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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성(Sexuality)을 읽다./조금은 딱딱한... 칼럼!

꽃으로도 때리지 마세요!!

작성일 : 11-11-08 17:26             
꽃으로도 때리지 마세요!!
글쓴이 : 아하지기 (61.78.145.50)  조회 : 94  


아하!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이하 아하센터)에는 다양한 청소년들이 오고 갑니다. 성 교육 체험관을 탐방하기 위해 오는 친구들, 성 문제로 인해 겪은 아픔을 상담하고 치유하기 위해 오는 친구들, 또래 청소년들의 성적 감수성을 알고 또래와 함께 공부하고 나누기 위해 오는 또래지기 동아리 친구들 등 다양한 친구들이 아하센터를 방문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다양한 관심과 목적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에게 아하센터는 늘 문을 열어놓고 있어, 문지방 성할 날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많은 청소년 친구들로 북적대는 살아있는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친구들 외에 성 폭력 가해 청소년들 또한 아하센터를 방문하는 친구들입니다.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우리 친구들 사이에 존재하는, 불편한 진실과도 같은 성 폭력. 이 친구들은 성범죄로 인해 자신들의 잘못된 성 행동이나 성 인식에 대한 교육과 상담을 받기 위해 센터에 옵니다. 

성인 성 범죄자와 달리, 대부분의 친구들은 생애 처음으로 성 범죄를 저지른 초범입니다. 이 친구들은 불안하고 초조하게 위축되어 센터로 옵니다. 앳띤 얼굴에 불안한 눈빛, 때론 왜소하고 소심한 모습을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구쟁이 같은 모습이 역력하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그 모습이 이 친구들이 행한 폭력과 전혀 연결이 되지 않아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무엇이 이렇게 순진하게 보이는 청소년 아이들에게 끔찍한 폭력을 하게끔 했을까?' 이렇게 이 친구들을 비난하기 보다, 성인인 제가 오히려 부끄럽고 왠지 미안했습니다. 

이들은 교육을 받으면서 함부로 언어를 쏟아내고, 피해자를 탓하기만 합니다. 자신의 폭력 행위에 대한 아무런 죄책감이나 자각 없이, 소위 성인들이 하는 못된 짓만을 그대로 모방하면서, 그것을 마치 대단한 일인냥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다른 애들도 다 따먹었어요." 
"걔는 걸레에요."
"그런 아이들은 자기네들이 알아서 대줘요."
"상처는 무슨 상처? 꽃뱀이죠. 우리들 4명한테 돌아가면서 대주었으니깐."
"지금 우리를 신고해서 보상금 꽤 챙겼을 걸요?" 
"걔는 여자들 사이에서도 왕따예요, 그래서 우리들을 쫓아다니고 지가 알아서 대주었는데, 정말 억울해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 모습에서 제가 처음 접했던 14세 뽀얀 미소년이 보여주던 사랑스러운 이미지는 사라지고 악마의 얼굴을 한 성인이 제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가장 약한 사람이 누구이며, 그래서 누구를 함부로 해도 되는 지, 못된 어른들로부터 터득한 양육강식의 논리를 아무 생각이나 개념 없이, 생각으로, 몸으로, 그대로 습득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저항이나 어떤 도움도 요청하지 못하는, 약한 사람 중에 가장 약한 사람에게 함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이 내재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피해자가 받을 상처 따위는 아랑곳없이 그냥 '호기심에, 심심해서, 했어요.' 라고 메마르게 내뱉고, 자기가 피해를 준 상대방의 상처에 대해서는 '오히려 그들의 상처가 뭔데요?' 하고 되물어 봅니다. 하지만 자신의 행위로 인해 자신의 가족이 받은 상처, 물질적 피해, 고통을 말할 때는 눈물을 글썽이는 정반대의 태도를 보입니다. 그래서 이들과 어떻게 만남의 접점을 가져야 할 지 난감했습니다.


폭력이 마음 속 깊이 내재해 있는 이 아이들을 마주하면서 깊은 고뇌의 한 숨을 쉬고, 쉬고... 한 호흡, 한 호흡의 숨을 가누면서... 만났습니다.

이 친구들과 만나는 시간이 쌓이면서 참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저는 기적이나 혹은 마술과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들의 생각과 마음은 마치 스폰지 같았습니다. 물을 잔뜩 머금은 스폰지를 꼭 쥐면 물이 빠지듯이, 이들의 왜곡된 생각 주머니에 비집고 들어가 진정한 남성다움, 의리, 따스함이 무엇인지.. 다른 한편으로 가장 치사하고 비열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스스로가 저지른 성 폭력 사례를 가지고 풀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약한 자를 괴롭혀서 자기 만족감을 얻은 사람이 가장 비열하고 가장 남자답지 못하다는 것.
남자다움은 힘의 논리가 아니라 약한 사람의 수호천사가 되어주는 것. 

..자신의 행위가 너무 창피하고 부끄럽고 ... 

가정에서 외톨이가 된, 때로는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해서 관심을 받고 싶어 따라다니는, 그런 약한 사람들에게 잘해주지는 못할 망정 그런 상대의 약함을 이용한 자신이 스스로 너무 창피하다는 기적의 고백(?)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참 이들의 이런 변화되는 생각이 말로만이 아니라 진실로 와 닿았을 때, 누가 청소년은 미래의 희망이라고 했는지! 참으로 진언이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선생님! 저의 이번 성 폭력 사건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저는 장차 어떤 인간이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지금 조금 힘들었지만 저에게는 너무도 좋은 계기가 되었답니다. 작은 것을 잃었지만 덕분에 인생의 큰 것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으로 인해 아픔을 당한 친구들이 과거의 저와 같은 사람을 만나지 말고 잘! 행복! 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처음 이들을 대면할 때 거칠게 표현하던 아이들이 이렇게 감동적인 표현을 하고 서로 공감을 하고 나눔을 시작합니다. 서로에게 '우리 앞으로 이런 곳에서 만나지 말고 좋은 곳에서 만나자.'고 서로 격려해주는 모습은, 아이들이 이렇게나 변할 수 있음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또한 이런 경험들을 통하여 저는 아이들을 포기하거나 비난하지 않게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 아하센터를 거쳐간 친구들은 마치 요술나라에 들어왔다가 나갈 때는 이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어 갈 수 있는 존재로 변신합니다. 가장 약한 사람을 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 연약한 꽃으로조차 그 누구에게도 폭력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변화되어 나가는 곳입니다. 

지금은 아하센터를 떠나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하센터에서 만났던 친구들이 항상 생각납니다. 그 친구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증이 떠오릅니다. 


전(前) 아하!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책임상담원
여성 아동 폭력피해중앙지원단
총괄팀장 고정애