여성의 몸에 대한 통찰력 있는 문제제기와 함께 세계화와 소비자본주의사회 속에서 여성의 몸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질문한다.


특히 <구글베이비>는 뉴스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간간히 접했던 대리모라든지 난자매매 등과 같은 문제를 바로 눈앞에서 목도할 수 있게 한다. 이로서, 대리모는 나와는 결코 상관 없는, 저기 멀리 누군가의 일이며 그렇기 때문에 별로 궁금하지 않은 우리에게 현실적인 무게로 다가오고 곧이어 불편함과 낯섦, 우울이 뒤따른다.

<구글베이비>에서 목도한 현실이 불편한 이유는, 엄마, 모성, 임신과 출산, 양육이라는, 인간이 태어나 최초의 친밀한 관계를 맺는 일련의 ‘의식’이 조각조각 나고 기존의 인간이 태어난다는 것의 의미를 급격히 ‘기술’, 혹은 ‘세포’, ‘재생산기계’의 문제로 환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너무도 지독하게 자본의 논리 속에서 가능해지는 것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영화의 마지막 씬인, 인도 뭄바이의 한 산부인과의 병실은 너무도 명확히 자본의 논리 속에서 ‘재생산기계’로서의 여성들을 조용히 보여준다. 여덟 개의 침대가 줄지어 놓여있고 침대 위에는 산모로 보이는 여성들이 마치 SF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던 생체 배양관 같이 늘어져 있다. 이 마지막 장면을 뒤로 하고 극장 밖으로 나오는 우리의 마음은 더 없이 무겁다.


<구글베이비>가 대리모나 재생산기술의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그 현실의 무게만큼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면, <오르가즘주식회사>는 좀 더 재치 있고 쾌활하게 여성들의 오르가즘을 질병으로 진단하려는 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르가즘주식회사>는 남성의 발기부전을 해결하는 비아그라가 시판된 이후, 미국의 제약회사는 여성에게도 비아그라와 같은 기능을 하는 약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어떤 논리로 여성의 ‘성 불감증’이 ‘병’으로 명명되는지를 미국 내 제약회사와 의료계의 유착, 여성의 오르가즘에 대한 몰이해를 교차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이전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몸의 여러 차이들이 점차 의료의 영역 안에서 표준이라는 잣대에 의해 비정상, 질병, 치료대상이 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새삼 던져준다. 특히 여성의 성, 여성의 오르가즘은 오랫동안 남성과의 삽입섹스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삽입섹스에서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하는 여성들은‘성 불감증’이라는 이름으로 비정상인 취급을 받아왔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 척추에 전류를 흘려보내거나 성기 주변에 바르는 크림, 몸에 붙이는 패치 개발 등이 이어졌다. 이 점에 대해 <오르가즘주식회사>는 아주 정확히 여성의 오르가즘의 본질은 단순히 성기삽입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꼬집는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여성들이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 성관계를 기피하는 것의 이유는 단순히 성관계라는 행위 자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가사노동, 양육에 의한 스트레스, 물리적 시간 부족 등의 다양한 여성의 일상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상식적인 수준의 것들을 놓치면서도 미국의 제약회사는 돈을 벌기 위해 여성의 다양한 경험과 맥락을 간과한 채 무조건 질병으로 진단하려고 한다.


<구글베이비>와 <오르가즘주식회사>는 점차 모든 것이 특정 지식과 자본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여성의 몸이 어떤 방식으로 교환되고 읽히는지를 보여준다. 다행히도 여성들의 오르가즘은 제약회사의 자본 논리를 떨치고 독립할 수 있었지만 불행히도 여성의 재생산능력은 점점 더 세계화와 자본주의의 흐름 안에서 가늠할 수 없었던, 혹은 가늠했지만 설마라고 생각했던 방향으로 들어서고 있다. 앞으로 <구글베이비>가 보여주는 현실은 가속화되고 점점 더 우리의 일상으로 파고들 것이다. 이제 자본 앞에서 무엇이든 가능한 현실에서 윤리와 가치를 어떻게 확립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남는다.


아하!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교육사업팀 김백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